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블록체인 업계는 2017년의 짧은 호황을 뒤로 하고 곧바로 보릿고개로 접어듭니다. 2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보릿고개를 가장 힘겹게 넘고 있는 곳이 암호화폐 거래소들인 듯한데 그 중에서도 유독 코빗(Korbit)의 사정이 어렵습니다.


지난해 코빗의 긴축은 애처로울 정도입니다. 우선 많은 직원들을 해고해야 했습니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이지만, 회사 사정이 나빠서 한 거니까요. 물론 희망퇴직을 코빗만 한 것은 아니지만 인력 감축의 폭이 가장 컸을 겁니다. 인건비가 가장 많이 줄었거든요.



급여와 퇴직급여, 복리후생비, 연구개발비는 모두 인력의 규모와 관련된 비용입니다. 연구개발비도 대부분 연구인력의 인건비입니다. 위 차트를 보면 코빗의 사정이 눈에 선합니다. 2017년 짧은 호황의 단물을 본 후 인력이 대거 늘었죠. 2017년 35억원이던 인건비 등이 2018년 163억원으로 거의 5배 증가합니다. 대규모 채용이 있었겠죠.


그런데 몸집을 늘리자 마자 바로 불황이 찾아오죠. 암호화폐 거래가 줄면서 수수료수익이 급감하고 고객들이 빠져나갑니다. 애써 뽑아 놓은 직원의 상당 수가 유휴인력이 되었을 겁니다. 결국 지난해 초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합니다.


언론 보도로는 100명 정도인 직원을 60~70명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건비 등의 지출 규모로 보면 더 많이 줄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4개 인건비 항목의 합계가 65억원으로 2018년의 40%가 살짝 안됩니다. 게다가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퇴직급여가 6억원에서 20억원으로 늘거든요. 퇴직급여를 빼고 나면 인건비는 2018년의 28%밖에 되지 않습니다. 직원을 40% 감축하고, 나머지 직원의 인건비를 50% 줄여야 간신히 나오는 비율입니다.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희망 퇴직의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컸거나 추가 해고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됩니다. 2019년 급여는 29억원으로 대규모 채용이 있기 전인 2017년 25억원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꼭 필요한 최소 인력만 남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출 규모는 얼마되지 않지만 직원들의 회사 생활이 어떠했을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소모품비입니다. 프린터 잉크나 토너, 복사용지, 커피나 음료, 종이컵 등 사내에서 일상적으로 소모하는 품목들에 나가는 돈이죠. 2017년에 2억5500만원을 지출했는데, 지난해에는 고작 1200만원입니다. 상대적으로 보면 거의 쓰지 않은 거죠? 직원들이 사내 근무를 하기는 한 게 맞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프린터 출력도 안하고 복사도 안 한 건가요?


코빗의 자산이 2017년말 3560억원에서 지난해 말 437억원으로 줄었습니다. 대부분 고객예치금이 빠져나가면서 현금이 감소한 것인데, 그것 말고도 지난해 눈에 띄는 게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거래소의 자산이래야 별 게 없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서버 같은 시설장치일텐데요. 지난해 16억원에서 3억원으로 80% 이상 줄었습니다. 물론 장부가액이긴 합니다만, 감가상각누계액까지 줄었네요. 이건, 좀 이상하죠. 시설장치 일부가 매각 등의 이유로 사라졌다는 거거든요. 거래소가 서버를 줄인다고요? 고객의 매수/매도 주문이 들어오면 처리를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자산일텐데? 그것도 금액 기준으로(비록 장부가액이지만) 무려 80%나요?


2017년말 8억원에서 2018년말 16억원으로 커졌다가 지난해말 3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 크게 줄어든 이유가 서버를 처분한 것이라면, 도입한 지 불과 1년된 서버들도 처분 대상에 포함됐다는 소리잖아요? 좀 많이 이상합니다. 장사를 접겠다는 건가…


그런데 놀랍게도 시설장치를 외부 매각이 아니라 폐기까지 했더라고요. 시설장치 뿐 아니라 무형자산 중에도 매각이 아니라 폐기한 게 있습니다. 지난해 유형자산폐기손실이 13억원, 무형자산 폐기손실이 5억원입니다. 폐기손실이니 상각하고 남은 장부가액이 13억원과 5억원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코빗의 유형자산은 비품과 시설장치가 전부입니다. 비품을 갖다 버리지는 않았을 테니 폐기손실은 대부분 시설장치에서 발생한 것이죠. 그런데 13억원이면, 2018년말 전체 시설장치의 대부분입니다. 시설장치와 무형자산(아마도 소프트웨어 정도로 추정됩니다)을 팔지도 못하고 그냥 버렸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임차보증금이 21억원에서 3억원으로 크게 축소된 것도 눈에 들어옵니다. 반면 지급임차료는 8억원에서 15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더군요. 보증금을 줄이는 대신 월세를 더 많이 내는 곳으로 이전을 한 모양이죠? 보증금 18억원이 줄고 임차료 7억원이 늘었으니 약 10억원의 현금이 남는데, 이 만큼의 현금이라도 확보를 하기 위해 임차료를 두 배나 줬다는 게 되나요?


코빗의 진짜 문제는 바로 유동성 부족입니다. 현금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지난해 매출이 37억원이었죠? 급여와 퇴직급여 등 인건비(복리후생비 포함) 총액이 60억원 정도 되었고요. 매출을 전부 현찰로 받았어도 인건비조차 주기 모자란다는 겁니다.


그러니 회사가 유지되려면 있는 현금 까먹고 그것도 모자라면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김정주 회장은 코빗을 팔고자 하는 사람이니 증자를 해줄 리가 없고, 은행 등의 채권자가 돈 떼일 위험을 무릅쓰고 꿔 줄리는 없죠. 그렇다면 최대한 경비 지출을 줄이고 돈 되는 자산을 이것 저것 말아 현금을 내부 조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코빗이 지난해 기록한 적자가 129억원입니다. 이중 현금이 나가지 않는 비용이 40억원이고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수익이 36억원이었죠. 그러니까 현금을 까먹은 적자는 125억원입니다. 이런 저런 운전자본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고객예치금을 빼면 현금 수준에 크게 영향을 미칠 만한 건 없습니다.



매출이 37억원이었는데, 이게 전부 현금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125억원의 각종 경비를 지불할 돈이 없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부랴부랴 보증금 21억원을 빼고 3억원짜리로 바꾸고, 시설장치 일부를 팔고, 미미하지만 약간의 자회사 주식도 처분합니다.


그래도 직원들 인건비 줄 돈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한 일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암호화폐를 매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빗은 지난해 암호화폐를 외부에 매각해 60억원의 현금을 조달합니다. 약 50억원어치의 암호화폐를 10억원 가량 이익을 남기고 팝니다. 이 돈이 직원 인건비 등 회사가 부족한 운영비를 충당하게 되죠. 코빗이 내다 팔 수 있을 만한 돈 되는 자산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나마 암호화폐가 부족한 경비를 채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죠.


현금흐름표로는 2018년과 2017년에 암호화폐 처분 흔적이 없는데, 손익계산서와 아귀가 맞지 않네요. 손익계산서에는 분명히 처분으로 인한 이익과 손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말이죠.


암호화폐를 팔았어도 여전히 부족한 경비를 다 채울 수는 없었죠. 그렇다고 김정주 회장이 보태주는 것도 아니고. 결국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인출해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코빗은 올해부터가 진짜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2017년말 고객 예치금이 뭉치로 들어오면서 3117억원이나 있었는데 거의 다 빠져나갔죠. 지난해 초 531억원 남았는데 252억원이 빠져나가고 이제 280억원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 회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죠. 고객 예치금은 별도 보관을 하고 있어서 쓸 수 없는 돈입니다. 고객 돈이니까요. 회사 몫인 현금은 올해 초 기준으로 13억원 뿐입니다.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으로는 단기금융상품 79억원과 암호화폐 38억원이 남았습니다. 암호화폐 일부를 6개 다른 기업에 대여해 준 게 있는데 이걸 전부 회수한다고 치면 25억원이 들어옵니다. 총 122억원이군요. 은행에 예치된 13억원을 더하면 135억원입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침체가 올해까지 이어진다면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135억원으로는 1년 회사 운영비로 빠듯합니다. 지난해 코빗의 영업비용이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 매고도 174억원이었습니다. 퇴직급여로 20억원의 뭉칫돈이 빠지지 않는다 해도 150억원 수준입니다. 만약에 암호화폐 거래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지난해처럼 30~40억원 정도에 머문다면 올해 말에는 코빗의 예금통장 잔고가 거의 사라질 수 있습니다.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전부 다 내다 팔아서 써도 말이죠.


코빗의 활로는 둘 뿐입니다. 시장이 확 살아나서 암호화폐 거래가 다시 활발해져 수익이 크게 증가한다면 최선이고요. 그렇지 않다면 외부 자금의 수혈이 불가피합니다. 만약 김정주 회장이 코빗을 외부에 매각한다면, 매수자는 코빗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상당한 자본을 추가 투입해야 합니다. 김정주 회장이 10억원~15억원에 내놓았었다는 지분 매수자금이 문제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