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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개(IPO) 시장에서 기업가치 평가는 거의 예외 없이 비교가치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비교 지표로는 PER이나 EV/EBITDA가 주로 쓰입니다. 그런데 상장 초기 초강세를 보이다가도 이내 하락해 상장일 시초가는 고사하고 공모가 아래에서 잠수를 타는 종목들이 허다합니다. 일부 기업은 나중에 기업가치를 스스로 입증해 하락을 딛고 다시 상승하기도 하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그렇지 못한 기업들도 많습니다.


이런 혼란은 적정한 가치에 대해 시장의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IPO시장의 한계도 있고, 치고 빠지는 투기적 성향의 투자도 한몫 하지만, 가능한 높은 밸류를 인정받고자 하는 기존 주주와 주관증권사들의 욕심 또한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미래현금흐름의 현재가치 할인법(DCF) 같은 절대가치법의 경우 각종 추정에서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약점이 지적되는데, 비교가치법 또한 곳곳에 주관의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중 첫째가 비교대상 기업의 선정이죠.


비교대상 기업의 선정은 주로 (1)사업의 유사성 (2)재무의 유사성을 갖춘 곳 중에서 이루어집니다. 재무의 유사성이라고 하면, 자산의 형성 원천인 부채와 자본의 비율, 즉 재무구조가 비슷한 곳을 찾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크래프톤만 보아도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3조원) 이상인 기업을 재무 유사성의 기준으로 삼았더군요.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긴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사업포트폴리오가 닮은 곳이어야 한다는 건데요. 크래프톤의 공모가가 거품 논란에 휩싸인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배틀그라운드> IP를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한다는 이유로 월트 디즈니나 워너 뮤직 그룹을 비교기업에 포함시킨 것이 합당하냐는 지적을 받은 것이죠.



결국 크래프톤은 공모가를 정정한 증권신고서를 다시 제출했습니다. 정정 전 35조원으로 평가했던 기업가치는 29조원으로 낮추었고, 주당 평가액은 68만원에서 58만원으로 10만원을 깎았습니다.


여기에 30.9%~14.0%의 할인율을 적용해 공모가 밴드를 40만원~49만8000원으로 조정했습니다. 기존에는 45만8000원~55만7000원이었으니 상단과 하단이 각각 5만9000원과 5만8000원 내려온 것입니다.



공모가 조정은 금융감독원이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에 따른 것인데요. 금융감독원은 크래프톤의 공모가 산정의 근거가 부실해 투자자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 모양입니다. 결국 크래프톤은 몇 가지 근거들을 교체하거나 조정해 공모가를 낮춤으로써 한발 물러날 수 밖에 없었죠.


가장 크게 바꾼 건 비교기업을 국내외 게임개발 및 퍼블리싱 회사와 엔터테인먼트회사에서 국내 게임 개발 및 퍼블리싱 회사로 제한했다는 것입니다. 월트 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 등 글로벌 톱 엔터테인먼트회사와 NetEase 등 해외 게임개발사들이 제외되고 엔씨소프트,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 4개사가 최종 비교회사로 선정되었습니다. 카카오게임즈와 펄어비스는 정정 전에는 시가총액 5조원 이상이라는 재무적 유사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비교기업에서 제외되었다가 기준을 3조원 이상으로 낮추면서 추가되었습니다.


비교기업에서 뽑아내려고 하는 건 평균 PER인데요. 단지 비교기업만 교체했으면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는 하향 조정되지 않았을 겁니다. 크래프톤은 당초 비교기업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을 연환산(단순 4배)해서 평균 PER 45.2배를 도출했는데, 국내 4개사의 같은 기준 평균 PER은 47.2배로 오히려 높게 나오거든요. PER 88배인 월트 디즈니가 빠졌지만 그로 인한 손해는 없었습니다.


크래프톤의 공모가를 낮춘 결정적인 변화는2020년 온기 순이익과 올해 1분기 연환산 순이익의 평균치를 PER 산정의 기준으로 삼은 것에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크래프톤의 경우 1분기 순이익이 연간 순이익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계절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농후한데, 그런 1분기를 기준으로 하면 크래프톤의 연환산 순이익이 과대평가될 위험이 매우 높잖아요. 이런 지적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 온기의 실적과 PER를 반영하면서 크래프톤에 적용할 지배주주 순이익은 7761억원에서 6662억원으로 줄었고, 평균 PER은 45.2배에서 43.8배로 하락합니다. 순이익과 PER 모두 2020년 온기와 올해 1분기 값의 산술평균으로 채택한 것이죠.


크래프톤의 공모가 조정을 보는 솔직한 심정은 '꽤 성의를 보였구나'라는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선을 찾았구나 하는 것입니다. 적정한 조정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평균 PER의 산출 과정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비교기업의 기준시가총액은 최근 1개월 간의 주가로 구한 것인데, 이걸 지난해 순이익과 비교해 PER을 구하는 것도 난센스이고, 올해 1분기 순이익을 정정 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4배한 값을 연환산 순이익으로 여전히 사용한 것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납득이 되지 않는 두 개의 값을 버무려 놓은 것에 불과하죠. 여전히 자의적입니다.


PER이 비교기업 중 가장 높은 카카오게임즈의 포함도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카카오게임즈가 게임 개발 및 퍼블리싱 회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퍼블리싱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이지 게임 개발의 성과는 없거든요. 카카오게임즈를 넣을 바에는 재무 유사성 기준을 시가총액 1조원 이상으로 낮추어 컴투스, NHN, 더블유게임즈 등이 비교기업에 포함되도록 하는 것이 되레 더 받아들일 만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고작 1조원짜리들과 비교되기는 싫었던 모양이고, 그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니 더 이상 시비를 걸지는 않겠습니다.


지금의 주가와 지난해 이익으로 PER을 구하고, 분기 집중도가 높은 순이익을 연환산하는 무리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증권사들이 내놓은 올해 예상 PER를 쓰는 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을까요. 최소한 자의적이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것 같은데 말이죠. 증권사들의 컨센서스가 우리 시장의 밸류에이션 눈높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 않나 싶습니다.



4개 비교기업의 최근 주가를 올해 예상 순이익으로 나눈 PER의 평균은 약 34.8배입니다. 정정 후 비교기업의 평균 PER 43.8배보다 9배 낮은 수준입니다. 이 값을 썼으면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는 더 낮아졌겠군요.


다만 이 값을 쓰려면, 크래프톤의 올해 순이익을 예상해야 합니다. 여기에도 여러 가정과 추정이 들어가니 주관이 개입될 여지는 있습니다만, 회사의 내부 자료와 경영환경 등을 반영하면 어느 정도 합리적인 예상치를 뽑아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증권사들 하는 일이 그거잖아요.


만약 그 값이 정전 전 신고서에서처럼 올해 1분기 순이익을 연환산한 7761억원 수준이라면,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는 27조원 수준으로 나옵니다. 정정 후 신고서에서처럼 6662억원 정도라면 23조원 초반대가 나옵니다. 주당 평가액은 각각 약 53만7000원과 약 46만원이 되고요. 30.9%에서 14.0%의 할인율을 적용해 공모가 밴드를 정하면 37만원~46만원, 32만원~40만원 정도가 됩니다.


이 정도면 적정한 수준이냐고요?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비교가치법을 쓰더라도 크래프톤의 이익을 얼마로 예상하느냐에 따라 값이 크게 달라질 수 있고요. 애초에 비교가치법으로 어떤 기업의 적정가치에 접근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크래프톤의 사업경쟁력에 따라 비교기업에 비해 가산할 점이 있고 차감할 위험 요인들이 있을 텐데, 비교기업의 평균을 적용해서 과연 적정 값에 가까울까요.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접근법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할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