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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건이 애초에 빗썸홀딩스를 단독 인수하려고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정훈이 인수에 개입하기 시작한 시점을 알 수 없기 때문이죠.
빗썸홀딩스 지분 인수의 주체인 BTHMB홀딩스의 모회사인 SG테크놀로지의 원래 이름은 BK SG입니다. 아마도 '병건 싱가포르'의 영문 이니셜을 딴 것이겠죠. 그리고 BK SG의 지분 100%를 김병건이 출자한 것이란 보도도 나왔었죠.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정훈은 도중에 BK SG의 지분에 참여한 것이고 그 시점에 사명이 SG브레인테크놀로지로 변경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둘 사이에 약속이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김병건이 처음엔 단독 인수를 하려다 이정훈에게 손을 내밀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처음부터 이정훈 측이 빗썸 인수에 관여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이정훈이 지인과 함께 보유한 지분이 SG테크놀로지의 과반인데다, SG테크놀로지 이사진 4명 중 3명이 빗썸 재직자들이었으니까요. 이정훈을 중심으로 한 빗썸 재직자들이 김병건과 손을 잡고 인수에 나섰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지분을 매각한 김재욱 등도 당연히 합의가 되었겠죠.
다만 인수자금 조성은 김병건의 역할이었을 겁니다. 본인의 주장 대로라면 1000억원 이상의 자기 자금을 빗썸 인수를 위해 투입한데다 나머지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도 김병건이 추진했거든요. 아마도 이정훈 등은 김병건보다 적은 돈을 출자하고 높은 지분율을 인정받았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2월 사달이 납니다. 김병건이 외부자금 유치에 실패하면서 잔금 납입에 실패한 것이죠. 납입일을 3월로, 다시 9월로 두 차례 연기했지만 역시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때부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죠. 암호화폐 시장은 2018년 상반기를 지나면서 급격하게 위축됩니다. 빗썸의 몸값도 급락을 했겠죠. 김재욱 등 구주주는 빗썸홀딩스의 지분 대부분을 BTHMB 등에 넘기고 잔금을 기다리고 있었고, 비덴트 버킷스튜디오 비티원 등 빗썸 인수를 위해 동원됐던 상장사들은 유동성이 말라갈 시점이었을 겁니다. 자체적으로 돈을 잘 버는 회사들이 아니었고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등으로 끌어온 자금도 타법인 지분 취득에 거의 다 썼을 테니까요.
BTHMB가 최종적으로 잔금 납입에 실패한 이후 비덴트가 질권을 행사해 1150억원에 빗썸홀딩스 지분을 지난해 연말에 되사오죠. 비덴트가 단일 최대주주가 된 겁니다. 비덴트는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을까요.
우선 550억원은 비티원을 제3자로 한 유상증자로 마련합니다. 비덴트가 유상증자한 날 비티원도 버킷스튜디오를 제3자로 165억원의 유상증자를 하죠. 또 비슷한 시기에 버킷스튜디오가 비트갤럭시아1호 투자조합을 대상으로 109억원의 유상증자를 하고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상증자는 김재욱의 빗썸 인수 출발점인 비트갤럭시아1호 투자조합까지 이어지는 것이죠. 비티원은 비트갤럭시아에서 시작된 유상증자와 금융자산 매각 등으로 만든 550억원을 비덴트에 출자하게 됩니다.
나머지 자금의 출처는 BTHMB가 두 번째 잔금 납입을 실패한 이후인 4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비덴트가 그 달에 10회차 전환사채 50억원을 ㈜재담이라는 곳을 대상으로 발행합니다. 최종적으로 잔금 납입에 실패하기 직전인 9월25일에는 11회차 전환사채 500억원을 발행하는데, 인수자는 사운더스투자조합(250억원)과 비엔글로벌투자조합(250억원)이라는 곳입니다. 그리고 11월 비덴트는 다시 12회차 전환사채 100억원을 추가 발행하는데 이번에는 체슬로투자조합이라는 곳에서 인수합니다. 세 차례 전환사채 발행 총액은 650억원이 됩니다.
그런데 10~12회차 전환사채 인수자금은 사실 한 곳에서 나옵니다. 바로 국내 M&A 시장의 큰 손으로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으로 4년형을 구형 받았다가 올해 4월 무죄를 선고받은 원영식 W홀딩컴퍼니 회장이죠. 비덴트 전환사채를 인수한 곳들 뒤에는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코스닥 상장사 아이오케이㈜가 있고, 아이오케이의 최대주주는 W홀딩컴퍼니, W홀딩컴퍼니의 최대주주는 오션인더블유인데, 오션인더블유는 원영식 부자가 8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비덴트의 현재 대주주는 ㈜비티원입니다. 비티원은 김재욱 측과 이정훈 측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지만 현재 경영권은 김재욱 측이 쥐고 있죠. 그런데 아이오케이가 전환사채 전부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지분율이 24.84%가 됩니다. 단일 최대 주주에 오르게 되죠.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지만, 비덴트의 경영권을 가져갈 수도 있는 겁니다. 비덴트가 빗썸의 경영권을 확보한다면, 결국 원영식이 빗썸의 주인이 되는 셈이죠.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재욱 측이 원영식을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빗썸을 되찾는 게 목적이었을까요? 아니면 빗썸의 새 주인으로 원영식을 선택한 것일까요? 아마도 투자를 결정할 당시 원영식은 꽃놀이패를 쥔 입장이었을 겁니다.
비덴트가 빗썸을 인수하는데 성공한다는 가정 하에, 암호화폐 시장이 살아나 빗썸의 몸값이 오르면 비덴트의 새 주인이 되어 빗썸을 손에 넣을 수도 있고, 빗썸 인수를 재료로 비덴트의 주가가 오르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뒤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올릴 수도 있었겠죠.
500억원이 들어간 11회차 전환사채가 발행되기 전날 비덴트의 주가는 9500원이었습니다. 전환사채의 행사가격은 7364원이었고요.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죠. 비덴트가 빗썸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비덴트 주가는 11월에 1만6000원대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박의 가능성이 보이는 투자였던 것이죠.
비덴트 주가는 7월 현재 6000원을 밑돌고 있습니다. 주가 하락에 따라 11회차 전환사채 행사가격은 5064원으로 조정되었죠. 올해 9월25일부터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데, 그 시점에 전환할 정도의 매력을 갖게 될지는 지켜봐야 겠지만 당초 기대와는 크게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할 겁니다.
비덴트는 빗썸홀딩스의 단일 최대 주주이기는 하지만, 경영권을 갖고 오지는 못했죠. 이정훈이 우호지분을 포함해 65%의 의결권을 확보하고 있으니까요. 현재의 구도가 지속된다면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원영식의 대박의 꿈은 멀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영식의 투자가 성공하지 못하면 곤란해 지는 건 비덴트와 김재욱 측입니다. 원영식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올해 9월부터 조기상환을 요청할 수도 있거든요. 만약 원영식이 원리금만 받고 발을 뺀다면, 비덴트는 최소 600억원 이상의 상환자금을 마련해야 할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비덴트는 최근 2년 동안 영업에서 돈을 벌기는 커녕 까먹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18억원, 2018년에는 6억원의 현금 적자를 기록했죠. 올 들어서도 1분기에 (-)22억원의 영업현금흐름을 보였습니다. 3월말 현재 170억원의 현금을 전부 전환사채 상환에 쓰더라도 430억원이 더 필요하게 되죠.
비덴트 입장에서는 꽤 큰 돈입니다. 비덴트의 신용을 보고 그 많은 돈을 꿔 줄 곳을 찾기는 어려워 보이고, 담보 잡힐 자산도 별로 없습니다. 외부 자금을 유치하지 못하면 결국 기존 대주주인 비트갤럭시아1호 투자조합이나 비티원이 증자 대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빗썸 인수를 위재 조성된 비트갤럭시아1호 투자조합에 아직 여분의 자금이 있을까요? 만년 적자 회사인 비티원은 또 어떨까요?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상증자가 가능할까요? 이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빗썸의 경영권이나 비티원의 경영권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일 지도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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