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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제와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 인수로 마치 돈의 블랙홀이 된 것 같은 필룩스그룹이 지난해 또 한번 큰 건의 거래를 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을 제작하는 (주)IHQ의 지분 50.49%를 약 1088억원(주당 1473원)을 주고 사들인 것이죠. IHQ는 유선방송사인 딜라이브의 자회사였는데, 지난해 11월 삼본전자 콘소시엄과 경영권 지분 매매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12월 17일에 정식 계약을 했죠.
이 거래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계약금 108억7648만원만 지급이 되었고, 잔금 979억원이 올해 3월 26일 치러져야 끝납니다. 그날 정말 거래가 끝날 지도 불확실합니다. 삼본전자 콘소시엄이 취득 예정일로 공시한 게 3월 26일인데, IHQ에서는 '거래 종결의 선행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더라고요. 대금 지급 외에 당사자 간에 어떤 선행 조건에 대해 합의를 했는지 알 수 없으니 거래 종결일은 어쩌면 더 미뤄질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3월 말경에 필룩스 그룹이 다시 한번 1000억원에 가까운 큰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IHQ의 인수 주체는 ㈜케이에이치미디어라는 곳인데, 이엑스티의 100% 자회사라고 하고요, 공시된 걸로는 자산총액 200만원(200억원 아닙니다) 짜리 회사입니다. 보도상으로는 2008년부터 있었던 영화 제작사인데, 제작한 영화는 없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엑스티 사업보고서나 분기보고서를 아무리 뒤져 봐도 케이에이치미디어라는 자회사는 찾아볼 수 없으니 참 모를 일입니다.
이 회사에 보유 자금이 있을 리 없고, 독자적으로 외부 자금을 조달할 능력도 있을 리 없습니다. 자금 조달의 책임은 보증을 선 계열사(삼본전자, 이엑스티, 장원테크)가 연대해서 지게 됩니다. 아무래도 케이에이치미디어의 모회사인 이엑스티가 증자 등의 형태로 수고를 좀 해야 할 것 같네요. 삼본전자와 장원테크는 이엑스티를 거쳐 간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게 되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런데 필룩스그룹의 다른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이엑스티 역시 돈을 잘 버는 회사가 아닙니다. 아마 부업(?)을 열심히 하지만 않으면 혼자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필룩스그룹 소속사 답게 본업 외에 다양하게 눈을 돌리는 곳이 많습니다. 물론 스스로 결정하는 투자라기 보다는 그룹 차원에서 하는 투자에 동원된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대표적인 게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에 대한 투자겠지요. 필룩스가 대표선수로 하얏트호텔 인수로 등장하지만 2000억원이 훌쩍 넘어서는 인수자금을 대기 위해 삼본전자 장원테크와 함께 이엑스티도 꽤 부담을 지고 있죠.
이엑스티는 매년 30~4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입니다. 지난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9월까지 3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9년부터 자금이 상당히 쪼들립니다. 필룩스의 손자회사가 되고부터 영업외 투자가 크게 늘었거든요. 2019년에 41억원의 영업활동에서 들어온 현금이 30억원 남짓인데 종속회사나 관계회사 지분 취득을 포함해 영업외 투자로 500억원 이상을 썼습니다. 지난해에도 9월까지 150억원 가까이 지출했죠.
벌이에 비해 씀씀이가 크니 당연히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게 됩니다. 대부분 전환사채를 발행해서 충당을 하죠. 201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유상증자로 조달한 게 120억원이고, 차입을 한 게 580억원 정도 되는데, 대개 전환사채를 발행한 겁니다. 2019년에 3차례에 걸쳐 500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했고, 지난해에도 8월에 70억원짜리와 30억원짜리를 동시에 발행했죠. 이렇게 조달한 돈은 전부 타법인 지분 취득이나 대여금이나 기타 투자에 들어갑니다.
장원테크가 최대 주주가 되기 직전인 2018년말 이엑스티의 자회사는 에스이컬러컬쳐㈜라는 석유화학회사와 베트남 현지법인인 EXT Vina 둘 뿐이었습니다. 장부가액 기준으로 10억원 정도였죠. 그런데 지난해 9월말에는 5개의 종속회사와 1개의 관계회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대부중개업을 하는 와이케이파이낸셜대부, 부동산개발업을 하는 파일리츠와 오버나인와이디라는 곳이 추가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우스1호투자조합, HYT조합, 플러스투자조합, 인마크자산운용 26-3호 등 조합이나 펀드에 대한 투자도 많습니다. 이중 HYT조합은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에 투자를 하기 위해 출자한 것입니다. 그렇게 투자한 자금이 근 500억원이고 장부가액 기준으로도 500억원 정도입니다.
전환사채 발행을 그렇게 많이 했지만 부채비율은 높지 않습니다. 2019년 136%이던 것이 지난해 9월에는 33% 수준으로 오히려 크게 낮아졌습니다. 전환사채가 대부분 주식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죠. 코로나19로 3월에 바닥까지 떨어졌던 주가가 이후 오르는 과정에서 전환기간이 된 전환사채들이 대부분 주식으로 바뀐 모양입니다. 지난해 전환사채 전환으로 늘어난 자본이 8월까지 무려 500억원에 달합니다.
2019년에 발행된 2회차 300억원, 3회차 100억원이 대표적인데, 2300원대에서 지난해 6월 이후 9월까지 주식으로 전환되었더라고요. 주가가 한창 오를 때였습니다. 최고 4250원까지 갔었죠. 4회차 100억원의 전환사채도 전환이 됐습니다. 지난해 10월에 50억원, 올해 1월에 50억원이 주당 2751원에 보통주로 바뀌었습니다.
케이에이치미디어의 IHQ 인수를 돕기 위해 이엑스티가 하게 될 일 역시 전환사채로 자금을 끌어들이는 겁니다. 이미 시작이 되었죠. 이엑스티는 지난해 10월에 100억원, 11월에 50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에 다시 50억원어치를 추가로 발행했죠.
현재 남아있는 전환사채는 5회차부터 9회차까지 300억원인데, 5회차와 6회차는 그랜드 하얏트호텔 서울에 투자하기 목적이라고 명시를 했고, 7회차 100억원도 아마 그랜드 하얏트호텔에 투자한 재무적 투자자(FI)의 우선주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에 발행한 100억원어치는 IHQ 인수자금 용도일 것 같습니다. 이 전환사채를 인수한 곳이 두 번 모두 케이에이치글로벌조합이더라고요. 케이에이치미디어에 투자하는 투자조합이라는 의미 아닐까 싶습니다만… 순전히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만의 뇌피셜일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예요. 이 조합에 출자한 곳이 한 군데 뿐이더라고요. 놀랍게도 다름 아닌 아이오케이컴퍼니입니다. 130억원의 출자액으로 조합이 구성되었는데, 99.99%를 아이오케이컴퍼니가 출자했습니다. 필룩스그룹의 배상윤 회장이 W홀딩컴퍼니의 원영식 회장과 자주 돈 거래를 한 것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원영식 회장에게서 아이오케이컴퍼니를 인수한 쪽과도 거래를 하고 있군요. 아이오케이컴퍼니의 최대 주주는 포비스티앤씨이고, 그 위에는 비비안-쌍방울-광림이 나란히 있죠. 광림의 최대 주주는 김성태라는 분입니다. 코스닥 시장의 M&A를 주름잡는 거물 중 한 분이죠.
케이에이치조합을 대상으로 이엑스티가 발행한 전환사채는 100억원입니다. 케이에이치미디어가 3월26일 지불해야 할 잔금은 989억원이고요. 이엑스티 혼자 모든 짐을 짊어 질 것 같지는 않지만, 아직 갈 길이 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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