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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의 매출이 국내 시장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한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리니지> 시리즈가 국내 골수 팬들을 이미 확보하며 장수하고 있어 앞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한편, 국내 시장 만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올리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게 합니다.
크래프톤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대부분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은 엔씨소프트와 구별되는 장점입니다. 시장의 크기가 국내보다 훨씬 크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리스크도 안고 있습니다. 해외시장, 특히 중국에서 예상치 못한 규제(실제로 인도지역에서 게임판매가 중단된 적이 있음) 등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이 많습니다. 텐센트 등 매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해외 퍼블리셔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기도 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이 언제든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엔씨소프트보다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글로벌 히트작인 <배틀그라운드> IP가 향후 매출에 상당한 기반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합리적입니다. 영화, 방송, 음악 등의 콘텐츠 생산에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임을 넘어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을 해 주지는 않습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는 20년 이상을 장수하고 있습니다. 매출의 지속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는 이제 5살짜리 게임입니다. 장수 가능성을 평가절하할 것도 없지만, 20년 이상 크래프트를 먹여 살려 줄 것이라고 믿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크래프톤은 현재 <배틀그라운드>, <테라>, <엘리온>, <골프킹: 월드 투어>, <미니골프킹>, <볼링킹> 등 6개 게임을 서비스 중인데, 매출은 <테라>, <배틀그라운드>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지난해 말 신작 <엘리온>이 출시되며 매출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온>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않습니다. 성인용 게임인 <엘리온>은 전작인 <테라>와 같은 논타킷 전투시스템에 대해서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테라>를 넘어서는 매력은 없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표절 논란을 겪기도 했고, 배경스토리가 판에 박힌 듯 특색이 없다거나, 그래픽이 엉망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합니다. 이렇다 할 특색이 없으니 핵심 유저층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2019년에 몇 개의 모바일 타이틀을 출시했지만 인기를 얻지 못해 곧바로 서비스가 종료되었고, 콘솔 게임으로 출시한 <미스트오버>도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2019년 12월 '눈물을 마시는 새' IP를 이용한 게임을 개발 중이라고 공개했지만, 원작과 전혀 다른 컨셉으로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지난해 5월 개발 중지되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게임회사의 핵심 경쟁력은 당연히 게임 개발 능력인데, <테라>와 <배틀그라운드>의 흥행으로 크래프톤의 개발력은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발 능력의 '지속성'은 아직 입증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테라>와 <배틀그라운드>의 바통을 넘겨 받을 후속작이 몇 년째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으로 기본적인 먹거리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든든하게 말이죠. 하지만 지속적인 먹거리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크게 흥행을 했다가 폭망하는 게임회사는 종종 나옵니다. 게임산업은 변동비가 거의 없어 한번 흥행하면 크게 돈을 벌게 되는데, 그렇게 대성공을 거두고 나서 이렇다 할 후속작을 내지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지곤 합니다. 성공이 독이 되는 경우입니다.
기업가치를 제대로 추정하려면, 향후 성장에 대한 기대가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성장 가능성이 높더라도 리스크 역시 크다면, 그에 합당한 디스카운트가 필요합니다. <테라>와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으로 매출이 급증했다고 해서, 그 성장률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바통을 이어 받을 후속작이 나와줘야 합니다. <배틀그라운드: New State> 등의 흥행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게임이 대박이 나서 대박 IP를 확보했다고 해서 그 IP를 기반으로 종합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줄 수도 없습니다. 사업확장의 기회를 잡은 것 뿐이죠. 크래프톤은 아직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아니라 게임회사입니다.
크래프톤 IPO에 인수인으로 참여한 증권사들은 올해 1분기 실적을 단순히 4배로 한 수치를 올해 연환산 매출로 하고 지난해보다 10.4% 성장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분기 매출보다 밑도는 실적인데 말이죠. 또 <배틀그라운드: New State> 등의 신작 개발로 크래프톤이 향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배틀그라운드> IP를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성공이 보장된 것처럼 의견을 냈더라고요.
이제 주당 45만8000원~55만7000원의 희망 공모가액이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볼까요. 이 희망 공모가액은 나름의 기업가치 평가에 의해 결정된 것이고, 앞으로 희망 공모가액을 바탕으로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한 후 그 결과를 반영해 확정 공모가액이 결정될 것입니다.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크게 절대가치 평가방법과 상대가치 평가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절대가치 평가방법은 널리 알려진 미래현금흐름의 현재가치할인모형(DCF)이죠. 이론적으로는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지만, 미래현금흐름 추정이나, 할인율의 결정에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높습니다.
기업의 신규 상장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상대가치 평가방법을 씁니다. PER이나 EV/EBITDA가 대표적입니다. 신규 상장기업과 가장 유사한 비교기업들을 골라낸 다음에, 비교기업들의 PER이나 EV/EBITDA를 신규 상장기업에 적용해 가치를 평가하는 겁니다.
언뜻 객관적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올시다 입니다. 우선 비교기업을 골라내는 것부터 객관성이 결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판박이 기업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애초부터 자의적으로 비교기업이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교기업의 PER이나 EV/EBITDA가 천차만별인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비교기업의 PER이나 EV/EVITDA의 평균값을 구해 대상기업에 적용하면 기업가치가 나오는 것인데, 비교기업의 값들이 너무 달라서 평균값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억지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가령 한 기업은 PER이 10이고, 다른 기업은 30이라고 하면, 대상기업의 예상 PER이 20이 되는데, 그걸 어떻게 믿냐고요.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는 상대가치법 중 PER지표를 이용했습니다. 글로벌 게임개발사와 퍼블리싱 회사가 비교군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런데 크래프톤이 '콘텐츠 제작의 명가'라는 비전을 갖고 있고 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글로벌 콘텐츠 제작회사도 비교기업으로 선정했습니다. 무려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월트 디즈니와 소니 뮤직, 유니버셜 뮤직과 함께 세계 3대 음반 레이블인 워너 뮤직 그룹을 포함시켰습니다.
이건 좀 난센스 같습니다. 세계 최강의 시장 지배력을 갖춘 월드 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의 PER을 이제 막 엔터테인먼트산업을 모색하는 크래프톤에 적용 하다니요.. 월트 디즈니 순이익 1달러와 크래프톤 순이익 1000원의 가치가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크래프톤이 게임회사이고 향후에 엔터테인먼트도 할 것이니, 세계 여러 게임사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섞어 놓으면, 미래의 크래프톤과 비슷한 기업이지 않겠느냐고 주장할 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얘기는 크래프톤의 포트폴리오에 들어갈 미래 사업들이 전부 국내 또는 세계 최강의 시장 지배력을 갖춘다는 얘기가 됩니다.
비교기업들의 평균 PER은 45.2배가 나왔습니다. 9개 비교 값 중 최고와 최저를 제외한 7개 값의 평균입니다. 그런데 월트 디즈니의 88.8배와 워너뮤직그룹의 38.1배를 제외하면 37.9배가 나옵니다. 비교기업에 월트 디즈니가 들어가면서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PER 산정의 기초가 되는 주가와 지배주주순이익에도 납득이 어려운 요소들이 있습니다. 우선 지배주주순이익의 경우 올해 1분기 순이익에 4배를 곱해 연환산한 값인데요. 여기에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를 높게 만든 변수가 숨어 있습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연환산 순이익이 각각 3235억원과 2256억원으로 나왔습니다. 이 값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엔씨소프트 5874억원, 넷마블 3129억원)보다 적습니다. 그런데 국내 증권사들이 추정한 올해 순이익(컨센서스)은 엔씨소프트 7457억원, 넷마블 331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이 예상한 컨센서스가 맞아 떨어질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단순히 1분기 순이익을 네 배한 것으로 올해 연간 순이익을 결정하는 것 보다는 낫지 싶습니다. 증권사 컨센서스인 올해 당기순이익을 기초로 하면 엔씨소프트의 PER은 24.23배, 넷마블의 PER은 33.81배가 나옵니다. 인수증권사들이 추정한 57.2배, 51.5배보다 크게 낮아집니다.
인수증권사들이 산출한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는 35조원에 달합니다.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에 4배를 곱해 연환산 순이익을 구하고, 거기에 비교기업의 평균 PER인 45.2배를 곱한 값입니다. 인수증권사들은 크래프톤이 올해 7761억원의 순이익을 올릴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크래프톤은 지난해 1분기에 연간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올렸습니다. 2~4분기 순이익을 전부 합해도 1분기 순이익에 미치지 못하죠. 반면 엔씨소프트는 1분기에 최대 순이익을 올리기는 했지만 2분기 이후 감소 폭이 크래프톤보다는 훨씬 덜 합니다.
분기순이익의 이런 패턴이 매년 반복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2019년 이전에 크래프톤의 순이익이 분기별로 어떤 패턴이었는지도 분기보고서가 나오지 않았으니 확인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순이익이 극단적으로 1분기에 몰린 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이 올해 1분기 순이익이 저조했고, 주가는 지난해보다 크게 올랐습니다. 1분기 순이익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 PER값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옵니다. 인수증권사들은 두 회사가 올해 엄청난 실적 쇼크를 겪을 것으로 전제하고 PER을 산출했습니다.
반면 크래프톤은 1분기에 순이익이 두 회사보다 크게 많습니다. 1분기 순이익을 기준으로 한 연환산 순이익은 지난해 5563억원보다 40% 늘어나는 것으로 나옵니다. 비교기업의 이례적으로 높아진 PER값이 합리적으로 보기 어렵게 많이 추정된 크래프톤의 연환산 순이익에 적용되니 기업가치가 크게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수증권사들이 추정한 35조원의 기업가치를 공모 후 잠재주식 수로 나눈 크래프톤의 주당 가치는 67만7539원입니다. 여기에 32.4%~17.8%의 할인율을 적용해 나온 것이 희망 공모가격 밴드인 45만8000원 ~ 55만7000원입니다.
인수증권사들이 예상한 것처럼 크래프톤이 올해 7760억원의 순이익을 낸다고 칩시다. 여기에 월트 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을 제외한 게임사만의 평균 PER 37.8배를 곱하면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는 29조3328억원이 됩니다. 두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비교군에 들어가면서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를 5조원 이상 올려 놓았네요.
만약 비교기업이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두 곳이고, 두 기업에 대한 증권사들의 올해 연간 순이익을 기준으로 한 PER값을 적용한다면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는 얼마가 나올까요. 엔씨소프트의 24.23배와 넷마블의 33.81배의 중간값은 29.02배가 됩니다. 이 값을 인수증권사들이 계산한 올해 순이익에 곱하면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는 22조6592억원이 됩니다. 엔씨소프트보다는 약 4조원 많고 넷마블보다는 두 배가 됩니다.
크래프톤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1분기에 연간 순이익의 절반을 올리게 된다면 PER에 의한 기업가치는 크게 낮아집니다. 1분기 순이익의 두 배는 3938억원이고, 여기에 45.2배를 곱하면 17조7998억원, 37.8배를 곱하면 14조9250억원, 29.02배를 곱하면 11조4280억원이 됩니다.
이 기업가치를 공모 후 잠재주식 수로 나눈 크래프톤의 주당 가치는 각각 34만3849원, 28만8316원, 22만763원이 됩니다. 인수증권사들이 추정한 67만7539원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네요.
이 가격들을 기준으로 32.4%에서 17.8%의 할인율을 적용해 희망 공모가격 밴드를 정했다면 각각 23만2442원~28만2644원, 19만4902원~23만6996원, 14만9236원~18만1467원이 됩니다.
어떤 값들이 크래프톤의 적정 기업가치에 가까울까요? 각자 마음에 드는 숫자를 골라 잡으시죠.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가치는 다 다른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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