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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회사가 공시하는 사업보고서에는 회사의 연혁을 적게 되어 있습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사업보고서에서 가장 먼저 펴보는 페이지입니다. 연혁을 훑어보면 그 회사의 과거 스토리가 대략 그려지거든요.


기업사냥꾼의 사냥감으로 전락한 기업의 연혁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회사가 영위하는 사업의 성장이나 제품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고, 최대주주 변경과 유상증자 또는 전환사채와 같은 재무적인 이슈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거의 예외가 없지요.


기업사냥꾼이 자주 노리는 사냥감은 부실 기업입니다. 몇 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거나 상장폐지 우려가 있거나 관리종목이거나 법정관리 후 매각되는 기업을 주로 노립니다. 왜냐구요? 그런 기업들은 당장 필요한 자금이 있게 마련이고, 적은 돈으로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죠.


기업사냥꾼이 경영권을 틀어쥔 다음에는 회사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 사회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그 기업의 목적이 더 이상 아니죠. 기업사냥꾼은 주가를 띄울 재료(요즘 같으면 십중팔구 '바이오사업'이죠)를 발굴해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은 뒤 고가에 보유 주식을 팔고 홀연히 떠납니다. 그 자리는 보통 다른 기업사냥꾼이 채우게 되죠.


이런 일이 두 세번만 반복되면 한 때 촉망받던 우량 기업이라도 금세 망가지고 맙니다. 최대주주가 잿밥에만 관심이 있으니 회사가 제대로 성장할 리 없지요. 애초에 부실기업이었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음… 당연히 아래 언급될 회사들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우연히 얻어 걸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정말 우연입니다.


㈜골드퍼시픽을 기억하시죠? 지난 편의 내용을 잠깐 소환하자면, 세미콘라이트가 발행한 전환사채를 퓨전이 사주고, 세미콘라이트는 그 돈으로 ㈜액트의 유상신주 매입에 쓰는데, 액트는 그걸로 조광아이엘아이 구주를 매입하잖아요. 이해를 위해 그림도 재활용해 봅니다.



액트가 조광아이엘아이 지분을 매입한 건 바로 골드퍼시픽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죠. 골드퍼시픽이 자회사인 인콘과 함께 조광아이엘아이를 인수하는데, 액트가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미콘라이트가 액트를 팔아 치울 때는 골드퍼시픽이 양수인인 메리디안홀딩스를 지원 사격하죠. 메리디안홀딩스가 액트 신주를 인수하는 데 쓴 100억원 중 95억원이 골드퍼시픽-인콘-앤디포스 등 세 회사가 빌려준 돈이었습니다. 기업사냥꾼들끼리도 '우리가 남이가' 정서가 있는 모양이지요.


골드퍼시픽은 'hoze'라는 브랜드의 핸드메이드 가죽제품을 만들어 파는 패션 기업입니다. 2019년부터는 바이오사업도 겸하고 있죠. 그런데 2016년 이전에는 웨이퍼와 칩을 만드는 광통신부품 회사였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업을 하는 회사로 탈바꿈한 겁니다. 2000년에 코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는 그 이전에도 많은 성장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만, 최대 주주 변경이 잦아진 2016년 이후에 집중해서 보겠습니다.


2016년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해 관리종목에 편입됩니다. 이 때부터 최대 주주가 빈번하게 바뀌고 사업내용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광통신부문이 사라지고 모바일 X-Ray와 중고휴대폰 유통업이 주력으로 등장하지만 곧 비중이 미미해 지고, 게임산업을 하는가 싶더니 역시 시들해 집니다.


그리고 이 잦은 사업교체는 최대주주의 변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새로운 최대 주주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사업이 등장하거나,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을 계열사로 만드는 겁니다.



골드퍼시픽의 최대주주는 2016년말 바이오프리벤션으로 바뀝니다. 바이오프리벤션은 밸런서즈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이고, 밸런서즈가 먼저 전환사채를 인수해 일부 잠재 지분을 확보한 후에, 바이오프리벤션이 유상 신주를 제3자 배정으로 인수해 경영권을 획득하죠. 전환사채를 포함해


9.86%의 지분을 확보하는 데 30억원을 씁니다.


이전 최대 주주인 코아리소시스는 장내 매도 등으로 보유 지분을 처분하고 떠납니다. 회사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상황이라 구주를 프리미엄 받고 팔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을 겁니다. 강력한 재무 구조조정과 신규 자금 유입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골드퍼시픽은 2017년 반기보고서를 지연 제출해 상장 폐지 우려가 제기됩니다. 결국 대대적인 재무 클린화 작업이 진행되죠. 그해 5월에 결손보전을 위한 90% 무상감자를 하고, 다만, 자본항목에 있는 계정(자본금, 자본잉여금, 결손금)의 수치에만 변화를 줍니다.


30억원의 유상증자라고 해야 실제 유입된 현금은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인 에버리치파트너스가 납입한13억원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17억원은 ㈜밸런서즈 등이 보유한 채권이 출자전환된 겁니다. 30억원의 전환사채도 마찬가지였죠. 이전에 발행된 다른 전환사채를 돌려 막기 한 것이 대부분이고, 현금 납입액은 7억원에 불과했습니다.


114억5000만원의 전환사채 중 절반인 60억원은 밸런서즈가 인수합니다. 4152원을 전환가격으로 발행된 이 전환사채야 말로 진정한 자금유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상감자와 출자전환, 전환사채 발행 등을 계기로 최대 주주측(바이오프리벤션, 밸런서즈, 에버리치파트너스)의 지분율(전환사채 포함)은 21.32%로 올라갑니다.


최대 주주가 바뀐 이듬해 6월, ㈜팡스카이라는 온라인 게임 개발 회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1.3%를 30억원에 인수합니다. 게임사업을 영위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2018년에 유동성 확보를 위해 팡스카이 지분 전부를 30억원에 되팔죠. 팡스카이와 사업 제휴를 유지하는 조건의 매각이었지만, 별 효과 없었나 봅니다. 골드퍼시픽에서 게임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에 36%에 달했습니다만, 2019년 이후에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한 수준으로 낮아집니다.


그 후에도 골드퍼시픽의 자금조달은 타법인 주식 인수와 궤적을 같이 합니다. 2018년 4월에 상상인저축은행(전 공평저축은행)을 상대로 50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해 8억원은 호주 자회사 설립에 쓰고, 10억원은 ㈜메딕션이라는 의료기기 제조업체의 유상신주를 삽니다.


그런데 메딕션 지분 인수는 좀 뜨악스럽습니다. 사실상 지배주주인 유앤디씨(Yoo Andy C)라는 사람이 지배하는 법인에 골드퍼시픽이 유상증자로 참여하는 방식이었죠. 유앤디씨는 골드퍼시픽의 최대주주인 바이오프리벤션의 최대주주로 공시된 사람입니다. 밸런서즈도 이 사람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골드퍼시픽은 메딕션의 유상신주 1만5625주(8.57%)를 10억원에 취득합니다. 주당 6만4000원 꼴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 직전년 매출액이 5억원에도 미치지 않고, 적자를 지속하고 있었죠. 지난해 매출은 2163만원입니다. '억원' 아니고 '만원'입니다.



최대주주인 유앤디씨가 6만4000주를 보유해 지분율 38.4%에 달했습니다. 개인회사는 아니지만 지배주주였을 겁니다. 매출과 이익의 추세로 보아 결손기업이었을 테죠. 상장사인 골드퍼시픽이 사실상 지배주주의 사업을 구하기 위해 나선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밸런서즈그룹은 골드퍼시픽 지분과 전환사채를 확보하는데 총 137억원을 쓴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중 20억원은 상상인저축은행 등에서 차입했고요. 약 328만주의 보통주와 약 254만주로 전환 가능한 전환사채를 확보하게 되죠.



지난해 3월20일 밸런서즈그룹은 이중 보통주 전부를 케이앤티파트너스가 조성한 케이앤티케이스톤제1호에 200억원을 받고 매각합니다. 주당 6093원의 가격이 적용되죠. 이날 종가가 3285원이었으니 무려 85%의 프리미엄을 받고 판 셈입니다. 또 전환사채도 전액 장외매도해 40억원을 챙깁니다. 137억원(자기자금 117억원)을 투자해 불과 2년 만에 100%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이니 충분히 대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회사의 실적으로 보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거래가격입니다. 밸런서즈그룹으로 인수된 후 골드퍼시픽의 실적은 형편없거든요. 2016년 96억원이던 매출은 50억원대로 급감했고 적자행진 역시 계속되었습니다.


2017년부터 2년간 유상증자와 차입으로 304억원을 투입했지만 회사의 설비확충에 들어간 돈은 26억원 뿐이고, 175억원을 타법인 주식 인수 등 영업과 무관한 투자에 썼습니다. 본업을 정상화시키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봐야겠죠.



케이앤티파트너스는 200억원에 밸런서즈그룹이 보유한 보통주 전부를 인수하고, 유상증자로 15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골드퍼시픽을 인수합니다. 그 후 골드퍼시픽의 타 기업 인수는 더욱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지난해 7월 ㈜다나은 지분 100%를 105억원에 인수한 뒤에 합병하면서 바이오사업을 시작하죠. 주가 띄우기에는 바이오 만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잇따라 CCTV 업체인 ㈜인콘을 인수합니다.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목적이라며 유상증자에 참여해 90억원(지분율 6.07%)을 쏩니다. 또 인콘의 최대주주인 아이앤인베스트(당시 이름은 ㈜에이치앤더슨)이 보유한 구주를 342억원에 매입합니다. 골드퍼시픽은 인콘 지분을 21.46% 보유하게 되는데, 총 투입된 자금이 432억원인 셈이죠. 그런데 이중 100억원은 골드퍼시픽이 발행한 전환사채를 아이앤인베스트가 인수하는 방식이었으니 현금은 332억원이 들어간 겁니다.


조광아이엘아이 인수는 11월에 이루어지죠. 퓨전이 세미콘라이트와 액트를 경유해 지원사격한 그 M&A거래입니다. 세 차례의 M&A가 이루어지는 동안 골드퍼시픽의 자금조달 역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수 차례의 전환사채 발행과 유상증자가 반복되죠. 그 중 가장 큰 건은 아이앤인베스트가 인수한 전환사채 100억원인데, 이미 설명했다시피 현금이 오간 거래는 아니었죠. 인콘 인수 자금 중 일부로 대용납입된 것입니다.


조광아이엘아이를 끝으로 사실상 골드퍼시픽의 자금조달과 M&A는 중단됩니다.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50여 억원이 유일합니다. 지난해 신규 사업으로 매출이 크게 늘었지만 적자는 멈추지 못했고, 주가는 1000원대 초반으로 크게 하락한 상황입니다. 케이티앤파트너스는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하고 엑시트를 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