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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공정거래법 상 지주회사의 조건에 대한 것입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모듈/AS부품 부문)와 투자회사(부품제조 부문)로 분할하고 투자회사가 현대차와 기아차를 지배하도록 방안을 추진하면서도 현대모비스 투자회사를 공정거래법 상 지주회사로 만들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존속회사인 부품제조 부문을 투자회사로 함으로써 현대모비스 자산의 대부분을 몰아준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죠. 공정거래법 상 지주회사는 소유하고 있는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자산총액이 50% 이상이어야 합니다. 자회사 주식에 비해 다른 자산이 많으면 지주회사가 되지 않는 것이죠.


현대모비스 투자회사가 지주회사가 되면, 공정거래법의 여러가지 지주회사의 규제를 받게 됩니다. 부채비율 200% 이하를 유지하는 것과 자회사 지분을 일정 비율 이상(상장사 20%, 비상장사 30%) 보유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등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처분해야 합니다.



기아차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정의선회장 등 총수일가가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교환함으로써 해결이 될 수 있죠. 그렇게 하는 것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동시에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분할합병의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또 총수일가 지분이 사라져야 현대글로비스가 내부거래 규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회사 지분율 20%(비상장 30%) 이상의 규제는 복잡합니다. 현대모비스에는 많은 종속회사와 관계회사가 있는데, 주요 관계회사 중 현대자동차 지분율은 20% 조건을 충족하지만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토에버, 현대차증권은 조건에 미달합니다. 현대모비스 투자회사가 지주회사가 되면, 이 회사들의 지분율을 20%(현대엔지니어링 30%)이상이 되도록 추가 취득을 하거나 전량 처분해야 합니다.


이것 만으로는 그렇게 복잡할 게 없습니다. 현대건설 지분은 최대 주주인 현대자동차에게 넘기면 되고, 현대엔지니어링은 상장을 추진하고 있으니 구주 매각으로 처분하거나 최대주주인 현대건설에 넘기면 되겠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젭니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역시 손자회사에 대해 지분율 규제를 받습니다. 현대건설이 현대자동차의 자회사(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되면 증손회사를 보유할 수 없습니다. 보유하려면 지분 100%를 전부 가져야 합니다. 현대건설이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38.62% 보유하고 있는데, 현대엔지니어링 상장과 함께 보유하는 주식 전부를 매각해야 한다는 소리죠.



현대모비스 투자회사가 지주회사가 되면 기아차는 현대차와 합병하지 않는 한 손자회사가 됩니다. 기아차는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위아, 현대트랜시스, 현대오토에버, 현대차증권, 해비치컨트리클럽,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등 관계회사 지분이 매우 많은 회사입니다. 지주회사 규제를 받게 되면 이 계열사들의 지분을 100% 소유하거나 전량 처분해야 합니다.


현대건설과 기아차 뿐 아니라 계열사를 공동 보유하는 경우가 현대차그룹에는 많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주요 게열사에 지분을 매각하거나 추가 취득해야 하는 과제가 생기게 됩니다. 계열사 간에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지분 거래가 필요해 진다는 얘깁니다.


물론 지주회사 요건에 맞추어 지분 관계를 모두 정리하는 데는 2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있다고 해도 계열사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게 마련이라 지주회사 체제를 완전히 갖추는 데는 2년의 유예기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상당한 자금이동이 수반될 것이 뻔합니다. 현대차그룹이나 총수일가나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현대차그룹이 단번에 지주회사 체제로 갈 작정이었으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보다는 다른 카드를 꺼냈을 지 모릅니다. 롯데그룹이 롯데지주를 설립할 때처럼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차 등 주요 계열사들을 모두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분할하고, 각 투자회사들을 합병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깔끔했겠죠. 왜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걸까요. 순환출자 해소 외의 목적, 예를 들면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불리하다는 판단이 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현대모비스를 부품제조와 모듈/AS부품 부문으로 분할함으로써 부품제조를 맡는 존속회사가 지주회사가 되느냐 지주회사 '격'이 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정거래법 상 지주회사가 되면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아주 많은 후속 작업들이 대기하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공정거래법 상 지주회사의 기준입니다. 공정거래법 시행령 2조에서는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면서, 국내 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를 지주회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주된 사업'의 판단은 재무상태표상의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회사의 주식가액을 지주회사가 될 회사의 장부가액으로 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자회사 주식을 평가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거든요. 지주회사는 연결실체가 아닌 개별 기업의 차원이기 때문에 개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보게 될 터인데, 개별 재무제표에서는 자회사 주식을 원가법, 지분법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공정가치나 시장가치로 평가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령, 자산총액 1조원인 A기업이 자회사 주식 취득에 3000억원을 썼는데, 자회사들이 성장해 지분법 평가시 5000억원, 공정가치로 6000억원이 되었다고 해도 A기업이 원가법을 적용하고 있다면 대차대조표에는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영원히 3000억원입니다. 지분법이나 공정가치법을 적용했을 때 자산총액의 50% 이상이 되더라도 원가법을 적용한 장부가액 기준으로 50%에 미달하면 실질적인 지주회사라고 해도 공정거래법상으로는 지주회사가 아닌 겁니다. 당연히 지주회사의 여러 행위제한 규제를 받지 않게 되죠.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현대자동차 주식의 공정가치는 3월말 현재 9조9805억원에 이릅니다. 현대건설 주식은 4282억원, 현대차증권 주식은 650억원, 현대오토에버 주식은 4720억원어치 보유 중이죠. 4개 상장사 주식만 11조원에 달합니다.


공정가치가 아닌 지분법으로 계열사 주식을 평가한다면 얼마가 될까요. 3월말 현재 현대자동차만 12조49억원에 이르고,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차증권을 포함하면 14조원에 이릅니다. 장부가액 1조3000억원인 현대모비스의 종속회사를 전부 제외하고도 그렇습니다. 종속회사를 지분법으로 더하고, 여기에 다른 관계사 지분까지 포함하면 16조원을 훌쩍 넘어간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모비스는 자회사를 포함한 관계기업 및 공동투자기업의 주식을 개별 재무제표에서 지분법이나 공정가치법이 아닌 원가법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분을 취득하는 데 직접적으로 투입된 금액으로 평가하고 있죠. 이 기준으로 현대자동차 주식은 3조8802억원, 현대건설은 1조1672억원, 현대차증권 540억원, 현대오토에버는 214억원입니다. 상장사 지분의 장부가액이 공정가치의 절반에 불과하죠.


이밖에 다른 계열사 주식이나 해외종속법인 지분 역시 원가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경영성과나 순자산의 변화를 반영하는 지분법에 비해 낮은 금액이 장부에 적혀 있다고 봐야겠죠.



그 결과,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종속회사, 관계회사, 공동투자기업 주식의 장부가액은 큰 변화가 없습니다. 2016년말에 7조3820억원에서 5년여가 지난 올해 3월말 현재 7조5907억원으로 소폭 늘었습니다. 그 동안 현대모비스의 자산은 꾸준히 늘어 2016년 24조원대이던 것이 올해 3월말 31조원대를 기록하고 있죠. 덕분에(?) 전체 자산에서 계열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습니다. 2016년말에는 30%에 달했는데 올해 3월말 기준으로는 24%를 기록했습니다.


현대모비스가 계열사 주식에 원가법을 적용한 것은 분할합병 이후에 지주회사 규제를 피할 기회를 줍니다. 2018년에 그랬듯 기업분할시 자산을 존속법인에 몰아주면 됩니다. 2018년 당시에 비해 자산총액은 커졌고 종속/관계기업 주식 비중은 하락했으니 그때보다 자산을 덜 몰아줘도 지주회사를 피해갈 수 있죠.


계열사 주식의 추가 취득이나 처분이 없다고 전제하면, 현대모비스의 3월말 현재 자산이 31조원이니 절반인 16조원만 존속법인에 떼어줘도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전체 자산의 50%를 넘지 않습니다. 지주회사 지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현대모비스가 계열사 주식을 공정가치법이나 지분법으로 평가하고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모듈/AS부품 신설법인에 최소한의 자산만 떼어주고 대부분을 존속법인에 남겨도 자회사 주식 비율을 50% 아래에서 묶어 두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요. 똑 같은 자회사들인데, 공정가치법이나 지분법으로 평가하면 지주회사가 되고, 원가법으로 평가하면 지주회사를 피할 수 있다니요? 아하, 그래서 기업들이 별도 재무제표에서 종속기업이나 관계기업을 원가법으로 회계처리했던 모양이네요.


전체 자산은 빠르게 늘고, 계열사 주식은 거의 늘지 않는 바람에 현대모비스는 2018년에 비해 분할비율에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듈/AS부품 신설법인에 자산을 좀 더 나눠주더라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할 존속법인이 지주회사에 지정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2018년에 비해 분할비율이 올라갈 여지가 생긴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