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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이 이달 초 1084억원 상당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무려 20년 만에 단행했습니다. 유상증자 결정 당시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죠. 1년에 부담하는 이자가 1000억원이 넘어갈 정도로 차입금이 과도하니, 유상증자로 차입금을 상환하면 이자부담이 줄어 결국 주가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당장 유동성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굳이 왜 이 시점에 유상증자를 하느냐는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한진은 대한항공과 함께 한진칼이 대주주로 있는 한진그룹의 중요한 주축이 되는 회사입니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사태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고, 한진칼은 기존의 오너와 강성부씨가 이끄는 KCGI펀드와 경영권 분쟁 중이죠. 그룹에서 유동성이 가장 필요한 회사는 대한항공이고, 한진그룹은 팔 수 있는 자산을 다 팔아서라도 대한항공을 지원해야 할 판입니다. 그런 와중에 한진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으니 시기적으로 눈길을 끌 수 밖에 없죠. 대한항공의 급한 불을 꺼야 할 한진칼이 한진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해야 하니까요.


한진이 유상증자를 결정한 이유는 시설자금이 필요해서랍니다. 유상증자 대금을 시설투자에 쓰겠다고 신고했지요. 구체적으로는 택배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대전에 3년간 2670억원을 투입해 14만 8230㎡ 규모의 메가 허브 터미널을 지을 예정입니다. 대부분 투자자금이 내년 이후 투입되어야 합니다. 또 전국 거점지역의 택배 터미널을 신·증축하고 자동화설비를 도입하려고 한다는 군요. 택배사업에 약 4200억원이 소요되는 투자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그룹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이해 못할 게 없죠. CJ대한통운에 이어 택배업계 2위이지만 시장점유율 등 경쟁력에서는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고, 쿠팡의 등장 이후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택배 수요가 커졌는데 코로나19까지 터지는 바람에 택배 수요는 팽창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심하고 택배 경쟁력을 키울 모양인데,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과 대한항공의 유동성 위기를 감안하면 독자 행보로 보여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택배업이 한진에서 얼마나 중요하길래 지금 이 와중에 이렇게까지 하는지 한진의 재무제표를 톺아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진의 재무제표를 본다고 그룹 오너들이 유상증자를 단행한 진심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투자에 쓰겠다는 것 외에 재무구조 개선도 하겠다고 하니, 정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유상증자가 시급했던 것인지 정도는 알 수 있겠죠.


한진은 물류기업이죠. 수출입 물동량에 민감한 육상운송ㆍ항만하역ㆍ창고사업과 택배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중추는 역시 육상운송, 항만하역, 택배업이라고 볼 수 있고요. 하역과 항만, 그리고 부산, 인천 등 전국 주요 부두의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육상운송은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택배업은 한진의 다른 사업과는 독립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진의 사업은 크게 보면 택배업과 육상운송ㆍ항만하역 등의 기타업 둘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육상운송서비스는 대한항공의 화물기가 실어 나르는 항공화물 운송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항공과도 연계가 되는 사업이죠.


그룹의 본업을 생각하면 육상운송ㆍ항만하역의 중요성이 더 클 것 같은데, 매출이나 이익의 비중으로 꼭 그렇지 만도 않습니다. 매출은 택배가 가장 크고 이익창출은 하역이 담당하고 있죠. 주목할 만한 것은 택배부문의 이익이 지난해 이후 급증하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 2년간 택배업의 매출만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다른 부문은 정체이거나 다소 감소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영업이익으로는 하역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택배업의 영업이익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택배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하역사업의 2018년을 넘어섰죠. 위 차트에서 차량종합사업은 롯데렌터카에 넘긴 렌터카 사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난 4월 600억원에 팔아 넘겼죠. 역시 투자자금 확보 차원으로 읽혀집니다.


올해는 어떨까요. 예상대로 택배업의 성장은 더욱 가팔라졌습니다. 매출액은 3분기까지 7000억원을 넘어섰고, 영업이익은 343억원에 이릅니다. 하역사업이 육운 등 기타 부문과 연계되었다고 보면, 택배업의 수익창출력이 한진에게 얼마나 중요한 보탬이 되는지 알 수 있죠.


특히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8년 30%대에서 올 들어서는 거의 50%에 육박할 정도입니다. 이익창출력에서는 하역부문에 밀릴지 몰라도 현금흐름 측면에서는 오히려 택배업이 우위에 있을 것 같군요.



한진의 영업실적은 하역과 택배를 중심으로 상당히 호전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택배 부문의 이익 증가가 큰 힘이 되었죠. 그런데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지난해 907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성과를 올렸지만 적자로 전환했고요. 올해 3분기까지 824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지난해 실적을 크게 상회했지만 세전으로 86억원을 남겼을 뿐입니다.


2017년 이전에는 영업이익보다 순이익이 많지만, 지속성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2015년에는 금융자산에서, 2016년과 2017년에는 관계기업투자지분에서 이익을 실현했고, 2018년에는 유형자산처분으로 이익을 만들었습니다. 잇몸이 이를 대신한 셈입니다.



오히려 지난해와 올해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익이 남지 않는 이유는 금융비용 부담 때문입니다. 지난해 연간 1102억원, 올해 역시 3분기까지 810억원의 금융비용이 발생했죠. 실적 개선을 위해서는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한 측면이 확실히 드러나는 군요. 대부분의 금융비용은 이자와 리스료입니다. 특히 리스료 부담이 상당하네요.



금융리스가 한진의 손익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3분기까지 리스이자비용으로 손익계산서에 기록된 건 433억원입니다만, 리스로 발생한 비용의 총액은 무려 1293억원에 달합니다. 영업이익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입니다. 지난해 3분기까지는 920억원이었으니 올 들어서 300억원 이상 늘어난 겁니다. 지급임차료 등 기타영업비용에 단기리스 294억원을 포함해 총 312억원의 비용이 반영되었고 사용권자산 상각비 548억원이 추가됩니다.


그런데 금융리스는 단기간에 해소가 어렵습니다. 금융리스채권자가 서울복합물류프로젝트금융투자㈜, 뉴포트크레인(유) 등이네요. 아무래도 항만의 하역작업에 쓰는 크레인 등 물류 설비가 리스자산인 것 같습니다. 한진부산컨테이너터널㈜ 등 자회사의 설비도 리스로 쓰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설비이니 자산을 팔아서 갚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게다가 서울복합물류프로젝트금융투자㈜는 한진의 관계회사입니다. 3분기말 현재 9000억원의 리스부채 중에 2700억원 가량이 서울복합물류프로젝트금융투자㈜에게 지고 있죠.


이 리스부채는 한진이 앞으로 리스료로 갚아야 하는데, 상환해야 하는 총리스료가 명목으로 1조8369억원에 육박합니다. 향후 1년간 930억원을 갚아야 하는데, 매년 같은 금액이라고 가정하면 약 20년을 갚아야 하는 군요.


금융리스부담이 대부분 항만하역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다면, 현재 하역부문에서 가장 큰 영업이익이 발생하고 있다고 해도 연간 갚아야 하는 리스료를 감안하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겠습니다. 결국 확고한 흑자 구도로 가기 위해서는 금융리스 외의 차입금 이자비용을 줄이고, 택배사업의 이익창출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결론을 충분히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진의 현금흐름 창출능력은 최근 3년간 꽤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올해 3분기까지 영업현금흐름이 1734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규모를 넘어섰죠. 잉여현금흐름(영업현금흐름-자본적지출+유무형자산 매각)은 2000억원이 넘습니다. 렌터카부문을 롯데에 넘긴 것을 포함해 자산 매각으로 현금을 확보한 것이죠.


그리고 그 대부분을 차입금 상환에 썼습니다. 지난해 만기도래한 장기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대규모 사채(약 4300억원)를 발행하고도 766억원을 갚았는데, 올해 역시 만기도래 차입금과 금융리스부채 등으로 1600억원 가까이 갚았습니다. 영업과 자산매각으로 확보한 현금이 거의 채무 상환에 들어가고 늘어난 현금은 별로 없죠.


당분간 비슷한 상황이 계속 연출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9월말 현재 단기차입금, 만기도래한 장기차입금, 유동성 금융리스부채까지 합하면 거의 3000억원에 달합니다.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이 거의 차입금 상환에 쓰일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는 만기연장이나 차환이 불가피해 보이고요.


결국 택배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자금은 내부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추가로 자산을 매각하거나 유상증자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난 6월에 범어동 부지를 대우건설에 3067억원에 매각했는데, 이 돈이 내년 1월에 들어옵니다. 여기에 이번에 단행한 1084억원의 유상증자 대금까지 전부 향후 진행될 택배사업의 시설투자에 들어가야 할 모양입니다.


한진의 재무개선은 분명히 필요해 보입니다. 택배사업의 경쟁력 강화가 향후 수익창출과 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룹의 가장 급한 불이라고는 볼 수 없지요. 왠지 한진이 독자노선을 걸으려고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