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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월13일) 필룩스 주가가 상한가를 쳤습니다. 제넨셀이라는 바이오기업이 인도에서 진행 중인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2상을 완료했는데, 95%의 회복를 확인했다는 게 재료로 작용을 했다는 군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두 회사는 전략적 제휴관계에 있고, 제넨셀의 임상 비용을 필룩스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날 제넨셀 덕분에 주가가 오른 종목이 더 있습니다. 한국파마와 골드퍼시픽이죠. 한국파마는 제넨셀의 코로나19 임상용 의약품을 생산해 공급하는데, 개발에 최종 성공하면 제조를 맡기로 했다고 하죠. 제넨셀은 경희대 강세찬교수 연구팀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컨소시엄을 구성했는데, 한국파마와 함께 골드퍼시픽의 자회사 에이피알지도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강세찬 교수는 지난해까지 필룩스 사외이사를 지냈습니다.


우리나라 진짜 엄청난 바이오강국인가 봐요? 대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임박한 곳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국내에서 임상 중인 치료제만 셀트리온, 대웅제약, 종근당, 녹십자, 등을 포함해 15개에 이릅니다. 제넨셀처럼 외국에서 임상을 진행 중인 벤처기업까지 있네요.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기 어렵지 않은 모양이예요. 그런데 모두 다 성공하면, 모두 다 대박 나는 건가요?


사실 제넨셀의 임상2상 완료 소식은 뉴스가 아닙니다. 지난해 11월에도 필룩스 등의 주가를 상한가로 밀어 올렸죠.12월말에도 같은 보도가 여러 언론을 탄 적이 있고요. 그러니까 이번이 최소한 3탕이 되는 겁니다. 제넨셀의 코로나19 개발 가능성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같은 뉴스로 잊을 만 하면 상한가를 치는 건 좀 씁쓸하네요.


국내 기업이, 특히 벤처기업이 신약 개발에 성공할 것 같다는 보도를 보면, '와, 대단하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이게 가능한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제넨셀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컨소시엄이 만들어 진 게 지난해 8월입니다. 고작 5개월 됐어요. 보도에 따르면10 중순에 제넨셀이 임상1상을 위한 원료 의약품 생산 계약을 에이피알지와 체결했고, 한국파마가 그 원료 의약품을 기반으로 11월 중에 임상 1상을 위한 완제 의약품을 생산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9월초 인도에서 임상2.3상 승인을 받았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옵니다. 임상 요청을 한 지 한 달 만에 일사천리로 승인이 나온 겁니다. 그것도 1상이 아닌 2, 3상이요. 그리고 또 두 달 만에 임상2상을 성공리에 완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겁니다.


통상적으로 신약 하나 개발하려면 평균 14년이 걸린답니다. 임상 기간만 5~6년이라고 하죠. 임상 2상과 3상에 전체 개발비용의 50% 이상이 들어간다고 하고요. 제넨셀의 임상은 상식을 크게 벗어난 초고속으로 진행이 된 것인데, 인도의 코로나19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제넨셀의 후보물질이 워낙 특출나서 그런 걸로 이해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네요.



국내 큰 제약사들 뭐하고 있나 몰라요. 이 정도 신약개발 능력을 가진 곳이면 수천억원을 들여서라도 인수를 하든, 기술이전을 받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국파마나 필룩스보다는 훨씬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예요.


제넨셀에 대해 공개된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홈페이지를 보면 눈과 간에 좋은 건강기능식품을 판다고 돼 있고, 코로나19와 대상포진 치료제를 개발 중입니다. 둘다 제주도에서 가로수로 쓰인다는 담팔수의 추출물을 후보물질로 하고 있죠.


사람인(saramin)이라는 구직전문업체가 제공한 정보를 보면, 제넨셀은 2016년 8월에 설립된 업력 6년차 회사로, 직원이 4명이고 매출액은 3789만원이라고 하네요. 사람인이 얼마나 자주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작은 회사가 참 큰 일을 해내고 있군요.


컨소시엄에 필룩스가 참여했다는 보도는 없고, 필룩스와 제넨셀이 전략적 제휴를 했고 제넨셀이 임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필룩스를 상대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했다는 얘기가 언론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필룩스가 이 투자에 대해 공시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를 하기는 했죠. 지난해 11월 15억원을 출자했습니다. 제넨셀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임상을 진행하는지 모르지만, 15억원으로 임상비용이 충당되나 모르겠습니다. 필룩스 외에 훨씬 더 많은 자금을 대주는 곳이 따로 있는 걸까요?


그리고, 제넨셀이 홈페이지에 공시한 비즈니스 네트워크에도 필룩스가 없습니다. 필룩스 뿐 아니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컨소시엄 참여자들을 전부 제외시켜 놓았습니다. 임상이 진행되는 단계마다 언론에 기사를 제공하는 적극성을 생각하면, 분류를 따로 만들어서라도 표를 내고 싶어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재탕이든 3탕이든 필룩스로서는 참 필요한 시점에 상한가가 터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이틀 전인 11일 필룩스의 유상증자 결정 정정공시가 나왔는데, 28일을 신주배정 기준일로 3월22일 납입하는 일정으로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를 한다는 겁니다.


유상증자 규모가 무려 1060억원에 달합니다. 기존 주식의 40%에 달합니다. 기준 주가에서 25% 할인된 주가로 신주 발행이 된다고 하니, 약 7% 가량의 주가 희석효과를 각오해야 할 판이었죠. 그런데 제넨셀의 코로나19 치료제 덕에 상한가를 치게 되니 희석효과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고, 기준주가가 높아져 유상증자로 들어올 돈이 훨씬 많아질 기대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필룩스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중순까지 2000원대를 헤매다 7000원 가까이 급등했는데, 이후 다시 3000원대로 밀렸죠.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주가 상승이 절실했을 겁니다. 지난해 11월 중순 주가 급등의 이유도 제넨셀의 코로나19 임상2상 완료였습니다.


혹시 뒤집어 생각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제넨셀의 코로나19 치료제 때문에 상한가를 간 것이 아니라, 대규모 유상증자가 확정됐기 때문에 상한가를 간 것으로 볼 순 없을까요? 사실 좀 말이 안되긴 합니다. 할인 발행되는 유상증자는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는 게 상식이죠. 유상증자로 죽어가던 기업이 살아나거나, 회사에 큰 모멘텀이 되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대규모 유상증자를 앞두고 누군가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건 아닙니다. 그건 알 수가 없죠. 투자자들이 대규모 유상증자 이후 어떤 이유로든 간에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해 매수에 적극 나섰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죠.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이 주목하는 건 바로 이 점입니다. 왜 유상증자 공시가 나온 직후 주가가 급등했을까. 그것도 제3자 배정 방식이 아닌 주주배정 후 일반공모 방식에서. 제3자 배정 방식이라면, 회사와 투자자가 협의해 증자 시기를 조율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주가가 오르기 전에 발행가가 정해지는 게 투자자에게 좋죠. 주주배정 방식에서는 회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으로 증자 시기가 결정됩니다. 당연히 주가가 오른 후 발행가가 정해지는 게 회사에 좋습니다. 최대 주주 입장에서도 주가가 높은 게 좋지요.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분율을 덜 희석시켜도 되니까요.


사실 11일 나온 유상증자 공시는 무려 8차례나 정정된 것입니다. 지난해 8월 1299억원을 조달하려고 신고서를 제출했다가 금융감독원에서 계속 정정공시 요구를 받았습니다. 증자를 한두 번 해 본 회사도 아닌데 어떻게 8차례나 정정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1000억원이 넘는 증자 중 720억원을 빚 갚는데 쓰고 315억원으로 타법인 주식 취득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필룩스가 부채비율은 30%대 초로 낮은데 보유 현금(지난해 9월말 현재 263억원)에 비해 차입금이 536억원으로 많고 거의 전부 1년내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입니다. 영업으로 충분한 현금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형편이라 상환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죠.


315억원의 구체적인 용처는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 인수입니다. 처음 유상증자를 결정할 때만 해도 이 용도가 604억원이었는데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지난해말에 350억원의 투자를 이미 집행했거든요. 하얏트호텔 인수는 삼본전자와 장원테크 등 계열사가 총동원된 거래인데 필룩스가 자금조달의 축을 맞고 있죠. 자세한 건 따로 쓰겠지만 필룩스 혼자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합니다.


사실 필룩스의 바이오신약 투자는 제넨셀의 코로노19 치료제가 아니라 미국 자회사 바이럴 진과 리미나투스 파마의 면역항암치료제 개발이죠. 제조업체인 필룩스를 바이오회사로 인식시키는 변신이었는데요. 이 임상 비용도 필룩스가 대야 합니다.


하얏트호텔 인수와 바이럴 진의 면역항암치료제 개발은 필룩스가 끊임없이 전환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이유(또는 명분?)가 됩니다. 그 만큼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되는데, 코로나19 여파로 호텔사업은 극도로 부진하고 면역항암치료제 임상도 기약없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미국측 파트너와의 관계도 뭔가 석연치 않은 상황으로 여겨집니다.


어찌 보면 필룩스가 추진해 온 가장 큰 프로젝트 둘이 모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죠. 필룩스 주가가 그 동안 맥을 못 춘 것도 그래서 일테고요. 그런데 참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때마침 제넨셀발(發) 상한가로 자금조달에 청신호가 켜지네요.


필룩스가 발행한 전환사채 중 3회차부터 7회차까지는 전환이 가능한 상황인데, 그동안 전환가액이 여러 차례 낮아져 2836원에서 2897원 사이에 있습니다. 미상환 잔액은 220억원 정도 되고요. 어쩌면 이번 주가 급등의 최대 수혜자가 되겠네요. 원영식님, 유지호님, 한종희님 등에게 축하 인사를 전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