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신규 상장기업의 기업가치에 대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법(DCF)으로 절대가치를 평가하든, 비교기업의 PER이나 EV/EBITDA를 이용해 상대가치법으로 평가를 하든 공모자금의 투입에 따른 기업가치 증대 효과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크래프톤과 인수 증권사들은 지난해 온기 순이익과 올해 1분기 순이익에 피어그룹(Peer Group) 평균 PER를 각각 곱해, 그 산술 평균으로 기업가치를 산출했습니다. 지난해 순이익이과 올해 1분기 순이익은 기업공개로 인한 공모자금의 유입이 이루어지기 전의 영업성과입니다.


PER에는 영업성과의 향후 성장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래프톤의 순이익에 곱해진 피어그룹 PER 43.8배는 엔씨소프트,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 등 비교기업 4곳의 이익 성장성의 기대값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값이 적정한지 아닌지를 떠나, 증권신고서에 나온 29조원의 크래프톤 기업가치는 현재 크래프톤의 이익이 피어그룹의 평균과 같은 추세로 성장하는 것을 전제로 평가된 것입니다.


만약 크래프톤이 기업공개를 하면서 신주발행은 전혀 하지 않고 구주매출만 한다면 주당 평가가액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562만 여주의 신주발행을 감안한 주당 평가액이 약 58만원이니, 신주 발행을 하지 않는다면 약 65만원이 됩니다.



크래프톤의 조정된 공모가 40만원~49만8000원은 발행 신주를 포함한 주당 평가가액 58만원을 기준으로 정해진 값입니다. 지금까지 크래프톤의 주주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기존의 주주들이 일군 성과인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를 동등하게 나누어 갖게 되는 겁니다. 공모가를 이렇게 결정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상장 전 주당 평가액이 65만원인 주식을 갖고 있는 기존 주주들은 상장으로 인해 주당 7만원씩 가치를 손해보는 격입니다. 주당 65만원짜리 회사의 주주가 되고 싶으면 주당 65만원씩 내고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물론 모집에 성공하기 위해 할인을 해 줄 수 있지만, 할인의 기준은 58만원이 아니고 65만원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령 부채가 1조원이고, 자본의 시가총액이 1조원인 기업이 있다고 치면 이 기업의 가치는 2조원이 됩니다. 이제 신주발행을 1000억원어치 하게 되면 현금 1000억원이 유입되고 기업가치는 2조1000억원이 되고, 자본의 가치는 즉각적으로 1000억원어치 늘어나게 됩니다. 그럼 주당 가치는 1조1000억원을 주식 수로 나눈 값이 되어야 합니다.


크래프톤 뿐 아니라 다른 상장사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슈입니다만, 공모 후 주당 평가액은 기존의 이익창출력을 반영한 시가총액이 아니라, 신주발행으로 신규 자금이 유입된 후의 이익창출력을 반영한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산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신규 자금이 유입된다고 해서 크래프톤의 주당 이익창출력이 유지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투입에 비례해 기업가치가 커진다면, 계속해서 투입을 늘리는 게 답이겠지요. 그런 보장이 없으니 신주의 발행가액은 할인이 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기준은 58만원이 아니라 65만원이 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기업이 신주를 발행해 자본을 늘린다면, 그 신규 자본이 추가로 이익 창출에 기여를 해야만 주당 기업가치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유입된 자금이 현금의 형태로만 있다면, 딱 투입된 만큼만 기업가치가 늘어나고 그만일 것입니다. 상장으로 크래프톤에 유입되는 자금이 최소 2조2500억원(확정 공모가 40만원의 경우)이 되는데, 이 돈을 어디에 쓰는지가 무척 중요합니다,



크래프톤은 대부분 모집자금을 M&A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2조2500억원 중 1조6187억원을 향후 3년 도안 크고 작은 M&A와 지분투자에 쓰겠다고 공시했습니다. 공모가가 높아지면 M&A 자금도 그만큼 늘어날 것입니다.


게임산업도 이제는 독자적인 개발능력만 갖고 승부하던 시대는 지난 모양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익의 주요 원천인 메가 IP를 확보, 다른 미디어 콘텐츠와의 융합, 규모의 경제 시현 등이 인수합병의 목적일 것입니다. 메가 IP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에는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 5년간 10억달러 이상 거래 10건 중 7건이 지난해 이후 이루어졌을 정도로 게임산업에서 M&A의 규모가 대형화되고 있습니다.


크래프톤은 최소 1조6000억원에 이르는 M&A 자금 중 절반 이상을 올해 집행할 계획입니다. 국내외 게임 시장에서 크래프톤發 M&A가 다수 출현할 모양입니다. 타깃은 역량 있는 게임 개발사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기업이 될 것 같습니다. <배틀그라운드>의 뒤를 잇는 흥행게임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개발회사를 거느려야 할 것이고, 크래프톤이 지향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되기 위해서는 콘텐츠 기업 인수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국내 시장보다는 글로벌 게임 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경영전략으로 보건데,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스튜디오나 콘텐츠 기업도 인수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크래프톤은 인수합병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8년 펍지랩스(전 이노스파크), 펍지웍스(전 너드게임즈), 딜루젼스튜디오 등을 인수했고 올해 들어서도 드림모션을 추가로 인수했죠. 최초의 흥행게임인 테라는 블루홀에서, 배틀그라운드는 펍지에서 각각 개발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M&A가 늘 성공적인 건 아닙니다. 유망해 보이는 스튜디오를 인수하더라도 흥행 게임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형 게임을 개발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게 마련인데, M&A에 큰 돈을 써 놓고 이렇다 할 게임이 나오지 않는다면 크래프톤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어떻게 보면 상장 후 크래프톤의 기업가치가 한 단계 레벨 업 하느냐, 아니면 오히려 뒷걸음질 치느냐는 공모로 확보한 M&A자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