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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브라더스코리아의 후신인 플리트 엔터테인먼트( 9월3일 주주총회에서 스튜디오산타클로스로 사명 변경 예정)를 엔에스엔과 공동 인수한 세미콘라이트의 대주주 퓨전(숨이 찹니다…)은 풍전등화 같은 처지입니다. 감사의견 거절과 결손 누적으로 상장폐지의 위기에 놓여 있는데, 이 위기를 잘 넘길지 장담하기 어렵거니와 어찌어찌 넘긴다고 해도 그 후 미래가 암담합니다.


본업이 잘 돼서 기사회생하는 건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영업적자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매출마저 급감하고 있습니다.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성자산은 2억원 남짓이고 그 외 단기에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도 별로 없습니다. 본업보다는 기업 사고 팔기에 여념이 없는 곳이라 금융자산도 계열사 주식이나 전환사채 등이거든요. 그 중 가장 큰 게 세미콘라이트 지분과 전환사채인데,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팔지 않을 겁니다. 남아 있는 최후의 히든카드쯤 되니까요.


퓨전은 현재 40억원의 유상증자와 26억원의 전환사채 발행을 추진 중입니다. 조달 완료일이 6월에서 7월로, 다시 9월말로 연기됐습니다. 규모도 각각 50억원에서 크게 줄어든 겁니다. 유상증자는 에스엘홀딩스컨소시엄1호, 전환사채는 에스엘홀딩스컨소시엄이 인수자인데, 원래 퓨전홀딩스컨소시엄1호, 퓨전홀딩스컨소시엄에서 바뀐 겁니다.



잘 될지는 두고 봐야 겠습니다. 에스엘홀딩스컨소시엄이나 퓨전홀딩스컨소시엄이나 이름만 다를 뿐입니다. 출자자가 온영두 회장과 그의 측근들로 보입니다. 퓨전홀딩스컨소시엄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금 3000만원으로 설립된 일종의 조합이니, 사실상 인수자금 전액을 외부에서 유치해야 합니다. 이미 투자자를 구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퓨전이 상장폐지 가능성이 있는 기업인데다 이미 주변에서 상당히 많은 돈을 끌어 썼습니다.


퓨전홀딩스는 이미 지난해 자금조달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퓨전이 발행하는 250억원의 전환사채와 50억원의 유상 신주를 인수하기로 했지만, 둘 다 실패했죠. 그 바람에 퓨전에 매각된 에스엔케이글로벌, 다오요트 등의 구주주들이 유상 신주를 나누어 인수했죠. 250억원의 전환사채는 2018년 9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6개월 동안 무려 4차례나 연기했지만 결국 발행을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감사의견 거절이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을 겁니다. 시기나 규모로 봤을 때 이 전환사채는 세미콘라이트 인수자금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퓨전이 자금조달에 실패해 벼랑 끝에 몰리면 피 볼 사람들 많습니다. 온양두 회장에게 돈을 대줬던 사람들 말입니다. 퓨전의 자금조달은 주로 퓨전홀딩스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퓨전홀딩스는 온양두회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지만 자체 자금이 없는 회사입니다. 역시 대부분 외부 자금을 차입했을 겁니다.


퓨전홀딩스가 컨소시엄을 만들어 조달한 자금도 마찬가지지요. 일례로 지난해 퓨전이 세미콘라이트 인수 이후 발행한 6회차와 7회차 전환사채 50억원과 60억원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6회차는 상상인증권이 인수했다가 퓨전컨소시엄1호에 매도했는데, 퓨전컨소시엄1호는 올 들어서 제3의 곳으로 전액 처분했습니다. 7회차 60억원 역시 인수 직후 10곳에 분산 매각했죠. 아마 조합 출자자들일 겁니다.


지난해 8월에 5회차로 발행한 25억원은 갤럭시아1호조합이 인수처인데 총 자산 8억원대인 바이오트리㈜가 50% 지분으로 설립한 자본금 2500만원짜리 조합입니다. 25억원의 인수자금 대부분은 외부자금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바이오트리㈜는 세미콘라이트가 16.23%의 지분을 보유한 소규모 비상장회사입니다. 퓨전도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퓨전의 자금조달용 회사 중 하나였을 겁니다. 돈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돕니다.



퓨전의 향방에 전전긍긍할 곳들 중에는 퓨전이 진행한 각종 기업사냥에 관여된 사람 또는 기업이 여럿입니다. 대표적으로 세미콘라이트를 퓨전에 넘긴 조호걸 회장이 있습니다. 세미콘라이트의 직전 최대주주는 에스엠씨홀딩스였죠. 여기 대주주가 조호걸 회장이고요.


지난 편에서 보았듯 에스엠씨홀딩스는 세미콘라이트를 매각하는 당일에, 조호걸회장과 조 회장의 개인 회사인 케이비즈원에 싸게 지분을 넘긴 후 이걸 퓨전이 웃돈을 얹어 사게 하잖아요. 이 거래가 완전히 종결된 게 8월초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퓨전이 3회차와 4회차 전환사채를 각각 27억원과 25억원 규모로 발행을 하거든요. 이걸 인수한 곳이 에스엠씨홀딩스(3회차)와 조호걸회장 및 케이비즈원(4회차)였습니다. 팔 사람이 살 사람에게 인수자금을 보태 준 것이죠. 조회장과 온회장은 상부상조(?)가 잘 되는 사이인 게 분명합니다. 퓨전이 세미콘라이트를 인수하기 한달쯤 전에 에스엠씨홀딩스가 퓨전에 5억원을 꿔준 일도 있었죠.


5회차 이전 전환사채는 이미 전환기일이 도래했죠. 주식으로 전환해 팔아버렸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꼼짝 없이 묶여 있을 겁니다. 6회차 이후 전환사채는 11월이면 전환기일이 모두 도래하는데, 주식으로 전환을 한다고 해도 내년 4월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해야만 깔끔한 회수가 가능하겠죠.


세미콘라이트는 퓨전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당장은 내년 4월에 상장폐지를 면하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온회장을 비롯한 퓨전의 투자자들이 원금을 회수하려면 세미콘라이트가 살아야 합니다.


퓨전의 M&A 자금은 세미콘라이트로 흘러 들어 갑니다. 퓨전은 더 이상 인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죠. 7회차 전환사채가 대표 사례입니다. 퓨전컨소시엄이 퓨전의 전환사채를 인수하고, 퓨전이 세미콘라이트의 전환사채를 같은 금액만큼 인수하죠. 세미콘라이트는 이렇게 조성된 자금과 자체적으로 조달한 자금을 더해 타법인 지분을 사는 거죠. 액트를 사고 팔았고, 엔터테인먼트사인 엔터메이트를 사려다 철회하고 플리트 엔터테인먼트를 엔에스엔과 공동 인수했죠.



당초에는 퓨전컨소시엄이 직접 세미콘라이트 전환사채 60억원을 인수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퓨전을 끼워 넣었죠. 세미콘라이트 주가가 오르면 퓨전이 주식으로 전환하고, 퓨전 주가가 오르면 퓨전홀딩스컨소시엄이 주식으로 전환할 생각이었나 봅니다. 같은 60억원으로 퓨전과 세미콘라이트 두 기업이 각각 60억원의 자금조달에 성공하는 모양이 갖춰지죠. 주식으로 전환에 성공하면 재무구조도 함께 좋아지고 말입니다.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퓨전은 세미콘라이트 전환사채를 에스엔케이글로벌 외 6인에게 매각했는데, 60억원 중 40억원이 최근 중도상환 요청을 받았죠. 20억원만 남았습니다. 투자자들의 사정이 안 좋았거나, 세미콘라이트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웠거나 둘 중 하나겠죠.


퓨전에게는 세미콘라이트를 빼면 남은 자산이 거의 없습니다. 6월말 현재 총자산이 408억원인데, 세미콘라이트 지분이 207억원이고, 전환사채 60억원이 있죠. 비상장사인 에스엔케이글로벌 지분 100억원이 있지만 처분가능한 자산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퓨전이 지속가능하려면, 내년 4월 상장폐지를 모면하더라도 세미콘라이트에서 대박이 나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미콘라이트 역시 영업으로 돈을 버는 회사가 아니란 말이죠. 기업을 사고 파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세미콘라이트는 액트를 매각하고 플리트 엔터테인먼트를 매입 중입니다. 액트를 사는데 264억원이 들었는데, 221만주를 121억원에 메리디안홀딩스측에 팔고 377만여주를 매도 중입니다. 남은 주식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이 팔기 때문에 아마 차익을 남기고 팔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플리트 엔터테인먼트는 11월까지 인수 완료해야 합니다. 잔금을 지급할 재원을 마련해야 하죠.


액트를 매각한 자금은 운영자금으로 쓸 목적이라고 회사가 공시했습니다. 그렇다고 꼭 그렇게 쓰는 건 아니지만, 내부 운영자금이 부족하니까 그렇게 공시를 했겠죠. 플리트 엔터테인먼트 인수자금에 전액 투입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결국 또 자금 조달을 해야 하죠.


하지만 꼭 성공해야 하는 입장이죠. 퓨전이 살려면 세미콘라이트가 살아야 하고, 세미콘라이트가 살려면 플리트 엔터테인먼트 주가가 승승장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금이 원활하게 돌고, 향후 퓨전의 주변에 있는 많은 투자자들이 탈출(exit)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