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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만들어낸 실적의 희비는 상장기업 재무제표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코스피 상장기업 중 금융업체를 제외한 12월 결산법인, 그 중 ETF 등과 전분기 비교대상이 없는 기업 등 자료 이용이 어려운 곳을 제외한 536개 업체의 실적(개별 기준)을 분류해 보았습니다. 공시가 제대로 이루어졌지만, 누락된 것도 꽤 많으니 전수조사의 결과로 보지는 마십시요. 그저 개략적인 수치로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실적을 연결이 아닌 개별로 본 이유는 종속기업의 실적이 섞이지 않은 각 상장기업의 본연의 영업실적을 파악하는 데 더 낫기 때문이죠. 개별로 보았으니 당연히 상장기업의 총체적인 실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본업의 성과는 더 잘 나타내겠죠.


3분기까지 매출액이 증가한 기업이 214개, 감소한 기업이 322개네요. 예상보다 증가한 기업이 많지요? 매출액이 전기보다 50% 이상 증가한 기업도 22개사나 됩니다. 물론 22개사 매출이 순수하게 증가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가령 미원홀딩스의 경우 전년 동기 17억원에서 107억원으로 529% 증가했지만, 종속기업인 ㈜동남합성의 칠곡지점을 포괄적 영업양수하면서 칠곡지점의 매출이 장부에 들어온 영향이 큽니다. 지난해 종속기업이 된 동남합성의 배당금 46억원도 매출에 가산이 되었지요. 역시 매출이 500% 이상 증가한 지주회사 KPX홀딩스도 지난해까지 없었던 상품매출 287억원이 추가되었습니다.



영업이익이 증가한 곳은 262개 기업, 감소한 곳은 274개 기업입니다. 역시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이중 50% 이상 증가한 곳이 무려 119개사나 되고, 50% 이상 감소한 곳도 134개사나 됩니다. 희비가 갈려도 아주 극명하게 갈렸죠. 다만, 영업이익이 흑자 전환했거나 적자 전환한 곳들이 50% 이상 증감 기업에 포함되면서 숫자에 착시를 야기했을 가능성은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매출이 급증한 기업 중 셀트리온(94%)과 삼성바이오로직스(103%)가 눈에 확 띕니다. 국내 바이오시밀러의 양대 산맥이자 경쟁자지요. 양사가 경쟁자라고 하면 셀트리온에서 서운해 할 수 있습니다. 셀트리온은 램시마 트룩시마 등 자체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을 만들어 팔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타사의 바이오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CMO사업으로 매출을 일으키니까요.


그 밖에 코로나19의 수혜주로 일컬어지는 엔터테인먼트기업 엔씨소프트의 매출도 3분기까지 1조7237억원을 기록, 67%나 증가했습니다. 삼성중공업에서 2022년까지 1945억원어치 LNG 보냉재를 공급하기로 한 한국카본의 매출도 93% 증가했죠. 1752억원이던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이 3373억원으로 늘었으니 한국카본의 실적 호전을 순전히 삼성중공업으로부터의 수주에서 나온 것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매출이 급감한 대표적인 업종은 항공업, 호텔업, 여행업 등입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집객이 어려워진 곳들이죠. 호텔신라(-38%), 아시아나항공(-41%), 대한항공(-40%), 티웨이항공(-64%), 에어부산(-68%), 제주항공(-70%), 하나투어(-81%) 등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내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는 강원랜드의 매출(3464억원)도 70%나 줄었고, 영화관을 운영하는 씨제이씨지브이의 매출(2626억원)도 67% 줄었습니다.


백판지 제조기업 신풍제지의 매출(190억원)은 82% 급감했는데요. 평택공장 부지가 평택고덕국제화지구에 수용되면서 공장이전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기계설비 일체를 한창제지에 양도했죠. 사실상 폐업의 길로 접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풍제지의 주가는 엄청나게 뛰었습니다. 코로나19사태로 2~3월 급락했던 주가가 6월에는 1300원 선을 회복하더니 3분기부터 수직상승 11월말 현재 3000원을 넘었습니다. 정말 알다 가도 모를 일입니다.


매출액이 증가한 214개 기업 중 영업이익도 동반 개선(흑자전환 포함)된 곳은 164개였습니다. 그 164개 기업 중 영업활동 현금흐름까지 개선된 곳은 115개입니다. 약 50개 기업은 이익과 현금흐름의 방향이 엇갈렸네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좋아진 데는 운전자금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전체 기업 중 운전자금을 회수(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 감소 또는 매입채무 증가 등)해 현금을 확보한 곳이 237개사인데, 운전자금 회수가 영업활동 현금흐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47%나 됩니다. 100억원의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했다면, 평균적으로 47억원은 운전자금을 회수한 결과라는 겁니다. 실적으로 만든 현금흐름은 53억원이라는 얘기죠.


특히 17개 기업은 영업활동 현금흐름 전부가 운전자금 회수에서 나왔습니다. 매출채권을 회수하거나 매입채무를 지연결제하지 않았다면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바뀌었을 거란 의미입니다. OCI, SH에너지화학, S-oil, STX, 동남합성, 서원, 선창산업, 세진중공업, 일성신약, 전방, 천일고속, 한세엠케이 등입니다.


또 11개 기업은 운전자금 회수에도 불구하고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플러스(+)로 돌려 놓지 못했죠. 마니커, 아시아나항공, 카프로, 코오롱머티리얼, 토니모리 한창 등이 그렇습니다.


장사가 안돼 현금이 마르면 운전자금이라도 회수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죠. 운전자금 회수가 원활히 된다면 유동성 위기에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말 위험한 건 영업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데, 운전자금에 현금흐름이 묶이는 경우입니다. 장사도 안되는데 그나마 팔리는 건 외상이고, 구매자금은 꼬박 꼬박 현찰로 결제를 해야 한다면 죽을 맛이겠죠.


가령 씨제이씨지브이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1259억원인데, 운전자금으로 빠져나간 현금이 557억원입니다. 운전자금 부담이 늘지 않았으면 현금흐름 적자를 700억원대에서 막을 수 있었겠죠. 무려 4867억원이 올해 추가로 운전자금에 묶였고 그로 인해 매출이 94%, 영업이익이 118%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들인 현금흐름은 1508억원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동기의 절반에 미치지 못합니다. 셀트리온 해외 매출의 전부가 특수관계인 셀트리온헬스케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셀트리온헬스케어에 판매한 바이오시밀러가 대부분 외상판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그 약들을 해외에 팔아야 셀트리온의 외상대금을 결제할 수 있겠죠.



셀트리온의 매출은 일종의 밀어내기라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소화할 수 없는 물량을 양사간 계약에 의해 사고 팔죠.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다 팔지 못하니 재고가 쌓이는 건 당연하고, 당연히 셀트리온에는 현금이 들어오지 않고 매출채권만 늘게 됩니다. 이걸 진정한 매출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운전자금에 현금흐름이 묶인 곳은 조사대상의 절반이 훌쩍 넘는 290개 기업인데, 이 중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곳은 100곳입니다. 이중 62곳은 운전자금 부담 때문에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매출과 이익을 늘이기 위해 외상 판매를 마다하지 않았거나 재고자산을 늘렸을 가능성이 높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