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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커머스 전쟁의 최후의 승자(승자가 있다는 전제하에)를 예측하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용어가 바로 '풀필먼트(Fulfillment)' 입니다. 아마존이 미국 온라인 쇼핑 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풀필먼트입니다.


풀필먼트는 '고객의 주문 처리'를 뜻하죠. 고객이 주문을 하면 물류센터에서 제품을 피킹(picking)하고 패킹(packing)해서 배송을 하고, 고객이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면 교환/환불 서비스까지 하는 전체 프로세스를 말합니다. 이해가 쉽지는 않죠? 사람이 수작업으로 재고를 관리하는 곳이 창고라면, 컨베이어벨트와 자동화 설비가 도입된 것이 물류센터이고, 고객의 주문 데이터와 로봇과 각종 정보기술(IT)이 접목한 것이 풀필먼트센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마존은 이커머스 기업이죠? 그런데 아마존은 연차보고서에 'We are the transportation service provider'라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커머스가 아닌 운수업에서 찾고 있는 겁니다. 수익구조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아마존은 상품을 팔아서 얻는 마진이 극히 적습니다. 거의 노마진으로 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가장 많은 수입은 AWS(Amazon Web Service)에서 얻고요. 물류수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FBA(Fulfillment by Amazon) 서비스입니다.



FBA는 일종의 제3자 물류(3PL)이죠. 아마존은 자신이 직접 판매하는 상품 뿐 아니라 자신의 오픈마켓에 입점한 판매자들에게도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것이 FBA입니다. 고객이 주문을 하기도 전에 판매자는 아마존에 제품을 보냅니다. 아마존은 방대한 고객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객과 가장 가까운 물류센터에 그 제품을 보관하고, 고객이 주문하면 배송을 시작하는 것이죠. 판매자는 자신의 브랜드를 입혀 물건만 제공하면 되고, 나머지는 아마존이 다 해주는 겁니다.


아마존이 풀필먼트를 도입하면서 압도적인 배송 속도로 경쟁자인 이베이를 따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FBA를 도입하면서 온라인쇼핑의 지배자로 우뚝 서는 한편 본격적인 수익을 내기 시작했죠.


스스로를 운수기업이라고 칭하는 아마존은 배송 속도에 무척이나 집착하나 봅니다. 2014년 1월에 예측 배송(Anticipatory Shipping)이라는 것을 개발해 특허 등록을 하는데, 고객이 주문을 하기 전에 배송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설마 실제로 주문 전에 배송을 하지는 않겠죠? 고객의 주문을 예측해 가장 가까운 물류센터에 보관을 하다가 고객이 주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배송을 시작한다는 정도로 이해가 됩니다.


국내 유통시장에서도 풀필먼트가 화두입니다. 아마존을 따라하는 쿠팡이 풀필먼트를 도입해 로켓배송을 실현시켰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쿠팡은 직매입 상품에만 풀필먼트 서비스를 적용할 뿐이고, 오픈 마켓으로 확대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지난 2018년에 쿠팡풀필먼트서비스(유)를 분리하고 올들어 인력을 대거 채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걸 보면 오픈마켓 입점업체에도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준비하나 봅니다.


오히려 이베이코리아의 스마일배송이 아마존의 FBA와 거의 동일한 서비스를 하고 있죠. 동탄에 메가 풀필먼트 센터를 세우고 올해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다만 이베이코리아는 쿠팡맨이 없기 때문에 외부 배송업체와 제휴하는 형태로 하고 있죠. 신세계 그룹이 로젠택배 인수를 추진한다죠? 로젠택배의 전국 배송 거점을 풀필먼트센터로 활용하고 쿠팡처럼 직접 배송하겠다는 계획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풀필먼트가 이커머스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물류업체나 배송업체도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요. 국내 택배회사 중 1위인 CJ대한통운은 곤지암 허브터미널에 풀필먼트 서비스가 가능한 3층짜리 창고가 있어 유력한 후보로 꼽힙니다. 물론 독자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여러 e커머스들과 제휴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겠죠. 기존의 물류업체들도 속속 풀필먼트센터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고, 스타트업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이버가 풀필먼트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아시다시피 네이버는 거의 전국민이 사용하고 있는 검색엔진으로 하루 2500만명이 방문하는 최고의 플랫폼이죠. 그리고 그 안에는 네이버쇼핑이라는 비즈니스플랫폼이 있습니다.



네이버는 이미 국내 e커머스 시장의 숨은 1인자일지 모릅니다. 네이버가 네이버쇼핑 거래액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지 알 수 없지만 2018년 기준 거래액이 10조원이랍니다. 이베이코리아에 이은 2위입니다. 네이버쇼핑이 가격비교를 위주로 한다면, 네이버 플랫폼에 입점하는 스마트스토어는 일종의 오픈마켓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오픈마켓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익구조가 다르거든요. 오픈마켓은 카테고리별로 수수료율이 다르고, 계약에 따라서도 수수료가 다릅니다. 그런데 네이버는 네이버페이 결제금액에 따른 결제수수료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네이버의 플랫폼 안에 판매자와 구매자가 있고, 거기서 이루어지면 그게 오픈마켓이죠. 경제적 영향력에는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지난 편에 인용했던 와이즈리테일의 통계입니다. 지난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결제한 온라인서비스가 네이버였습니다. 물론 전부 쇼핑에서 나온 건 아닙니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다른 디지털 콘텐츠를 구매한 비중도 꽤 되겠죠. 하지만 비즈니스플랫폼으로 네이버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통계이죠. 심지어 예상과는 다르게 10대에서 40대까지, 50대 이후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다른 플랫폼을 따돌리고 가장 많은 결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네이버는 사실상 모든 마켓플레이스의 게이트웨이나 다름없죠. 어쩌면 오픈마켓의 오픈마켓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소규모 판매업자에서부터 백화점 이마트 홈쇼핑은 물론 옥션/G마켓, 11번가 등 오픈마켓도 네이버 플랫폼을 떠나기 어렵습니다.


그 안에 스마트스토어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네이버는 사이버 공간만 빌려주고 결제 수수료만 챙겼지 배송에 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스토어에 입점하려는 판매자는 줄을 섰습니다.


우선은 전 국민이 이용하는 플랫폼이니 잠재 고객이 많고요. 노출이 잘 됩니다. 네이버페이를 통해 편리한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수료가 저렴합니다. 스마트스토어 입점업체가 네이버쇼핑에도 노출되면 최대 5.85%, 노출되지 않으면 최대 3.85%의 수수료만 내면 됩니다.



네이버는 네이버 쇼핑을 미래 성장엔진으로 키울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한성숙 대표는 올해 초 '모든 온라인쇼핑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죠.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팔겠다는 아마존의 선언과 비슷하게 들립니다.


네이버가 쿠팡과 비교해 뒤지는 게 있다면 유일하게 배송 속도일 것입니다. 자체 물류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배송 인력을 두고 있지도 않으니까요. 지금은 상품의 보관과 배송 모두 판매업자가 알아서 해야 합니다.


네이버가 스마트스토어 입점업체에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판매업자들은 피킹, 패킹, 출고 등을 더 이상 직접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배송 속도는 쿠팡의 로켓배송이나 이베이코리아의 스마일배송 만큼이나 빨라질 수 있습니다.


방대한 고객의 주문 데이터는 네이버도 이미 확보를 하고 있고요. 데이터의 축적 및 가공 능력, 인공지능, IT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는 아마도 쿠팡이나 신세계를 앞설 겁니다. IT 기업이잖아요. 고객의 주문 성향은 물론 사회적 트렌드나 날씨 등의 빅 데이터를 결합해 주문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다른 그 어떤 업체들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e커머스 시장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네이버를 꼽지 않을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