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KH그룹의 알펜시아리조트 인수에 대해 가장 큰 논란 중의 하나는 KH그룹이 과연 7100억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KH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경영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논란이죠.


KH필룩스를 위시해 KH일렉트론(구 삼본전자), KH E&T(구 이엑스티), 장원테크, 아이에이치큐 등 상장 계열사 5곳이 보유한 현금성자산(현금과 금융상품)의 합계는 3월말 현재 881억원에 그치고 있고, 5개 계열사 중 지난해 영업으로 현금흐름을 창출한 곳은 KH필룩스(67억원)와 아이에이치큐(401억원) 뿐이고, 규모가 크지도 않습니다. 5개 계열사 모두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고, 대부분 2년 또는 3년 연속 적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KH그룹 자체의 보유 현금으로 7100억원에 이르는 알펜시아리조트 인수대금을 지불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KH 계열사들의 신용으로 거액을 선뜻 제공할 금융기관은 없을 겁니다.


KH그룹이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전환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를 통해 일정 수준의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KH그룹의 전환사채는 거의 사모방식으로 발행되는데 회차당 100억원 이하가 대부분이고 이례적으로 대규모 발행을 해도 최대 500억원을 넘지 못합니다. 모든 계열사가 동시에 500억원 이상의 발행을 한다고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아주 무리를 해서 그렇게 한다고 해도 2500억원에 그치죠.



게다가 하이얏트호텔과 아이에이치큐 인수를 하느라 이미 과할 정도로 많은 전환사채가 발행되었습니다. 아이에이치큐는 KH그룹에 편입되면서 올해만 이미 5차레에 거쳐 650억원어치를 발행했고, 지난해 뜸했던 KH필룩스도 올 들어 3차례 발행을 잇따라 했습니다. 게다가 하이얏트호텔 지분 추가 인수 등을 위해 1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유상증자까지 한 마당이라 그 이상의 자금 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에 나설 처지가 못됩니다. 투자자들이 납득할 만한 명분과 조건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말이죠.


KH E&T는 아이에이치큐 인수의 주포(?) 역할을 하느라 미상환 전환사채가 650억원이나 쌓여 자기자본에 비해 너무 많은 상황입니다. 현재 전환가액을 기준으로 전환가능 주식 수가 발행주식의 50%를 넘습니다. KH일렉트론 역시 전환가능 주식 수가 발행 주식의 36.4%에 달해 미상환 전환사채의 부담이 큰 상황이고, 장원테크는 올해 전환사채 발행이 1차례 뿐이지만 최근 7회차 50억원의 전환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미상환 전환사채가 500억원에 육박합니다.


KH그룹이 미상환 전환사채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만기전 취득으로 조기 상환을 하거나 주가가 전환가격 이상으로 상승해 주식으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죠. 장원테크나 KH E&T는 특히 그 필요성이 큽니다. (흠… 최근 이 두 기업의 주가가 들썩이던데…)


KH그룹이 알펜시아리조트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거의 전 계열사를 동원할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7100억원을 다 채우기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다른 수단이 더 필요한데요. 가장 먼저 생각하 수 있는 게 자산 매각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딱히 이렇다할 매각가능 자산을 찾기 어렵더라고요.



그러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가 있더군요. 바로 남산 하이얏트호텔 주변의 부지가 매물로 나왔다는 보도입니다. 하이얏트호텔을 둘러싼 약 2649평(8757제곱미터)에 달하는 이 부지는 한남동의 마지막 알짜 땅으로 통하는 곳이라죠. 총 8필지로 이루어진 이 부지는 한강 조망권이 가능해 최고급 단독주택 단지 개발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당한 웃돈을 받고 건설사에 매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죠. 보도에 따르면 하이얏트호텔의 소유자인 서울 미라마(유)는 지난 4월8일 이사회를 열어 이 부지의 매각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하이얏트호텔은 서울 미라마(유)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서울 미라마(유)의 최대 주주는 KH그룹이 최대 지분을 보유한 인마크제1호 PEF입니다. KH그룹은 인마크 제1호 PEF의 LP(유한책임투자자)이고 GP(무한책임투자자)가 따로 있어, KH그룹이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솔직히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하이얏트호텔의 실질적인 주인은 KH그룹인 걸요.


하이얏트호텔 주변 부지 매각을 결정한 것은 KH그룹이 알펜시아리조트 입찰에 나서기 전입니다. 알펜시아리조트 인수를 위해 사전에 매각을 결정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호텔 영업에 어려움이 커지자 서울 미라마(유) 이사회가 매각을 결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알펜시아리조트 인수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입찰에 나서기 전일 것이고, 거액의 인수자금 조달 방법을 미리 구상했을 것이 틀림 없으니, 하이얏트호텔 주변 부지 매각이 알펜시아리조트 인수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알펜시아리조트 인수 참여와 관련이 깊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싶습니다.


이 부지가 시가로 얼마나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 해당하는 이 부지이 공시지가는 2020년 기준으로 2182만원에 달합니다. 인근 지역에서 상업용 건물과 부지가 지난해 평당 5000만원에 육박하는 거래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시가는 훨씬 더 높을 것 같습니다. 평당 3000만원 잡으면 대략 600억원 내외를 받을 수 있겠군요.


하이얏트호텔 주변 부지를 매각해 알펜시아리조트 인수자금에 보탠다고 해도 여전히 크게 모자랍니다. 5개 상장 계열사가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에 나선다고 해도 상당한 무리를 하지 않는 한 1000억원을 크게 웃돌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하이얏트호텔 주변 부지 매각자금을 더해도 2000억원을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KH그룹에게는 나머지 부족한 자금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엄청난 담보 자산이 있습니다. 바로 인수 대상인 알펜시아리조트 그 자체입니다. 물론 아직 인수하지도 않은 알펜시아리조트를 대놓고 금융기관에 담보로 주고 차입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죠. 바로 알펜시아리조트 만큼은 아니지만, 총 6000억원 가량이 들어간 하이얏트호텔 인수의 구조를 다시 한번 사용하면, KH그룹의 자체 자금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알펜시아리조트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KH그룹은 KH필룩스와 KH일렉트론, KH E&T, 장원테크 등 4사가 1080억원을 조성하고, 홍콩과 호주의 PE를 LP로 동원해 우선주로 984억원을 투자하도록 해 총 2064억원 규모의 인마크 제1호 PEF를 만들었습니다. 인마크 제1호 PEF는 SPC를 설립한 뒤에 SPC로 하여금 하나금융투자 등 대주단에게 4400억원을 차입하도록 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6465억원으로 하이얏트호텔 지분을 보유한 서울 미라마(유)를 5500억원에 인수합니다.


대주단은 무엇을 믿고 4400억원을 빌려 주었을까요? 당연히 하이얏트호텔의 담보가치겠지요. 인수금융의 차입자인 SPC는 서울 미라마(유)와 합병을 했죠. 결국 4400억원을 상환해야 하는 건 하이얏트호텔이 된 겁니다.


홍콩PE와 호주PE가 출자한 우선주 984억원은 KH그룹의 차입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KH그룹이 꼬박꼬박 이자를 쳐서 우선주를 사오기로 약속을 했으니까요. 하이얏트호텔 인수자금 중 KH그룹이 제공한 108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빚이었던 거지요.


알펜시아리조트를 매각한 강원도개발공사가 반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KH그룹이 하이얏트호텔 인수에서 써먹었던 구조를 다시 한번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알펜시아리조트의 인수 주체인 KH강원개발㈜가 유상증자를 해 2000억원~3000억원을 조달할 수 있다면, 나머지 자금은 국내 금융기관으로 대주단을 꾸려 차입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2000억원~3000억원의 자본을 모두 KH그룹에서 부담할 필요도 없죠. 경영권을 행사할 지분 외에는 외부의 재무적 투자자(FI)를 확보하면 됩니다. 하이얏트호텔 인수에 홍콩과 호주의 PE를 동원했던 것처럼요.


대주단에게 나머지 자금을 차입하면서는 KH강원개발의 지분을 담보로 맡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충분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다른 자산들을 일시적으로 담보로 제공했다가 알펜시아리조트를 인수하고 나서 그 부동산으로 담보를 대체할 수는 있겠죠. 알펜시아리조트의 시설과 부지를 담보로 제공하기가 어렵다면,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나오는 수익을 담보로 줄 수도 있을 테고요.


이런 방식의 인수 구조가 실제로 용인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알펜시아리조트를 실질적인 담보로 사용해 인수자금을 마련하려고 한다면, 매각주체인 강원도개발공사가 동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러나 강원도개발공사가 엄격하지 않다면, 감정가액 1조원에 달한다는 알펜시아리조트를 대놓고 담보로 쓰지 않아도, 실질적으로 자금조달에 활용하는 인수 구조를 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