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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기업가치가 10조원이라고들 합니다. 전통적인 기업가치 평가 방법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숫자입니다. 국내 상장사의 평균 주가수익배율(PER)이 대략 15정도 된다고 보면 10조원의 주식가치가 나오기 위해서는 당기순이익이 6천억원에서 7천억원이 되어야 합니다. 쿠팡의 성장성을 고려해 PER를 아주 높게(가령 30쯤?) 잡아도 줄잡아 3천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야 기업가치가 10조원 언저리로 갈 수 있습니다.
매출이 늘면 늘수록 적자 폭이 커지고 있는 지금의 국면에서는 대체 언제쯤 그 정도의 수익을 쿠팡이 낼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전문가라고 해도 그 시점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을 겁니다. 아니 대부분의 투자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쿠팡이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10조원의 기업가치는 쿠팡의 잠재적인 수익창출능력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수익창출능력에 어울리지 않는 기업가치를 자랑하는 비슷한 사례가 있죠? 우버와 디디추싱등 차량 공유업체입니다. 둘 다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SVF)가 투자한 곳입니다. 운 좋게 찾아낸 SK증권 보고서에 아래와 같은 그림이 있더라고요.
지난해 3월 기준이기는 합니다. 1200억 달러는 전문가들의 예상치였고, 상장 첫날 시가총액 697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2월 18일 현재 684억 달러입니다. 기대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우버의 기업가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쿠팡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에 물음표(?)가 달려 있기 때문이죠. 여전히 큰 폭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과연 지속가능한 기업인가'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버의 시가총액은 여전히 현대차나 GM 등 주요 완성차 업체를 웃돕니다. 우버와 디디추싱 등 차량 공유업체들이 결국 완성차 판매 시장을 잠식하고 모빌리티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는 기대가 여전히 크다는 걸 의미하겠죠. 모빌리티의 핵심은 고객의 승차 정보와 인공지능(AI)일 것이고 이는 SVF의 투자 키워드입니다.
쿠팡의 기업가치도 데이터에 있다고들 말합니다. 그럴 만한 근거가 여럿 있지요.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의 MP(Managing Partner)인 제프리 하우젠볼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셔플리해외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이런 발언을 했다고 해요.
"We'll have breadth versus depth. Amazon's going to know
everything you shop on Amazon, but we may know more about
your shopping habits on a global basis across 25 different E-Commerce sites.
Softbank doesn't necessarily have to own all the data; their portfolio companies will."
SVF는 전 세계 25개 e커머스 사이트에서 고객들이 쇼핑하는 모든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아마존보다 낫다는 겁니다. SVF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주요 포트폴리오 회사에서 수집하는 '데이터'인 것이고, 그 데이터와 AI가 결합되었을 때 '가치'가 창출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포트폴리오 중 하나가 쿠팡이죠.
그러니까 10조원의 기업가치는 쿠팡이 축적하는 고객 정보, 구매 정보, 물류 정보 등의 데이터에 있는 것이고, 그 데이터들이 SVF의 다른 투자기업의 데이터들과 결합했을 때 10조원의 가치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쿠팡이 스스로 축적한 데이터들을 비즈니스로 엮어내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없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어쨌든 그 데이터들이 결국 쿠팡의 수익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데이터를 활용해 쿠팡이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조차 압도적으로 누르고 아마존과 같은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고요. 이는 롯데와 신세계가 지배하는 오프라인 유통시장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 되겠죠.
하지만 좁은 국내 유통시장의 패권자가 된다고 해서 과연 그 정도의 규모의 경제 달성이 가능할지, 롯데와 신세계가 쿠팡에게 그렇게 쉽게 유통업의 권자를 내줄지, 혹시 그 시기가 온다고 해도 그때까지 발생할 적자를 메울, 얼마나 투입될지 모를 자본을 계속해서 공급받을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한 것이 사실입니다.
쿠팡과 아주 유사한 기업이 국내에 하나 더 있죠. 지금은 쿠팡도 하고 있고, SSG.com도 비슷하게 하고 있는 새벽배송을 처음 시작한 마켓컬리(주식회사 컬리)입니다. 농산물 등 신선식품을 직매입·직매출 방식으로 공급하는 컬리의 모델은 쿠팡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규모가 쿠팡에 비해 아주 작기는 하지만 재무제표로 나타나는 모습도 아주 유사합니다.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영업손실 역시 급증하고 있습니다. 매출 성장과 더불어 영업활동에서 더 많은 현금 유출이 발생하고 있고 기업 규모에 비해 자본적 지출에 대한 부담도 상당합니다. 2018년 기준으로 약 300억원의 현금흐름이 부족한 상황이 되었죠.
결손이 700억원 가까이 누적되었습니다. 결국 자본잠식에 이르게 되자 2018년 우선주 중심으로 대규모 증자를 단행했습니다. 현재 자본총계는 304억원, 2018년 667억원의 증자를 포함해 최근 4년간 투입된 931억원의 자본 중 3분의 1이 남았습니다. 1년 영업손실을 메울 수도 없는 정도입니다. 손실이 더 커지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요.
주식회사 컬리는 결국 추가 자본을 유치합니다. 지난해 5월 세콰이어캐피탈 차이나로부터 1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죠. 들리는 말로는 기존의 우선주주인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들이 추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다른 투자처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일부 주주들은 엑시트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현재 컬리의 기업가치는 5000억원 정도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 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매각을 시도했지만, 매수하려는 측이 제시한 건 더 낮은 가격이어서 무산됐다는 험한 소문이죠.
컬리가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굳건한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신선식품의 샛별배송은 신선했지만, 쿠팡과 SSG.COM에 의해 너무나 쉽게 복사(COPY)가 되었습니다.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없는 것이죠. '적자 성장'을 하면서도 살아남는 길은 튼튼한 돈줄을 확보하는 것 뿐입니다. 회사측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하고 매각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겠지요.
쿠팡을 컬리에 비교하는 건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돈줄의 존재를 제외하면 크게 다를 것도 없지요. 손정의 회장의 인내심이 먼저 끝을 보이느냐, 쿠팡이 10조원의 기업가치를 먼저 보여줄 것이냐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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