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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컴포텍은 지난해 6월과 11월 두 차례나 임시 주주총회를 엽니다. 아주 흔치 않은 일이죠. 6월에는 사외 인사인 권혁배로 대표이사가 교체됩니다. 권혁배는 현대트랜시스와 현대엠시트를 거쳐 북경기차다스유한공사 법인장을 지냈습니다. 현대차그룹과의 거래관계로 인연이 된 분이겠죠.


11월에는 최대 주주 변경에 따른 새로운 경영진 구성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가 다시 열립니다. 권혁배는 채 5개월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죠. 최대 주주의 경영권 지분 매각이 처음 공시에 등장한 것이 10월입니다. 최대 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 계약의 체결, 유상증자 결정, 전환사채권 발행 결정이 이루어지고, 주가가 요동을 칩니다. 사자와 팔자의 물밑 접촉은 그 보다 훨씬 빠른 시점부터 시작되었겠죠. 권혁배는 최대 주주가 회사를 팔기까지 다리 역할을 해 줄 인물로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10월10일 이원컴포텍 이사회는 50억원의 전환사채 발행과 82억6000만원의 유상증자 결정을 합니다. 동시에 최대 주주인 ㈜디이시가 보유 지분 일부를 경영권과 함께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최근 M&A거래에서 자주 나타나는 유형이죠. 이때 새로운 실질 주주는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주를 받아가는 쪽은 재무적 투자자(FI)인 게 보통이죠. 전환사채를 사가는 쪽은 새 주인 편일 수도 있고, 재무적 투자자일 수도 있습니다.


첫 계약으로는 이원컴포텍의 새 주인이 누굴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거래 당사자들이 전부 투자조합의 이름을 가진 회사들이었거든요. 나중에 82억6000만원의 신주를 받아 가기로 한 쪽이 아폴론1호조합에서 Prophase Sciences. LLC(이하 '프로페이스 사이언스시스')라는 미국 바이오 회사로 공시 변경이 이루어지면서 실체가 드러납니다.



거래 구조는 이렇습니다. 디이시가 보유한 구주 약 770만주는 사보이투자1호 등 4개 투자조합이 주당 3765원에 인수키로 합니다. 이원컴포텍의 주가는 6월에 권혁배 대표이사가 취임하기 전까지 2000원을 밑돌았습니다. 이후 슬금슬금 오르더니 매매 계약일 전일인 10월8일 3670원을 찍습니다. 6월 대표이사 교체가 M&A의 전조라고 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원컴포텍에는 전환사채와 유상신주 발행으로 총 132억6000만원이 투입됩니다. 프로페이스 사이언시스는 구주보다 크게 낮은 주당 2965원에 새로운 최대 주주인 사보이투자1호조합(이하 사보이투자1호, 다른 조합도 같은 방식의 약칭을 사용)과 거의 같은 16.42%의 지분을 갖게 됩니다.


전환사채는 미네르바2호가 인수하는데, 이 전환사채는 처음에 풋옵션만 있고 콜옵션이 없이 발행될 예정이었다가, 발행 직전에 콜옵션이 부여됩니다. 회사가 사거나, 최대주주 또는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 전환사채의 절반을 사올 수 있게 합니다. 회사가 사채를 샀다가 최대주주에게 재발행을 하든, 최대주주가 직접 되사 오든 최소한의 자본으로 지분율을 최대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장치를 추가로 마련한 셈이죠.


미네르바2호가 인수한 전환사채는 최초 전환가격 3490원에 발행이 됩니다. 하지만 의미가 없죠. 주가가 하락하게 되면 전환가격도 하향 조정이 되니까요. 액면가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이 전환사채는 특별한 전환가격 조정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전환을 청구하기 전에 유상 증자가 전환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전환가격을 유상 신주의 발행가격과 동일하게 조정한다는 것입니다.


프로페이스 사이언시스가 인수한 신주와 미네르바2호가 인수한 전환사채는 납입일이 11월18일로 같습니다. 같은 날 발행이 되었으니, 신주 발행가격이 전환가격 조정 조건에 해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추가로 유상증자가 이루어지고 발행가격이 2950원 아래에서 이루어진다면, 전환가격도 동시에 조정되겠죠.


구주를 인수하기 위한 4개의 투자조합, 전환사채를 인수할 1개의 투자조합, 모두 5개의 투자조합이 이원컴포텍 인수를 위해 동원됩니다. 그런데 이 5개의 투자조합은 각각이 아닙니다. 별도로 존재했던 5개의 투자집단이 이원컴포텍 인수를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투자집단이 5개의 투자조합을 조성한 것이죠. 하나의 팀입니다.



이 팀이 이원컴포텍 인수를 위해 사용한 작업장은 마포구 망원동의 어느 주택가입니다. 오래된 빌라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큰 길에서 벗어난 뒷골목에 있는 어느 한 건물에서 이 모든 설계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5개의 투자조합이 모두 한 주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성된 투자조합은 5개가 넘을 수도 있습니다. 10월10일 매매계약이 이루어질 당시 사보이투자1호의 최대 출자자는 아폴론1호투자조합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약 80억원의 투자재원 중 39억원을 아폴론1호가 대기로 했죠. 그런데 막판에 사보이투자 1호가 부담할 인수자금이 111억3000만원으로 늘면서 최대 출자자가 40억원을 집행하기로 한 제이스테판㈜로 바뀝니다.


제이스테판㈜는 2010년 세우테크라는 이름으로 코스닥 상장이 된 곳이죠. 상점에서 고객에게 영수증을 출력해 주는 POS용 프린터 등의 미니 프린터를 판매하던 회사입니다. 우수 벤처기업으로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고, 강소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던 유망한 업체였죠.


하지만 여기도 경영권이 여러 번 바뀌면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죠. 매출은 급격한 부침을 겪고 있고, 영업적자가 지속되고 있고, 결손이 쌓이고 있습니다. 올해 10분의 1의 감자(자본감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감자를 한다고 회사 재무상황이 달라지는 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자본의 구성 중 자본금이 10분의 1로 줄고, 10분의 9가 자본잉여금(감자차익 등의 이름으로)으로 바뀝니다. 이로 인한 대표적인 효과(?)는 자본금 잠식의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결손이 생기면, 이익잉여금-자본잉여금-자본금의 순으로 잠식이 되니까, 자본금을 자본잉여금으로 바꾸어 놓으면, 자본금 잠식까지 시간을 좀 벌 수 있죠. 경제적 효과는 없습니다.


제이스테판은 올해 사명을 다시 에이루트㈜로 변경했습니다. 에이루트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더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지배구조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 곳이라 한번 들어가면 삼천포로 깊게 빠질 것 같습니다. 카지노 사업을 하다 상장폐지된 마제스타㈜에 세미콘라이트와 손잡고 투자했다가 3사가 동반 상장폐지될 뻔 했고, 배임과 횡령 혐의로 물러난 이준민 전 대표가 마제스타 대표였습니다.


에이루트의 최대 주주는 2015년말에 투자조합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2016년에 다시 다른 투자조합으로 변경되었다가, 상폐 위기에 처하면서 지난해 6월 지금의 최대 주주인 사모펀드 '포르투나제1호'로 교체됩니다. 포로트나제1호를 운영하는 사모펀드 회사는 케이앤티파트너스입니다. 물론 전주(錢主)는 따로 있고요. 케이앤티파트너스는 골드퍼시픽 M&A 거래를 설명할 때 인수 주체로 참여한 바로 그 사모펀드 회사입니다.


최근 투자조합이 대주주가 되는 회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무언지 아십니까? 바로 사업목적 추가 입니다. 신사업을 하겠다면서 너나없이 들고 나오는 것이 바이오,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전자상거래 등이죠. 그리고 반드시 추가되는 것 중에는 '금융투자'와 관련된 것이 있죠. 타 회사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를 한다던가, 경영자문 서비스를 한다던가, M&A 중개를 한다던가, 신기술금융사업을 한다던가, 그 모든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대체로 주가 띄울 재료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에이루트의 매출은 여전히 미니프린터에서 대부분 발생(올해 상반기 현재 78%)하죠. 나머지는 올해 인수한 지오닉스㈜라는 무정전전원장치(UPS) 제조 회사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에이루트의 정관에 있는 사업목적은 무려 80개가 넘습니다. 지난해 이후 세 차례 주주총회를 거치면서 넣을 수 있는 사업은 총 망라해 넣은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업들이 몽땅 다 들어 있죠.



우리는 이제 알 수 있죠. 에이루트가 이원컴포텍 인수를 위해 조성된 사보이투자1호에 투자를 결정한 건, 회사 경영과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회사 보다는 최대 주주인 포르투나제1호의 이해와 관련이 깊을 텐데, 아쉽게도 포르투나제1호의 전주(錢主)는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에이루트의 현 대표이사는 서문동군이라는 분입니다. 지난해 포르투나제1호로 최대주주가 바뀌면서 대표가 되었죠. 이분은 사보이투자1호가 이원컴포텍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비상근 등기임원으로 경영진에 입성합니다. 에이루트가 이원컴포텍에 투자한 것이 단순 투자 목적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