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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SK그룹에서 조 단위의 빅 딜(Big Deal)이 줄줄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의 주요 참여자들인 증권사 회계법인 법무법인 그리고 사모펀드들에게 굵직굵직한 먹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죠. 주인공으로 등장한 첫 번째 주자는 SK이노베이션입니다. 배터리 부문의 물적분할, SK루브르컨츠의 소수 지분 매각, SK아이이테크놀로지(이하 SKIET)의 기업공개 추진 등은 모두 SK이노베이션 연결법인에서 추진하는 거래입니다.
SK그룹의 지배구조에는 다른 그룹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100% 또는 그에 근접하는 지분을 계열 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사가 특별히 많습니다. 계열사의 경영권을 확실히 틀어쥐고 있는 측면 외에 일부 지분의 매각이나 기업공개를 통해 대규모 자금조달이 가능한 특징을 갖고 있죠.
일상적이 자금의 필요나 특정한 한 기업의 투자를 위해서라면, 기업 차원의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등이 자금조달의 우선적인 옵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룹 차원의 체질 개선이나 신사업 추진 등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라면, 일부 계열사의 지분 매각이나 기업공개도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SK그룹은 외부에 손을 벌리지 않고도 대규모 자금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최근 행보를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최근 배터리부문의 물적분할이나 SK루브리컨츠 지분의 매각, SKIET의 기업공개로 최소한 수 조원의 현금이 SK이노베이션에 유입될 것이고, SK이노베이션은 풍부한 유동성을 활용해 재무구조의 획기적인 개선이나 차세대 먹거리 확보를 위한 신사업 투자 등에 나설 수 있을 테니까요.
SK이노베이션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SK그룹의 상장 국내 계열사는 올해 기업공개한 SK바이오사이언스를 포함해 19개가 있는데 국내 비상장사 계열사는 무려 125개사에 달합니다. 아, SK디스커버리의 자회사인 SK플라즈마도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죠.
최상위 지배회사인 ㈜SK아래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을 비롯, SK E&S, SKC, SK네트웍스, SK바이오팜, SK건설,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등의 자회사가 있는데, 이 자회사들이 대부분 향후 상장 가능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SK텔레콤 아래에는 삼성전자에 이어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 온라인 상거래업체인 11번가, 보안업체 ADT캡스 등 많은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가 포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SK텔레콤이 물적분할을 통해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는 건 그 때문이죠.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한번 다룰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 외에도 SK그룹에는 언제든지 기업공개나 지분 매각의 후보가 될 수 있는 계열사가 많습니다. 상장 계열사는 19개사인데 비상장 계열사는 106개(2020년말 기준)나 되죠. 증권사나 사모펀드 등 자본시장의 플레이어들이 SK그룹에 눈독을 들일 수 밖에 없죠. 지난해 SK바이오팜의 상장, 올해 3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상장 등으로 자문사들이 넉넉한 수익을 챙겼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잖아요.
우선 2021년 자본시장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SK이노베이션의 최근 행보를 되짚어 보죠. 그룹의 지배구조를 SK이노베이션 중심으로 보면 위 그림과 같습니다. SK(주)가 SK이노베이션의 33.4%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고, SK이노베이션 아래에는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인천석유화학, SK루브리컨츠, SKIET 등 5개 계열사가 있는데 3월말 현재 지분율이 90% 내지는 100%였습니다. 그때까지는 당연히 모두 비상장사였고, 5개사 자산 합계가 26조원에 달합니다.
이중 배터리 분리막 자회사인 SKIET가 지난 5월초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약 2조2000억원을 모집했고,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구주 매출로 약 1조3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죠. SKIET가 신주 발행으로 조달한 돈은 8900억원인데, 향후 M&A에 쓰겠다고 했습니다. SKIET는 2019년 4월1일 SK이노베이션의 소재사업 부문을 분할해 설립된 회사입니다. 분할 후 2년 만에 상장해 지분 일부를 현금화한 것이죠.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SKIET의 지분 장부가액이 3월말 현재 7759억원이었습니다. 상장 전90%의 지분 중 약 23%를 구주 매출해 1조3000억원을 챙겼고요. 구주 매출로 처분한 지분의 장부가액은 고작 1770억원 정도입니다. 매각차익이 어머어마하죠. 마음만 먹었으면 훨씬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공정거래법이 내년부터 강화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장 자회사의 지분율을 30%이상만 보유하면 되는데, 그에 해당하는 주식 수가 2138만주 정도 됩니다. 현재 4363만주를 보유 중이니 2200만주 정도를 더 팔 수 있었던 셈이죠. 공모가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전제로 2조원 가량을 더 현금화할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당장은 현금보다 확실한 경영권을 선택한 모양인데,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추가 지분 매각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
SKIET의 상장과 거의 때를 같이 해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SK루브리컨츠의 프리IPO가 성사됩니다. 프리IPO는 상장을 준비하기 전에 일부 지분을 유동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머지 않아 SK루브리컨츠도 기업공개 시장에 등장할 것을 예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SK루브리컨츠의 지분 40%를 1조1000억원에 사모펀드 운용사인 IMM크레딧솔루션에 매각했습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외한 지분 100%의 가치를 2조7500억원으로 책정했다는 것인데, 예상 외로 낮은 가격이었죠.
SK루브리컨츠는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지분 매각과 기업공개를 추진해 왔는데, 번번이 실패했었죠. 무려 8년 만에 성사된 거래인데, 과거 IPO에 나섰을 때 SK그룹이 주장한 기업가치가 5조원 정도였습니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 '헐값 매각' 논란이 일기도 했죠.
SK루브리컨츠가 헐값에 팔린 것인지, 제값을 받은 것인지 의견이 갈릴 수 있다고 봅니다. 윤할기유 부문이 매년 2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캐시카우이기는 하지만, 성장성이 있는 사업은 아니거든요. 향후 기업가치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지분을 인수하기는 어렵습니다. 할인 요인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요.
반면 3조원이 채 되지 않는 주식가치는 증권업계가 IPO나 M&A 거래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업가치 추정방법인 EBITDA 멀티플을 적용할 경우 좀 낮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SK루브리컨츠가 지난해 ETITDA가 3000억원대 초반이지만, 코로나19하의 경제상황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고요. 그 전에는 4000억원 안팎의 EBITDA를 창출한 기업입니다. 결국 SK루브리컨츠의 기업가치를 EBITDA의 7배 정도로 봤다는 것인데, 유안타증권의 보고서를 인용하면 SK루브르컨츠에 불황일 경우 9배, 보통일 경우 10배, 호황일 경우 11배의 멀티플을 적용했더라고요. 이 보고서에 따르면 못해도 EBITDA의 9배는 받아야 한다는 것이니, 주식가치가 최소 3조6000억원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정 가격보다 싸게 팔았다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향후 SK루브리컨츠의 기업가치가 더 낮아질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고, SK이노베이션이 현금이 급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순전히 뇌피셜이지만 후자라고 봅니다. 기업공개 전 실시하는 프리IPO에서는 가능하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프리IPO에서 높게 평가를 받아야 진짜 IPO에서 공모가가 높게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헐값 매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프리 IPO를 할 것 같지 않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유동성 확보는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 추진한 페루 광구 지분을 전량을 약 1조원에 매각했고요. SK종합화학을 매각할 것이라는 루머도 돌고 있는데, 그룹에서 부인을 하지 않고 있죠.
어쩌면 정유부문을 포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SK그룹은 국내에서 ESG경영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일환으로 SK에너지가 보유한 주유소를 '그린 플랫폼' 개념으로 전환해 전기와 수소를 생산 및 판매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바 있습니다. 정유부문에는 신규 투자를 중단하기로 했죠. SK에너지는 자산총액 12조원으로 SK이노베이셔 자회사 중 가장 큽니다.
그런데 단지 사업을 전환하는 차원으로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SK에너지는 지난 7월 116개주유소 자산을 약 7640억원에 매각했습니다. 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과 미래 성장동력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랍니다. 주유소 매각은 세일 앤 리스 백(S&LB) 방식이어서 SK에너지가 임차해 계속 사용하게 되지만, 임차 기간이 종료된 후에 재매입하거나 연장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자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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