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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프로 계열 기업들이 분주합니다. 지난 5월 에코프로가 환경사업부를 분할해 에코프로에이치엔을 설립하더니, 그 에코프로에이치엔이 지난주 보통주 1주당 3주, 그러니까 300%의 무상증자 계획을 밝혔죠. 주가는 무상증자를 호재 삼아 16일 이후 이틀간 무려 60% 가까이 급등했습니다.


그 보다 앞선 지난 7월 7일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에이치엔은 약속이나 한 듯 한날 한시 중요한 경영사항을 수시공시합니다. 이런 경우 대체로 3사간 의사결정에 대한 사전 조율이 이루어졌다고 봐야죠.


에코프로에이치엔의 무상증자는 이날 예고되었습니다. 에코프로비엠은 해외 시설투자(양극재 공장)를 위해 4000억원 내외의 대규모 유상증자가 올해 하반기에 예정돼 있다고 밝혔죠. 2차전지 소재주인 에코프로비엠의 주가는 실적 호조가 지속될 것이란 기대로 최근 한달 반 새 50% 폭등했습니다. 에코프로는 이달 중 1500억원 규모의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할 거랍니다. 에코프로비엠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합니다.


에코프로 계열은 크게 환경사업과 전지재료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환경사업으로는 유해가스 저감장치, 온실가스 저감장치, 대기환경 플랜트 등을 하고 있고, 전지재료사업으로는 양극활물질, 전구체 등을 생산하고 있죠.


에코프로 계열의 상장 3사가 이렇게 바쁜 움직임을 보이는 출발점에는 에코프로의 인적분할이 있습니다. 특히 에코프로에이치엔의 무상증자는 인적분할의 후속 조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분할 전 에코프로는 환경사업을 하는 회사였습니다.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은 비상장사인 에코프로지이엠, 에코프로이노베이션, 에코프로에이피와 함께 전지재료사업을 영위하고 있었고요. 많은 자회사를 거느린 에코프로의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은 바로 자회사 또는 관계회사 지분이었습니다.



위 그림은 에코프로 인적분할 후 지배구조입니다. 분할로 환경사업을 영위하는 에코프로에이치엔이 설립되었고, 에코프로에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투자부문만 남았습니다. 인적분할이기에 에코프로와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주주 구성은 똑같습니다. 이동채 회장이 13.11%(특수관계인 포함 18.11%)로 양사의 최대 주주이죠. 분할 전 보유하던 자기주식 0.99%는 에코프로에 잔류해, 에코프로가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지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적분할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13.11%에 불과한 최대 주주의 지분율을 높여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죠. 그리고 에코프로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합니다. 지주회사 체제는 적은 지분으로 계열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대주주가 확실히 확보하고 있으면 적대적 M&A 등을 방어하기 쉬워집니다.


인적분할 만으로는 이동채 회장의 지분율에 변화가 없습니다. 에코프로와 신설된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지분을 각각 13.11% 보유합니다. 하지만 일련의 후속 거래가 끝나고 나면 이 회장의 지분율은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제 에코프로의 분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5월초로 돌아가 봅니다. 인적분할을 하게 되면 분할비율이라는 게 나옵니다. 회사의 순자산을 몇 대 몇의 비율로 나누었는지를 따져보는 건데요. 쉽게 말해 전체 순자산에서 분할로 신설되는 회사의 순자산을 나눈 비율입니다.



위의 산식이 에코프로의 분할비율입니다. 분모에 자기주식을 더해 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주식은 자본의 차감항목으로 '죽은 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적분할을 하게 되면 부활을 하죠. 분할 전 전체 순자산에 더해 집니다. 인적분할 이후 아무런 추가 자금의 투입 없이도 최대 주주의 지분율이 상승하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의 단초인데요. 에코프로의 경우 분할 전 자사주가 많지 않아 큰 이슈는 못되는 것 같습니다.


그 보다 중요한 건 순자산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입니다. 에코프로의 분할 비율은 0.1698이 나왔는데요. 순자산의 약 83%를 에코프로에 남겨 두고, 17%를 떼내어 새 회사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순자산은 곧 자기자본을 의미합니다. 결국 분할로 신설된 에코프로에이치엔에 배분되는 자기자본은 분할 전 자기자본의 17%라는 뜻이죠.


그런데 분할 후 에코프로 주식의 시가총액은 20일 현재 1조1464억원이고,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시가총액은 1조964억원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51 대 49 정도 됩니다. 분할 전 자기자본의 17%에 불과했던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자기자본의 시장가치가 83%를 가져간 에코프로의 시장가치와 거의 같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분할비율을 순자산의 장부가액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자산의 장부가액은 기업의 공정가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돈을 벌지 못하면 기업가치는 없고, 적은 자산을 가진 기업도 이익을 많이 내면 가치가 높습니다. 그 가치가 바로 주가입니다.


하물며 장부가액입니다. 장부가액은 자산의 공정가치 또는 시장가치와 무관합니다. 현재 시가로 1조원을 호가하는 부동산이라도 10년 전 1000억원에 매입했고, 회사가 취득원가법으로 평가하고 있다면, 그 부동산의 장부가액은 10년 전의 가격인 1000억원입니다.


순자산의 장부가액은 곧 재무제표상의 자기자본 합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상장회사 자기자본의 시가는 곧 주식의 시가총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사의 자기자본이 B사 자기자본의 4배 이상인데, A사의 시가총액과 B사의 시가총액은 거의 같다는 뜻이죠.


순자산의 장부상 가치와 시가의 괴리는 인적분할에서 최대 주주의 지분율에 굉장한 의미를 갖습니다. 자사주의 마법은 저리 가라죠.


순자산 장부가액이 100이고 시가총액이 100인 A사가 80대 20의 비율로 A1과 A2로 인적분할하고, 최대주주 B씨는 A사의 20% 지분을 보유했다고 가정합니다. 인적분할 후 B씨는 A1과 A2의 지분 각각 20%를 갖게 되죠. 분할 전 발행주식 수가 100주였다면, 분할 후 B씨가 보유하게 되는 주식은 A1 16주(80주의 20%)와 A2 4주(20주의 20%)가 됩니다.


그런데 분할 후 A1사와 A2사의 시가총액이 같다고 하면, B씨는 A2사의 주식 4주를 A1사에 팔아 A1사의 주식 16주를 살 수 있게 되죠. 20%였던 A1사의 지분은 40%가 되고 A1사는 A2사의 지분 20%를 보유하게 됩니다. B씨는 A1사의 지분율을 한껏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A1사를 통해 A2사를 간접 지배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죠. 바로 이 맛에 최대 주주가 인적 분할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