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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을 도입합니다. 배송 속도의 압도적인 차이로 경쟁이 우위를 점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사실상 이것은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을 포함한 전 유통업계에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마진에 가까울 정도의 낮은 가격에 물건을 팔면서 자정 이전에 주문을 하면 이튿날 배송을 받을 수 있다면, 신선식품을 하기 위해 근처 할인점을 찾을 필요가 크게 줄어듭니다. 식료품 등 신선식품에 관한 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이마트 등 할인점업계에 일격을 가한 셈입니다.


로켓배송은 쿠팡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합니다. 고객의 주문을 받고 나서 외부 택배업체에 배송을 의뢰하는 방식으로는 로켓배송의 약속을 절대로 지킬 수 없습니다. 이미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고, 주문을 받는 즉시 출동을 할 수 있는 쿠팡맨이 필요해졌습니다. 창고를 보관하고 운송하기 위한 물류센터 투자가 불가피하고, 주문량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많은 쿠팡맨을 고용해야 하니 인건비가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거래 방식의 변경은 필연적으로 현금흐름을 바꾸어 놓습니다. 중개에서 직매입으로 바꾸면서 똑 같은 거래액을 기록하더라도 매출액과 매출원가가 대폭 커지고 판매관리비 역시 대폭 증가합니다. 쿠팡맨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약점으로 늘 지적을 받지만, 관리 인력도 증가하고 그 외 다른 일반관리비 역시 늘게 됩니다.


쿠팡이 고성장을 하면 할수록 인건비 등의 관리비는 단계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미 고정비가 된 인건비는 거래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감소하지 않습니다. 물류센터 등 유형자산이 증가하면서 감가상각비 등도 함께 증가하겠지요.



직매입은 운전자본에 근본적인 변화를 줍니다. 그 전에 없었던 막대한 재고부담이 생기고, 공급업자에게 결제할 구매대금과 고객에게 수취할 매출대금의 규모가 대폭 커집니다.매입채무와 매출채권이 몰라보게 커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운전자본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따라 현금흐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흥미로운 게 있는데, 직매입을 본격 도입한 2015년 이후 재고자산과 매입채무가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한 것과 달리, 매출채권은 이렇다할 변화가 없습니다. 이 부분은 다시 기술하겠지만, 쿠팡이 직매입 비중 확대 이후에도 외상매출을 늘리지 않았거나 매출채권을 빠르게 회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출채권을 조기에 회수하고 매입채무 결제를 지연시키면 그 만큼 현금흐름에 여유가 생깁니다.



특히 거래방식 변경으로 거래처 또는 고객과 주고받는 돈의 단위가 달라지면서, 들고 나는 현금흐름의 차이 역시 커지게 됩니다. 손익계산서의 영업적자도 커지고, 현금흐름표의 영업현금흐름 적자도 커지죠. 손익계산서와 현금흐름표에서 쿠팡의 영업적자와 영업활동 현금흐름 적자가 2015년을 전후해 크게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업적자와 영업현금흐름 적자가 커진 것은 쿠팡의 적자 경영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만, 2014년 이전과 2015년 이전이 마치 다른 회사의 그것처럼 규모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결국 거래 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위 그림에서 영업적자에 비해 영업현금흐름 적자가 매년 더 적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쿠팡이 매출채권과 매입채무를 다르게 관리하면서, 즉 매출채권은 가능한 줄이고 매입채무를 늘리면서(또는 줄이지 않으면서) 현금흐름에 여유가 생긴 겁니다. 유통업체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운전자본 운용이죠.


대규모 물류센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합니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하는 쿠팡의 전략상 그 만한 자금을 내부에서 창출하기 어렵죠. 실제로 쿠팡은 영업활동에서 2015년 이후 4년간 총 2조 136억원의 현금을 까먹습니다.


여기에 물류센터 건립을 위해 대규모 투자까지 해야 했으니 현금부족액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외부자금 유치를 통해 이 부족분을 메우지 않으면 쿠팡의 금고는 바닥이 나겠죠.



공동구매를 주선하면서 받는 수수료를 매출로 인식하다가, 판매액 자체를 매출액으로 기록하는 회계 변경은 그래서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외형을 부풀려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전략의 수정과 목표의 재설정을 의미하는 것이죠. 한국의 아마존닷컴이라는 지향이 생긴 겁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달라진 재무제표는 아마존닷컴보다는 오히려 대형 할인점에 가깝습니다. 중개 수수료 수취 방식에서 직매입 방식으로 바꾸면서 달라진 변화이기 때문이죠. 오프라인 유통업체 중에 백화점이 수수료를 매출로 인식하는 방식이라면, 할인점은 직매입 비중을 크게 높인 방식이었죠. 이걸 온라인 유통에 대입한 것과 유사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프라인 온라인 온라인몰이 외부 배송업체를 활용하는 것과 달리 쿠팡은 자체적인 배송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상의 적자 경영과 로켓배송의 도입은 성장에 올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대규모 투자와 인건비 부담, 그리고 영업에서 발생하는 적자, 결국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최소한 당분간은 쿠팡이 밑 빠진 항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성장에 따른 매출 확대가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내 영업을 흑자로 돌려놓기 전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