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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빚을 갚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벌어서 갚는 게 최선이고, (자산을) 팔아서 갚는 게 차선이고, 그것으로 모자랄 때는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유상증자 등)해 갚아야 합니다. 두산중공업에게 벌어서 갚는 건 논외입니다. 조금씩 갚아 나갈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왕창 갚아야 하니까요.
두산그룹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재무구조개선계획(자구안)에서 3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이건 두산중공업의 자산매각과 두산중공업의 외부자금 조달 규모가 3조원으로 계획되었다는 것이 되겠죠. 자산매각은 계열사 보유지분 매각이 중심에 있을 것이고, 외부자금 조달은 유상증자로 귀결이 될 것입니다만, 두산중공업이 발행가능 주식 수를 20억 주로 크게 늘린 것 외에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한도를 5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각각 확대한 것으로 볼 때 다각도의 에퀴티 성격의 자금조달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산중공업이 유상증자를 하기 위해서는43.82%의 지분을 갖고 있는 ㈜두산이 증자에 참여해야 합니다. 총 3조원의 목표 중 1조원을 증자한다고 할 때 최소 4382억원이 필요합니다. 실권이 발생하면 ㈜두산이 감당해야 할 몫이 더 커지겠죠.
두산중공업이 유상증자에 나서기 전에 ㈜두산이 먼저 재원 마련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두산은 유상증자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게 될까요. 역시 자산매각과 유상증자가 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두산그룹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처음으로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게 두산솔루스입니다. 2차전지의 핵심 부품인 전지박과 PCB(인쇄회로기판)에서 도체 역할을 하는 동박을 제조하는 업체로 두산그룹의 미래로 불리는 곳이죠. 그런데 엄밀히 말해 두산솔루스는 두산그룹의 미래라기 보다는 오너 일가의 미래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두산이 매각 대상으로 내놓은 지분은 특수관계인 보유분 포함 61%(의결권이 부활된 우선주 포함, 보통주는 65.08%)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 ㈜두산의 지분은 16.78%이고 나머지는 박정원 회장 포함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거든요. 두산솔루스 매각 자금의 대부분이 오너 일가에게 귀속됩니다.
두산그룹이 두산솔루스 매각으로 최소 9000억원 정도를 기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9000억원에 61% 지분이 매각된다고 했을 때 ㈜두산은 2476억원의 현금이 생기고, 오너 일가에게는 6524억원이 생깁니다. 오너 일가가 출연하겠다는 사재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물론 두산퓨얼셀도 매각될 수 있겠죠? 두산그룹이 제출했다는 자구안의 구체적인 내역을 알 수 없지만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팔 수 있는 건 다 팔겠다고 했다고 하니 두산퓨얼셀도 매각 가능 자산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보도한 언론도 있고요.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 지분이 매각된다고 했을 때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출연하는 것이니 두산중공업에 바로 투입할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두산이 유상증자를 하면, 오너 일가가 사재 출연이라는 명분으로 참여를 하고, 오너 일가의 사재를 출연받은 ㈜두산이 두산솔루스 등을 매각해 확보한 자금에 더해 두산중공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게 될 겁니다.
두산중공업에 사재를 직접 출연하면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만 좋아지죠. 하지만 ㈜두산에 사재를 출연하고 그걸 재원으로 ㈜두산이 두산중공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두산과 두산중공업 두 모자회사의 재무구조가 동시에 개선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일타쌍피라고 할 수 있죠.
게다가 오너 일가는 두산중공업 지분을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보유 주식이 가장 많은 박정원 회장의 지분율이 0.1%에 불과합니다. 오너 일가가 두산중공업에 직접 출연하려면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해야 하지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번거롭고 절반의 효과에 그칩니다.
그러니까 두산솔루스 매각은 두산중공업의 자본확충을 통한 재무구조개선 계획의 첫 단추인 셈입니다. 가장 먼저 매물로 나온 이유가 그런 것이겠죠.
두산솔루스나 두산퓨얼셀이 실제로 매각이 될지, 매각이 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요. 주권이 상장된 곳들이니 따로 가치평가를 할 필요도 별로 없고요.
㈜두산이 보유한 두산타워와 캐쉬카우인 산업차량(지게차) 사업부도 매각대상에 오른 모양이더라고요. 두산타워는 8000억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담보 차입금을 갚고 나면 4000억원 정도 남는다고 하고, 산업차량 사업부는 매출이 1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600억원이 넘게 나오는 곳이니 부채없이 판다면 최소 5000억원은 받지 않을까요. 모트롤(유압기기) 사업부도 매각할 거라고 하는데, 여기도 400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이 나오는 곳입니다. 몇 천억원은 받을 수 있다고 봐야겠지요.
사실 좀 의아합니다. ㈜두산의 자산매각 규모가 상당하거든요. 채권단의 요구 수준이 높았을 것이고 두산중공업을 살리려는 두산그룹의 의지도 그 만큼 강하다는 걸 보여주긴 합니다만 본사로 쓰는 두산타워까지 내다 팔아야 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인가 싶어서 말입니다.
언론에 보도되기로는 두산중공업이 향후 하게 될 유상증자가 1조원 정도로 이야기되는 모양인데, 실권주 포함해서 지분율에 상당하는 것보다 많은 5000억원을 ㈜두산이 참여한다고 가정하면, 그에 비해 ㈜두산이 확보하려는 유동성이 훨씬 많습니다. ㈜두산이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을 받기 위해 하게 될 유상증자까지 더하면 대충 계산해 봐도 2조원이 훌쩍 넘어갈 것 같습니다.
아, 물론 두산솔루스 등이 매각된다고 해도 오너 일가가 손에 쥐게 되는 현금 전액이 ㈜두산의 유상증자에 투입되는 건 아닙니다.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규모는 전적으로 ㈜두산의 유상증자 규모에 달렸죠.
또 오너 일가가 전액 유증에 투입할 수도 없습니다. 대부분 주식이 각종 대출에 담보로 잡혀 있거든요. 61%의 전체 매각대상 지분 중 55%가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증권사에 담보로 제공되었거나 은행에 질권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갚아야 겠죠. 이 지분은 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1조8000억원의 크레디트라인을 설정하는 데에도 후순위 담보로 제공되었습니다. 매각이 되고 나면 다른 담보로 교체가 되겠지요. 아마 ㈜두산이 유상증자를 해서 오너 일가가 받게 되는 신주가 새 담보가 되지 않을까요?
관전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두산솔루스를 두고 삼성, SK, 포스코, LG 등 대기업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고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는데 두산그룹이 과연 다른 대기업에 두산솔루스를 매각하려고 할까요. 그룹의 미래라면서요?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되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콜옵션을 받고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게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더 선호되는 거래일 것 같습니다.
두산그룹에는 전례가 있습니다. 바로 이번에 다시 매물로 등장한 산업차량(지게차) 사업부입니다. 원래 두산인프라코어가 갖고 있던 것인데 2011년에 구조조정을 위해 49% 지분을 스탠다드차타드 사모펀드에 매각했다가 2년 만인 2013년에 ㈜두산이 사들여 합병한 것입니다. 합병 당시 평가액이 2200억원 정도였는데, 그때보다 매출은 50% 정도 늘었고 영업이익은 3배 정도 커졌습니다. 스탠다드차타드 사모펀드는 60%가 넘는 차익을 얻었고요. 두산솔루스가 삼일회계법인을 주관사로 해서 공개 매각된다고 하니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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