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세미콘라이트가 코스닥 상장사 ㈜액트의 경영권 지분를 인수 계약을 한 게 지난해 10월14일입니다. 최원석 외 8인의 양도인에게서 구주 251만3359주(14.47%)를 주당 5000원씩 126억원에 양수합니다. 11월에는 액트의 유상 신주를 주당 4005원에 347만3000주를 139억원에 취득하고, 또 올해 3월말에 30만5000주를 약 14억원에 매입했으니 총 취득가액이 278억원(지분율 32.10%)이 됩니다.


세미콘라이트는 올해 5월15일 ㈜액트 매각을 결정하죠. 딱 7개월짜리 단기투자인 셈입니다. 물론 액트를 사고 파는 최종 의사결정은 당연히 회장인 온영두씨죠. 우리 개인은 주식을 단타하는데, 이 세계는 경영권을 단타 칩니다.


당시 액트의 최대 주주는 ㈜낙산홀딩스라는 대부업체로 8.0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죠. 사내이사인 최원석 외 8인이 세미콘라이트에 지분을 매각하는 바람에 낙산홀딩스는 졸지에 2대 주주가 됩니다. 아마 낙산홀딩스는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최원석 외 8인은 당초 블랙힐1호 투자목적회사라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에 지분을 매각할 예정이었는데, 진행이 잘 안된 모양입니다. 이 페이퍼컴퍼니는 2018년 기준으로 자산이 5억2400만원이고, 그 중 5억원을 부채로 조달한 회사였습니다. 자본금이 100만원이었죠. 액트 지분을 살 자금을 유치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나 짐작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액트의 139억원 규모 유상증자는 M&A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증자로 조달한 자금 중 69억원을 역시 코스닥 상장사인 조광아이엘아이㈜ 지분을 매입할 목적으로 배정했죠. 액트는 조광아이엘아이 지분 100만주(10.12%)를 100억원에 전 최대주주로부터 사들이는데, 양수 목적을 '단순 재무적 투자'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액트의 유상증자와 조광아이엘아이㈜ 투자는 세미콘라이트가 인수하기 전에 이미 예정이 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블랙힐1호 역시 구주주 지분 인수 후에 139억원의 유상 증자를 책임지기로 했고, 액트는 그 돈을 타법인 지분 매입에 쓸 거라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M&A 대상이 조광아이엘아이가 아닌 다른 회사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맞을 겁니다. 세미콘라이트가 액트 지분을 매입하기로 한 10월 14일에 조광아이엘아이는 최대 주주 지분 변동을 수반하는 주식 양수도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공시합니다. 창업자 가족이 회사를 어디론가 넘기기로 한 것이죠.


액트가 139억원의 유상증자를 한 11월 14일은 김우동 등이 조광아이엘아이 지분 매입 잔금을 납입하는 날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더 확실한 단서가 있는데, 지분 양수인이 세미콘라이트로 바뀌기 전이나 후나 액트가 밝힌 타법인 지분 매입 종결일이 같다는 겁니다. 그러니 액트가 세미콘라이트를 최대 주주로 모셔 온 이유는 결국 조광아이엘아이 인수를 위한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세미콘라이트는 액트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환사채를 발행하는데, 이게 바로 퓨전이 인수하는 60억원 짜리 제5회차 전환사채입니다. 올해 40억원을 조기상환 청구해 돌려 받은 그 전환사채입니다.


퓨전은 전환사채 인수대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요? 마찬가지로 60억원 짜리 전환사채를 발행하죠. 이 전환사채는 퓨전홀딩스가 조성한 퓨전컨소시엄1호가 여러 투자자로부터 유치해 매입해 주고요. 그러니까 결국 액트의 조광아이엘아이 지분 매입은 절반이 퓨전컨소시엄 1호에서 나온 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퓨전이야 말할 것도 없고, 세미콘라이트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었고, 그 규모가 530억원에 달했습니다. 지난해엔 241억 매출액에 당기순손실이 230억원에 달했죠. 그 와중에 액트의 구주주 지분을 자기자금으로 지불합니다. 액트 유상증자 대금도 전환사채 60억원 발행한 걸로는 턱 없이 부족하죠.


9월말 112억원이던 현금은 지난해 말 22억원만 남습니다. 결국 액트 유상증자 납입일 직후에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며 강남 논현동의 토지와 건물을 118억원에 매각합니다. 7개월짜리 단기투자를 위해 기둥뿌리를 뽑은 셈이죠. 뿐만 아니라 인수한 액트 주식 중 187만여주를 차입금의 담보로 잡힙니다. 증권사 주식담보대출이 대부분입니다. 차입처 중 앤디포스라는 코스닥 상장사도 있네요. 휴대폰용 양면 테이프를 만들어 파는 기업입니다.



액트가 조광아이엘아이 지분을 매입한 건 단순한 재무적 투자라고 했잖아요. 투자 차익을 노리고 실제 인수자에게 돈을 보태줬다는 것이죠. 실제 인수자는 바로 김우동과 골드퍼시픽이라는 회사입니다.


창업자 가족이 41.33%의 지분을 매각하는데, 김우동이 19.22%, 김우동과 특별관계자인 골드퍼시픽이 12%를 인수해 경영권을 가져가고 액트가 10.11%(100만주)를 갖고 오죠. 김우동은 현재 조광아이엘아이 대표이사입니다.



그런데 이 골드퍼시픽이라는 회사, 핸디메이드 가죽제품을 만드는 곳이라는데, 예사롭지 않습니다. 6월마 현재 총자산 595억원 중 약 470억원이 현금이나 금융자산 또는 타법인 주식입니다. 금융자산도 다른 회사가 발행한 전환사채로 채워져 있죠. 제조업이 아니라 투자업을 영위하는 회사 같습니다.


계열사 중에 스펙트럼콘소시엄은 출자조합이고, 비엔에스투자자문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현 최대 주주는 케이앤티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이고, 12%의 잠재의결권을 가진 아이앤인베스트 역시 투자회사죠. 아이앤인베스트의 최대 주주 역시 에이치인베스트멘트라는 투자회사이고요.


지난해 3월 사모펀드가 주인이 된 후 인수한 대표적인 회사가 조광아이엘아이와 인콘이라는 CCTV 보안업체인데, 바로 넷마블게임즈의 방준혁 의장이 2017년에 에이치앤더슨이라는 곳에 매각한 회사입니다. 이 에이치앤더슨이 바로 아이앤인베스트의 전신이고요.



그러니까 아이앤인베스트는 인콘을 골드퍼시픽에 매각한 장본인입니다. 아이앤인베스트는 인콘을 342억원에 넘기는데, 242억원은 현금으로 받고 100억원은 골드퍼시픽이 발행한 전환사채를 인수합니다. 골드퍼시픽이 아이앤인베스트에서 100억원을 빌려 인콘 거래대금에 보탠 거죠.


세미콘라이트는 올해 5월 15일 액트 매각을 결정하는데요. 이 때는 비록 무산이 됐지만 엔터메이트라는 게임회사 인수를 추진하던 중이었습니다. 액트를 팔아 엔터메이트 인수에 쓰려고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연관이 있겠죠. 엔터메이트 인수가 무산되고 나서 세미콘라이트가 다시 찾아낸 매물이 바로 플리트 엔터테인먼트(화이브라더스코리아)입니다.


액트 지분을 인수한 곳은 메리디안홀딩스라는 곳이었잖아요. 그런데 메리디안홀딩스는 세미콘라이트가 보유한 구주를 인수하지는 않습니다. 액트가 발행하는 유상 신주 100억원을 인수해서 경영권을 확보하죠.


세미콘라이트는 총 보유 주식 중 액트 유상증자에 참여해 취득한 377만3000주를 남기고 나머지 221만여 주를 메리디안홀딩스가 지정한 6인에게 주당 5400원씩 121억원을 받고 팝니다. 이 6인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하는데, 진실은 두고 보면 알겠죠.



또 액트로 하여금 전환사채를 발행하게 해서, 메리디안홀딩스나 메리디안홀딩스가 지정한 자가 인수하고, 이중 메리디안홀딩스가 100억원을 참여해 잠재적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기로 계약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경영권 지분 매매 계약 후 액트가 발행한 전환사채는 100억원 뿐입니다. 이걸 인수한 건 메리디안홀딩스가 아니죠. 김영희라는 개인입니다. 액트의 구주를 인수한 6인 중 하나지요. 느낌상 액트가 추가로 전환사채를 발행해 메리디안홀딩스가 인수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네요. 그럼 잠재적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는 건 명의상 메리디안홀딩스일까요, 김영희 일까요.


액트 지분 매각에는 기막힌 반전이 있습니다. 메리디안홀딩스는 자산 11억원에 부채가 10억원이 넘고 자기자본은 6300만원인 회사죠. 당연히 자체 자금으로 액트를 인수할 여력이 없습니다. 결국 액트 유상증자 대금 100억원 중 5억원만 자기자금으로 하고 95억원을 차입하죠.


놀랍게도 95억원을 빌려준 곳은 골드퍼시픽과 그 관계회사인 인콘, 그리고 앤디포스㈜라는 곳입이다. 액트의 도움을 받아 조광아이엘아이를 인수한 골드퍼시픽이, 액트를 인수할 메리디안홀딩스에 인수자금을 꿔 준 겁니다. 그리고 앤디포스㈜는 코스닥 상장사로 휴대폰용 양면 테이프를 만드는데, 세미콘라이트가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곳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