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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룩스 기업집단은 지난해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배상윤 회장이 이끄는 클로이투자조합이 삼본전자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장원테크, 필룩스, 이엑스티가 동시 다발로 계열에 편입되었죠. 하지만 기업집단 성립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도,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도 아닙니다.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필룩스 계열의 최상위 지배회사인 삼본전자는 이어폰, 헤드폰, 블루투스 등을 생산하는 음향전문업체입니다만, 투자자들을 이제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이 회사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삼본전자의 주인에게 음향기기 사업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거든요.
2018년 이후 삼본전자의 자산은 종속기업 및 관계기업의 지분이 차지합니다. 특히 지난해 배상윤 회장이 인수한 후에는 자산의 대부분을 계열사 주식으로 채웠죠. 기업규모가 최근 3년새 갑자기 커졌지만, 돈을 잘 벌어서 성장한 것이 아니고, 차입금과 증자 등 외부 투입을 통해 늘린 겁니다.
이런 회사에 대해 매출과 영업이익 등의 실적으로 투자의 기준을 삼을 수는 없겠죠. 매출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영업이익은 2018년 8백만원을 기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하고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올해 9월까지 매출은 12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1%로 떨어졌고, 영업적자는 54억원으로 3배 늘었습니다. 그래도 자산은 커졌죠. 자본투입이 추가로 이루어져서 그렇습니다.
삼본전자의 본질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입니다. 그해 2월 창업자인 장준택씨 일가와 그들이 설립한 최대주주 삼본정밀전자홀딩스투자목적회사가 게임개발업체인 ㈜블루사이드와 경영권지분 매매 계약을 체결하죠. 김세정씨가 최대주주이자 대표로 있던 블루사이드는 완전 자본잠식 회사였습니다. 자산이 173억원인데 부채가 702억원이었죠. 다른 회사를 인수하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닌 회사였습니다. 이런 회사가 삼본전자의 지분 55.47%를 843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자산총액이 172억원이니 그 만한 보유자금이 있을 리 없는 블루사이드는 주식연계증권(전환사채 등)을 발행해 693억원을 조성하고, 미래에셋증권에서 330억원의 주식을 담보로 150억원을 차입해 삼본전자 인수자금을 대려고 했습니다. 담보는 분명 삼본전자 주식이었겠죠.
놀랍지 않습니까. 자본을 완전히 까먹은 회사가 800억원이 넘는 거금을 증권발행과 금융기관 차입으로 조달할 수 있다니. 보통의 경우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블루사이드를 거점으로 삼본전자를 인수하려는 숨은 세력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거래는 무산됩니다 당초 3월30일이던 잔금 지급일을 6월 5일로, 다시 8월31일로 두 차례 연기했지만, 블루사이드는 대금 지급에 실패합니다. 계약금 100억원만 날렸죠.
1차 매각이 실패한 후에도 삼본전자의 사세는 기울어가고 있었는데, 2018년 5월 주가가 급등합니다. 코스닥시장본부에서 조회공시를 요구하자 회사는 주가에 영향을 줄 만한 중요한 공시사항이 없다고 답변합니다.
없긴요.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은 6월말 최대주주가 다시 지분 매각에 나섰음이 밝혀집니다. 이번엔 김포시에 있는 효창산업㈜과 ㈜메이린파트너스라는 투자회사 등 15인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보유집ㄴ 전액인 46.9%를 주당 1만4250원씩 총 635억원을 받고 팔려고 했습니다. 효창산업이 16.1%의 지분을 약 218억원에, ㈜메이린파트너스라는 투자회사에서 5.35%를 72억원에 사겠다고 했죠.
효창산업은 고진영씨가 100% 지분을 갖고 있었는데, 이 회사도 삼본전자를 인수할 깜이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고진영씨가 100% 지분을 갖고 있었는데, 자본금 5000만원에 총 자산은 1억원 정도였습니다. 그냥 개인 회사라고 봐야죠. 메이린 파트너스는 몰디브와 수산물 무역을 한다는 그린월드㈜가 11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한 곳이었습니다. 72억원의 인수자금을 마련하려면 증자를 하든, 외부차입을 하든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결론적으로 두 회사 모두 자체적으로 인수할 능력은 없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다시 한달쯤 지난 8월초 대표 인수자였던 효창산업과 메이린파트너스가 인수단에서 빠지고 새로운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케이에이치블루홀딩스 컨소시엄, 블루스카이1호 조합, 트리니티에쿼티 유한회사를 대표 3인으로 하는 컨소시엄이 새로 꾸려지죠. 그 외에도 법인과 개인을 포함해 14인의 인수자들이 추가로 있었는데, 이들은 효창산업 컨소시엄부터 함께 하던 사람들입니다. 선수 둘이 교체되었지만 거래의 연속성은 지켜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 인수자인 ㈜케이에이치블루홀딩스는 송파구에 본사가 있는 영상 및 오디오 업체인데, 김영익씨가 23.85%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는데, 2017년말 현재 자본금이 5억원, 순자본은 (-)6억1600만원인 완전 자본잠식업체였습니다. 삼본전자로 나서는 곳마다 하나같이 자본잠식이네요.
인수 컨소시엄의 얼굴마담 격인 케이에이치블루홀딩스 역시 자체 보유자금이 없었겠죠? 144억원의 지분 인수대금 전액을 외부 차입으로 마련합니다. 인수목적물인 삼본전자 주식을 담보로 한국투자증권에서 60억원, ㈜에스모에서 40억원, 전환사채 발행으로 28억200만원, 대표이사인 김영익씨 가수금으로 15억4400만원을 채우죠.
아시겠지만, ㈜에스모는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연루된 끝에 지난달 거래소에서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졌죠. 기업사냥꾼에게 무자본 M&A가 된 후에 대주주와 결탁한 대부업자가 시세조정을 하다 걸려 구속되었고, 에스모 무자본 M&A의 주역들은 잠적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주인이 바뀐 삼본전자는 곧바로 9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2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전환사채 발행에 나섭니다. 이 중 300억원이 타법인 주식 취득 목적이었습니다. 1회차 전환사채는 대승1호투자조합이라는 곳에서, 2회차 전환사채는 블루마운틴1호조합에서 각각 인수합니다.
이게 좀 지나치게 많은 규모인 것이, 발행당시 전환가로 해도 최대 주주인 케이에이치블루홀딩스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물량이었습니다. 특히 2회차 200억원은 전환가액이 2000원대(무상 증자로 주식 수가 증가한 상황이었음)여서 전량 전환이 되면 최대 주주가 바뀔 수 있었죠.
그런데 블루마운틴1호조합은 인수한 전환사채 대부분을 실제 주인에게 바로 넘겨줍니다. 이 전환사채의 실제 인수자에는 눈에 익은 이름이 많습니다. 특히 원영식 회장이 이끄는 W홀딩컴퍼니(10억원), 초록뱀미디어(15억원), 아이오케이컴퍼니(5억원)과 원 회장의 부인인 강수진씨(10억원)도 있죠. 진단키트 업체인 앤디포스도 6억원을 매입했군요.
그 밖에도 대체로 기업 인수합병에 능한 사람이나 회사가 대거 참여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얘기는 삼본전자의 숨은 인수주체 역시 M&A업계에 꽤 뿌리가 깊은 사람이라는 것이겠죠. 전환사채 투자자들이 삼본전자 새 주인의 우호세력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삼본전자는 전환사채에 더해 151억3800만원의 유상증자도 결정합니다. 이것 역시 타법인 인수가 목적이었습니다. 지난해 1월15일이 납입일이었는데, 사모조합인 나비스피델리스2호조합이 단독 인수를 했죠. 이 증자로 나비스피델리스2호는 12.73%의 지분을 갖게 되고, 지분율이 희석돼 11.06%로 줄게 되는 케이에이치블루홀딩스를 앞서게 되니, 최대 주주가 다시 바뀌게 되었죠.
삼본전자가 전환사채를 발행과 유상증자 자금으로 인수한 첫 회사가 아시다시피 장원테크였습니다. 삼본전자 외 5인이 지난해 1월 481억원에 61.2%의 장원테크 지분을 인수했는데, 그 중 삼본전자는 23.16%를 182억원에 확보하게 됩니다.
그런데 삼본전자의 최대 주주 변경은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 주인은 바뀌지 않거든요. 나비스피델리스2호조합의 최대 출자자는 프레스코2호조합이라는 곳인데, 케이에이치블루홀딩스를 움직이는 주역과 프레스크2호조합의 전주는 동일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유상증자 결정 시점부터 파다했고,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나비스피델리스2호조합은 지금의 클로이투자조합입니다. 삼본전자의 최대 주주이지요. 클로이투자조합의 최대 출자자는 프레스코2호조합이었다가, 추가 출자가 이루어지면서 건하홀딩스로 바뀌었지만, 두 곳 모두의 배후에는 배상윤 회장이 있습니다.
케이에이치블루홀딩스는 아마 배 회장이 삼본전자 인수를 위해 도구로 활용한 것으로 보이고, 다른 재무적투자자(FI)들이 있었나 봅니다. 나비스피델리스2호조합을 상대로 유상증자를 단행한 후에 장내·외 매도로 지분율이 크게 낮아집니다.
이때 등장하는 곳이 제이더블유파트너스와 파일엔지니어링입니다. 제이더블유파트너스는 삼본전자가 인수한 장원테크가 100% 출자해 설립한 곳이고, 파일엔지니어링은 장원테크가 삼본전자에 인수된 직후 인수한 이엑스티㈜가 100% 출자해 설립한 곳이죠. 이 두 회사는 케이에이치블루홀딩스가 삼본전자를 인수할 때 참여한 조력자들의 엑시트를 돕습니다.
제이더블유파트너스는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삼본전자의 전환사채와 보통주 총 102억원 가량을 장외매수합니다. 잠재지분율 6.92%에 달합니다. 파일엔지니어링은 지난해 4월에 약 91억원의 전환사채를 매입하는데, 당시 기준으로 잠재 지분율 5.15%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전환사채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순환출자인 셈이죠. 돈이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옵니다.
두 회사가 매입한 전환사채는 대승1호투자조합과 블루마운틴1호조합이 인수했던 1회차와 2회차 전환사채였는데요. 매수한 보통주와 전환사채를 장내 매도되거나 장외 매매로 다른 주인에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두 회사의 역할이 끝난 건 아니죠. 제이더블유파트너스는 그 후에도 보통주와 제3차 전환사채를 인수해 잠재 지분율을 5.84%로 끌어올렸고, 파일엔지니어링도 블루마운틴2호조합 등에 1회차와 2회차 전환사채를 대거 넘겼지만, 지난해 12월 삼본전자가 만기전 취득한 2회차 전환사채를 재매각할 때 양수자로 나서죠.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친분(?)이 등장을 하는데, 바로 ㈜광림이죠. 장원테크가 광림의 전환사채 2회차와 4회차를 합해 100억원 규모로 인수해 보유하고 있다는 건 지난 편에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광림의 계열사 쌍방울이 등장합니다.
파일엔지니어링은 최초 투자자들을 돕기 위해 양수한 전환사채 1회차 15억원어치를 지난해 9월 장외매도하는데, 그 상대가 바로 쌍방울입니다. 쌍방울은 삼본전자가 만기전 취득 후 재매각한 2회차 전환사채도 파일엔지니어링과 함께 매수(10억원)하게 됩니다. 광림과 삼본전자는 상부상조하는 사이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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