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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의 가장 큰 문제점이 분할합병 비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율의 문제는 공정하게 수정하면 되지요. 현대모비스의 부품제조부문과 모듈/AS부품 부문이 공정가치에 맞게 분할되고, 모듈/AS부품 부문이 현대글로비스와 공정가치에 의거해 합병하면 공정성 문제는 사라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것에 있습니다.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해야 하는 것은 시대적 당위이고, 일감 몰아주기 이슈도 해결을 해야겠지만, 그 방법이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 부문과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이 되는 게 정석이냐는 겁니다. 기업간 합병의 당위성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따로 있는 것보다 붙어 있는 것이 기업가치 면에서 더 유리해야 하는 것이죠. 합병을 했을 때 미래에 더 많은 수익창출이 가능해야 합병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겁니다. 1+1이 2보다 커야 합니다.



현대글로비스는 물류부문 유통부문 해운부문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물류부문은 고객의 화물에 대한 운송, 보관, 하역 등의 업무를 하는 것이고, 유통부문의 핵심은 CKD사업으로 해외 자동차공장에서 국내외 자동차부품에 대한 주문을 접수해 적시 공급하는 것입니다. 현대글로비스의 핵심 사업이죠. 해운부문은 현대차와 기아의 완성차 운송과 벌크선과 탱커선을 이용한 화물 운송을 수행하죠. 모두 현대차그룹이 주요 고객입니다. 부문이 크게 셋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결국 현대차그룹을 위해 철광석 등의 화물, 자동차부품, 완성차 등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합니다. 현대차그룹의 구매활동 및 판매활동과 직결됩니다.


이런 회사에 AS부품 사업을 합해서 어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걸까요?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지 뚜렷하게 '이거다'하는 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2018년 분할합병 추진 당시 의결권 자문기관들도 이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죠.


당시 언론들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모 언론은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매각해 기아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총수 일가가 1조원이 넘는 양도세를 내야 하는데, 이를 감수하려는 것은 정공법을 택한 것이라고 했죠. 현대글로비스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서는 총수 일가의 지분, 어차피 팔아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세금을 내겠다고 하는 게 왜 정공법이 되는 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아이디어는 순전히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이죠.


순환출자 구조 해소의 방법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정공법이라고 한다면, 지주회사 설립이죠. 어떤 방식을 택하든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면 순환출자 고리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지주회사 제도 자체가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라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은 지주회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순환출자를 해소하되, 지주회사로 가지는 않겠다. 즉 지주회사의 지분율 규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죠. 당연히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20% 미만의 지분율로 계열사를 거느리고, 최상위 지배회사의 손자 뻘이 될 기아에 줄줄이 자회사들이 달려 있는 지배구조가 깔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지주회사로 가자면 못 갈 것도 없지요. 2018년 당시 행동주의 펀드(당시 국내 언론은 투기자본으로 몰아 붙였지만)로 유명한 엘리어트는 현대차의 기업가치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워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의 합병을 제안했습니다. 두 회사를 합병한 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물적 분할을 해, 투자회사를 지주회사로 하자는 것이죠. 그리고 자동차금융을 담당하는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는 부품과 완성차를 만드는 사업회사가 보유하도록 했습니다. 자동차판매와 자동차금융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죠.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논외로 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개편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핵심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의 출자 구조입니다. 그런데 현대모비스는 현대차를 제외하고 그룹의 주력회사 지분이 없습니다. 계열사 지분을 골고루 보유한 회사는 현대차와 기아, 두 완성차 회사지요. 이중 현대모비스와 현대차를 합병한다면, 얼추 지주회사의 꼴을 갖추게 됩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차를 합병하게 되면 합병법인은 현대제철을 제외하고 기아차, 현대건설, 현대위아, 현대오토에버는 물론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 등 주력 계열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하게 됩니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 조건을 충족하죠. 여기서 합병법인의 사업부문에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 지분을 포함해 물적분할하게 되면 엘리어트가 요구한 지배구조 개편안과 비슷해 집니다. 나머지는 현대차그룹의 사업 경쟁력 강화에 유리하게 지분을 재배치하면 됩니다. 얼마든지 짜임새 있는 구조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엘리어트 제안처럼 현대위아를 기아의 자회사로 두고 싶다면, 지주회사가 가진 현대위아 지분을 주고, 기아가 가진 현대제철 지분(17.27%)를 받아오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지주회사의 현대제철 지분과 기아의 현대위아 지분이 모두 20% 이상이 돼서 의무지분율 조건에 맞출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차액 정산은 필요합니다.


부품사업과 완성차사업을 합치는 게 내키지 않는다면, 롯데그룹이 했던 것처럼 헤쳐 모여 식의 지주회사 설립도 가능합니다. 주력 계열사들을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인적분할 한 뒤에 모든 투자회사를 하나로 합병하는 겁니다.


이 경우에도 핵심은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 3개사가 됩니다. 3개사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나누고, 3개 투자회사를 합병한다고 치면, 지주회사 아래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건설이 자회사로 배치됩니다. 각 주력회사 아래 남겨 놓고 싶은 계열사가 있다면, 그 계열사 지분을 제외하고 투자회사로 분할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면 되죠.



사업의 적재적소 측면에서 보면, 가장 유리한 방법입니다. 지배구조도 아주 깔끔해 지죠. 게다가 2018년에 겪었던 분할합병 비율의 이슈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투자회사를 분할하는 것은 지분만 떼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분할비율의 문제가 거의 없고, 투자회사끼리 합병하는 것은 각 투자회사가 보유한 지분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기만 하면 됩니다.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를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죠. 현대글로비스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때문은 아닙니다. 그 규제를 피할 현실적인 방법은 지분 매각이 유일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바꾸든 처분해야 하는 지분이니 변수가 아닙니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서는 총수 일가가 지주회사 지분을 취득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최대 재원인 현대글로비스 지분의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현대모비스의 캐쉬 카우인 AS부품 사업을 현대글로비스와 합치는 식의 카드가 지주회사 체제를 선택할 경우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