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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 매각설을 단독 보도한 모 경제지는 현대차그룹이 부인 공시를 낸 뒤에도 오보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를 보입니다. 부인 공시가 나온 다음 날, 추가 기사를 통해 현대로템 매각의 최대 난관은 방산업체로서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매각설을 부인한 이유는 정부와 협의가 덜 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실제로 현대로템은 대한민국 육군의 주력 전차를 만드는 유일한 회사이고,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보유한 속도 350km/h 이상 고속열차 동력시스템 설계 및 제조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대로템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대부분의 고속철도열차를 생산하고 있죠.
방산업체 지분을 외국기업이 보유하기 위해서는 산업자원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인수하거나 외국인이 투자할 경우에도 산업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외국기업이 방산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정부와 상당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현대로템의 철도부문을 따로 떼어 내 외국기업에 매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죠.
매각설 보도가 사실이 아닐 수 있지만,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무효화된 거래를 뒤늦게 보도한 것일 수도 있고, 일부 사실을 확인했지만 전모를 알지는 못한 채 기사가 나갔을 수도 있죠. 뭐, 부인 공시로 모두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일부에서 추측했던,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면서 정의선 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대로템을 매각하려고 한다는 관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차그룹의 복잡한 지분구조와 분할의 방식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기업 분할에는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의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인적 분할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분할 이전과 분할 이후에 기업의 법인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현대로템이 둘 이상의 회사로 나뉘고, 그 둘은 별개의 법인격을 갖는다, 즉 둘 사이에 지배-종속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포함한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게 되죠.
인적분할을 할 경우 현대로템은 철도부문과 기타부문(또는 방산부문과 플랜트부문 등 3개사로 분할)으로 나뉘게 되고, 현대로템의 주주는 둘 또는 세 회사의 지분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분할을 한다고 해도 주주는 변하지 않죠.
반면 물적분할은 분할 이후에도 한 몸입니다. 존속회사가 분할신설 회사의 지분 100%를 갖게 되죠. 존속회사가 분할회사를 포함해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하게 됩니다.

철도부문을 분할 후 매각한다면, 인적분할의 경우 매각의 주체는 최대 주주인 현대차가 됩니다. 현대차가 지멘스와 매각 논의를 했다는 보도는 인적분할을 전제로 한 것이죠. 반면 물적분할 후 매각을 한다면, 매각의 주체는 현대로템의 존속법인이 됩니다. 매각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건 현대차가 아니라 현대로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로템이 철도부문을 매각하고자 한다면 굳이 분할을 할 것까지 없습니다. 영업양수도로 사업부문을 지멘스로 넘기면 됩니다.
인적분할 후 철도부문을 매각하면 그 대가인 현금은 현대차에 유입됩니다. 물적분할 후 매각 또는 영업양수도 방식의 매각이면 현대로템에 유입이 되죠. 현대로템이 현대차 계열사라고 해도 그 돈을 마음대로 갖다 쓸 수는 없습니다.
현대차 외에 현대로템의 주주로는 국민연금(5%)이 있지만, 정의선 회장은 없습니다. 현대차의 최대 주주는 현대모비스(21.43%)이고, 정의선 회장의 현대차 지분은 2.62%에 불과하죠. 현대차로 매각 대가가 유입된다고 해도 정의선 회장을 위해 쓰일 일이 없습니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도 0.32%로 아주 낮습니다. 철도부문 매각의 효과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가가 상승한다면 현대모비스 지분율을 높여야 할 정의선 회장에게 호재가 아닌 악재가 되지요.
혹시 현대차가 현금이 필요해서 현대로템의 철도부문이라도 매각하려고 했을까요? 현대로템의 시가총액이 2조2000억원대이고, 현대차 지분율이 33.7%이니, 현대로템 지분의 시장가치는 7000억~8000억원 사이일 테고, 철도부문만 따지면 더 적겠죠.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3년 연속 적자를 보고 있고, 세계시장에서 뚜렷한 경쟁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절반인 3500억~4000억원을 쳐주기도 어려울 겁니다. 설사 프리미엄을 얹어서 판다고 해도 언론의 보도에 언급된 1조원은 언감생심이죠.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현금흐름은 약 6조원으로 코로나19 충격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래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현금유동성(단기금융상품 포함)은 지난해말 현재 대략 5조8000억원 정도 됩니다. 연간 설비투자가 4조원을 넘지는 않으니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금유동성을 우선한 경영을 한 흔적이 보이기는 합니다. 매출채권과 재고자산 등에 묶이는 현금을 최소화하고 매입채무를 늘려 현금흐름을 극대화하려고 했습니다. 외부차입도 3년째 늘어났는데, 지난해 증가폭이 1조7000억원으로 최근 3년 중 가장 많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현금을 자율주행 기술에 투자했습니다. 현대모비스 기아차와 함께 미국 델라웨어주에 자율주행 기술 관련 합작회사인 Hyundai-Aptiv AD LLC'를 설립하는 데 1조3000억원 가량을 썼고(3월), 로봇기술 확보를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Boston Dynamics, Inc란 회사의 구주를 소프트뱅크로부터 인수하고 유상증자에 참여하는데 3580억원 가량을 썼습니다(11월).
물론 올해 이후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에 나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일환으로 1조원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현대로템의 철도부문 매각을 착안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방산부문을 분할해 기아에 넘기고, 플랜트부문을 분할해 현대건설이나 현대엔지니어링에 팔면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명색이 그룹의 맏형인 현대차인데, 그래 봐야 1조원 남짓할 돈을 계열사에서 빼 오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현대로템 분할을 수긍할 수 있는 몇 가지 상상이 가능해 집니다. 우선 서로 관련성이 별로 없는 방산부문, 철도부문, 플랜트부문을 굳이 한 회사 아래 둘 필요는 없죠. 재무적인 시너지는 몰라도 사업상의 시너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철도부문과 플랜트부문을 분할해 독립회사로 두기도 어렵습니다. 실적 변동성이 너무 커서 지속 생존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죠. 플랜트부문을 분할한다면 현대건설이나 현대엔지니어링에 합병하는 것이 그럴 듯 해 보입니다. 방산부문은 분할해서 기아와 합병할 수도 있고, 홀로 서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3년째 적자 행진을 하고 있는 철도부문은 어떨까요. 국내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후발업체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고 있고, 세계 시장의 경쟁을 갈수록 가열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알스톰, 독일의 지멘스, 중국의 중궈난춰 등은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M&A를 통한 합종연횡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로템에게 유리하지 않은 환경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현대차그룹은 수소 모빌리티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고, 현대로템은 현대차 및 기아차와 함께 핵심 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소트램의 공개는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뇌피셜입니다만, 현대로템의 분할은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검토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다만, 철도부문에 대한 처리 방안이 섰을 때 성립이 가능한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현대로템을 빼고 현대차그룹의 수소 모빌리티 사업을 논할 수 없다는 전제를 깔면, 철도부문을 분할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수주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수소 모빌리티 사업에 탄력을 더 할 수 있는 방안, 즉 철도부문이 현대차그룹의 문제아에서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런 거지요. 현대로템의 철도부문을 분할해 지멘스 등 해외 철도회사와 합작을 하는 겁니다. 해외 파트너가 현대차와 동일한 지분으로 철도부문 신설법인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이죠. 상대가 지멘스라고 가정하면, 세계 고속철도열차 시장에서 수주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겁니다. 현대차가 유력한 지분을 계속 보유한다면, 현대차의 수소 모빌리티 사업의 한 축으로 현대로템의 철도부문이 여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고요.
여기에 해외 유력 파트너와 합작으로 수주 경쟁력까지 높일 수 있다면, 세계 철도 시장에서 현대차의 수소 모빌리티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게 되는 것 아닐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상상은 어떤 사실적 근거에도 바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팩트로 받아들이시면 안됩니다. 고속철도열차가 국가의 핵심기술로 지켜지고 있다는 점. 현대로템의 철도부문이 현대차그룹의 수소 모빌리티 리더십에 중요한 전략적 요소라는 점을 감안해 현대로템 철도부문 매각이 얼토당토않은 헛소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까 짜 맞추어 본 것일 뿐입니다. 독자들의 오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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