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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두산밥캣과 두산건설 매각이 순리이긴 한데, 두산밥캣을 실제로 매각하기에는 걸림돌이 좀 있습니다. 지난 11편에서 본 것처럼 두산인프라코어가 두산밥캣을 통해 수출하는 굴착기가 지난해 기준 2조2000억원에 달하는데, 밥캣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이 수출 경로가 유지될 수 있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두산인프라코어 연결기준 매출이 지난해 8.2조원인데, 밥캣을 매각하면 6조원 정도로 줄게 되고, 밥캣을 통해 수출하는 2조2000억원의 굴착기 매출마저 사라진다면 인프라코어의 타격이 너무 큽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제3자에게 밥캣이 매각된다고 해도 일정 기간 인프라코어와 매출-매입 거래를 유지한다는 계약을 해도 되고, 해외 자회사들을 동원해 밥캣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울 수도 있을 겁니다. 두산그룹이 그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배구조상 두산밥캣이 두산중공업의 자회사가 아닌 손자회사라는 걸림돌도 있습니다. 가령 밥캣 지분을 전량 매각해 대략 1조5000억원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다고 해도 주인은 두산중공업이 아닌 인프라코어가 됩니다. 두산중공업에 즉각적으로 유동성이 공급되지 않죠.


두산밥캣 매각대금을 두산중공업이 가져오려면 형식적인 거래가 필요합니다. 두산중공업의 자산을 인프라코어에 매각하고 현금을 가져오는 식이죠. 과거 금호그룹이 어려울 때 참 많이 썼던 방법이죠? 두산중공업의 처분 가능한 자산이라면 단연코 관계회사나 종속회사 지분입니다. 두산건설, 두산큐벡스, 두산메카텍 등이지요. 그것 말고는 딱히 넘길 만한 것도 없습니다. 유·무형자산은 설비자산이니 팔기 곤란하고, 투자부동산이나 유가증권 등 비영업관련 자산도 없습니다.


그런데 두산인프라코어가 두산밥캣을 판 돈으로 두산건설이나 두산메카텍을 두산중공업에서 사온다고 하면, 두산인프라코어의 다른 주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죠. 두산건설이나 두산메카텍이 두산인프라코어와 시너지가 날 것도 없으니 사올 명분이 없습니다. 설사 두산중공업이 정상화된 후에 매각한 자산을 되사온다는 이면계약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주주들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간단히 해결할 방법이 있죠. 두산인프라코어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인적분할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를 두산중공업이 흡수합병하고 두산밥캣 지분을 매각하면 매각대금은 두산중공업의 것이 됩니다. 흡수합병 과정에서 지주회사의 다른 주주들에게 주식교환을 해야 하니 신주발행이 필요하겠네요.



두산그룹 입장에서 베스트 시나리오는 두산건설을 제값에 매각하는 것이죠. 이미 물 건너간 것 같지만 말이죠. 팔고 싶어도 원매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미 지난해 모 그룹과 물밑 협상을 했지만 무산되었고, 일부 사모 펀드들과도 접촉을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고 하지요. 더벨의 보도에 따르면 국내 한 내의전문업체가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모양인데 아직 입질을 하고 있지는 않나 봅니다.


원매자가 없는 이유는 결국 하나지요. 가격이 맞지 않는 겁니다. 건설업황이 좋지 않고 차입금이 많고 경쟁력이 하락한 이유들은 가격의 디스카운트 요인이죠. 싸게 팔자고 들면 원매자를 왜 못 구하겠습니까. 제값 가까이 받고자 하니까 못 파는 것이지.


두산그룹이 생각하는 두산건설의 제값은 얼마나 될까요. 매각 협상을 하면서 얼마를 받겠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두산중공업이 공식적으로 공표한 두산건설의 제값은 이미 있습니다. 1조1584억원입니다.



두산중공업은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두산건설 보유지분에 대해 손상차손을 떨었습니다. 각각 6387억원과 612억원씩이니 2년간 약 7000억원을 감액했지요. 하지만 1조5583억원이던 지분의 평가가치는 지난해 1조1158억원으로 3400억원 줄어드는데 그쳤습니다. 76%였던 지분율이 추가 취득을 통해 90%로 상승한 영향이 크지요.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두산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해 3000억원의 신주를 취득해 사실상 완전 자회사로 만들고 상장폐지시켰죠.


이 과정에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두산건설이 증자하기 전에 두산중공업이 우선 3000억원을 두산건설에 대여해 줍니다. 긴급한 유동성을 지원한 것이죠. 그리고 나서 유상증자에는 이 3000억원을 납입합니다. 신주 취득대금을 증자 전에 미리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죠. 그런데 꽤 많은 언론들이 이걸 좀 헷갈려 합니다. 지난해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지원한 유동성이 6000억원이라는 겁니다. 대여금으로 3000억원, 유상증자 참여로 3000억원 해서 말이죠. 그 둘은 같은 돈인데 말입니다.


어느 가치평가회사에 맡겼는지 몰라도 두산건설의 자기자본가치를 1조2908억원으로 매겼습니다. 기업가치 1조9625억원에서 차입부채 6717억원을 제한 값입니다. 이걸 두산건설 발행주식 수로 나누면 주당 3,661원 꼴이네요.


두산건설이 팔린다고 가정해도 과연 이 정도 가격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초 두산중공업이 주식교환 방식으로 두산건설을 완전 자회사로 만들 때 기준 주가가 두산중공업은 5365원, 두산건설은 1331원이었습니다. 지난해 말 가치평가액의 3분의 1이 좀 넘는 수준이죠. 유동성 위기로 급락한 후 어느 정도 회복한 두산중공업 주가가 지금 액면가를 밑돌고 있는데, 두산건설을 매각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올해 초 주식교환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약 7000억원이 됩니다만….


유력한 매각 후보로 꼽히는 자산 중 하나가 두산메카텍이죠. 두산메카텍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죠. 두산그룹 계열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여러 번 모기업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두산중공업 자회사였다가 두산건설이 경영악화에 시달리자 두산건설에 현물출자되었고, 두산건설에 흡수합병됩니다. 그러다 다시 2016년에 분할 설립이 되면서 디아이피홀딩스㈜의 100% 자회사로 바뀌고 이후 ㈜두산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가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현물출자 방식으로 지금은 두산중공업의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현물출자 결정이 이루어진 게 지난해 12월 5일인데, 당시 두산메카텍 100% 지분의 가치가 2382억원으로 매겨졌습니다. 주당 5401원 꼴입니다. 두산건설이 흡수합병 할 때가 3500억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여기도 기업가치가 많이 하락했네요.


현물출자 방식으로 ㈜두산이 계열사에 넘긴 것이니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상장사들의 주가가 급락한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어림잡아 약 3000억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두산메카텍은 석유화학 플랜트에 들어가는 산업용 보일러를 제조합니다. 지난해 매출 3118억원, 영업이익 184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습니다. 증권업계에서는 대략적으로 제조기업의 기업가치를 매길 때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8~10배 정도를 봅니다. 여기서 차입부채를 제하면 주식가치가 나오죠. 두산메카텍의 상각전영업이익은 지난해 기준 300억원이 약간 안됩니다. 후하게 10배를 쳐주면 3000억원이 됩니다. 차입부채는 900억원 정도 되네요. 이걸 빼 주면 주식가치는 2100억원가량 되는군요.



그런데 그 정도라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난해 상각전영업이익이 이례적으로 많습니다. 직전년 까지도 100억원을 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300억원 수준의 상각전영업이익이 나올 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상각전영업이익이 두산메카텍의 현금흐름 창출능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지 확신을 갖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최근 2년간 오히려 크게 줄었거든요. 상각전영업이익의 추세와는 반대입니다.


매출채권이 크게 늘면서 영업이익에는 증가 효과를, 현금흐름에는 감소 효과를 주었습니다. 매출채권이 잘 회수된다면 나중에 현금흐름이 증가하겠지만, 두고 봐야 알 일이죠.


게다가 코로나10 영향으로 국내 기업의 주가가 전반적으로 급락한 상황입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에 설 수 없는 두산그룹 입장까지 감안하면 두산메카텍을 팔아 두산중공업이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더 줄어들 수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 개선에 별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