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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 분할과 SK루브리컨츠 소수지분 매각, SK텔레콤의 반도체 및 뉴ICT부문 분할에 이어 이달에 세 번째로 나온 카드가 SK㈜의 SK머티리얼즈 합병입니다. 공시도 보도도 합병으로 나왔지만, 엄밀히 말해 합병은 아닙니다. SK머티리얼즈의 사업부문을 물적분할로 빼내고 지주사업 부문만 남은 본체를 합병합니다.


SK머티리얼즈의 정체성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전문 소재기업인데, 핵심 사업을 분할한 뒤에 SK머티리얼즈가 갖고 있던 자잘한(?) 여러 자회사 지분을 SK㈜가 가져가는 것이죠. 그런데, 물적분할된 사업회사는 지주사업 부문이 남은 본체의 100% 자회사가 되고, 그 본체를 SK(주)가 합병하게 되니, 결국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기업인 SK머티리얼즈는 SK㈜의 100% 자회사가 됩니다.



SK머티리얼즈는 코스닥 상장사로 SK㈜가 49.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50.9%를 일반 주주들이 소유한 회사죠. 물적분할과 합병으로 SK㈜의 100% 자회사가 된 신설법인(이 회사가 SK머티리얼즈의 상호를 사용하게 됨)은 당연히 비상장사가 됩니다. SK머티리얼즈가 영위하는 소재사업은 미래 성장 전망이 매우 밝다고 하는데, 앞으로 그 성장의 열매를 SK㈜가 독식하게 되는 셈이죠. 물론 기존 SK머티리얼즈 주주들은 합병의 대가로 SK㈜의 주식을 받게 되니, 간접적으로 SK머티리얼즈의 성장 효과를 누리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SK머티리얼즈 주식을 직접 갖고 있는 것 만은 못하겠죠.


SK머티리얼즈의 분할과 합병은 SK그룹의 최근 행보와 결이 다릅니다. 그 동안은 사업분할과 분할 후 기업공개가 SK그룹이 보여준 대부분의 거래였습니다. 분할과 기업공개로 기업가치를 높이고, IPO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왔죠.


SK루브리컨츠의 소수지분 매각도 향후 상장을 염두에 둔 것이고, SK텔레콤에서 반도체와 뉴ICT 회사의 지분들을 묶어 중간지주회사로 SK스퀘어를 분할한 것도, SK하이닉스와 뉴ICT기업을 육성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상장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기껏 상장돼 있는, 기업가치가 한껏 높아지고 있는 SK머티리얼즈를 상장폐지시키려고 하는 걸까요? 분할과 합병으로 그룹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면 힌트를 알 수 있을 지 모릅니다.


일부에서는 SK㈜의 시가총액 140조원 달성을 위한 포석의 하나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SK㈜ 장동현 사장은 올해 3월말 투자자 간담회에서 첨단소재, 바이오, 그린, 디지털 등 4대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2025년까지 시가총액 140조원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SK㈜의 시가총액이 9월초 현재 18조5000억원인데, 앞으로 4년 동안 7배 이상으로 키우겠다네요.



아마도 장동현 사장의 이 선언 때문에 배터리사업의 분할, SK텔레콤의 인적분할 등과 함께 SK머티리얼즈의 합병을 140조원으로 가는 수순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있는 모양인데, 지나친 확대 해석입니다. 회사를 나누고, 나눈 회사를 상장해 시총을 키우는 것으로는 기업가치를 단기간에 7배 이상으로 높일 수 없죠.


오히려 140조원 달성의 로드맵을 수행하기 위한 자금조달에 분할과 기업공개의 목적이 있을 겁니다. 첨단소재, 바이오, 그린, 디지털 등 핵심사업을 묶어 140조원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그 투자의 중심에는 당연히 그룹 지주회사인 SK㈜가 있습니다. 대대적인 투자에 필요한 재원 마련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SK㈜는 4대 핵심사업 외 사업을 과감히 접거나, 소수 지분 매각과 기업공개를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설 계획입니다. 여기에 국내외 투자 파트너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것까지 더해 앞으로 5년간 무려 46조원의 투자 재원을 확보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5년 후의 SK그룹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되어 있겠군요.


'시가총액 140조원 구상' 중 첨단소재 부문은 크게 반도체 소재와 배터리 소재 분야로 나뉘는데요. 2025년 상각전 영업이익(EBITDA) 4조3000억원을 만들어 내겠다고 합니다. 반도체 소재에서 2조7000억원, 배터리 소재에서 1조6000억원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SK그룹에서 첨단소재 부문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회사가 SK머티리얼즈와 SKC입니다. SK머티리얼즈는 반도체 소재 쪽이고 SKC는 배터리 소재 쪽이죠. 결국 이 두 회사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투자가 계획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투자의 핵심은 원천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 인수와 생산시설 투자가 되겠죠. SK머티리얼즈와 SKC가 소재산업 M&A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할 것을 예고했다고 해석해도 될까요.



그런데 SK머티리얼즈는 수조원이 훌쩍 넘을 대규모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SK그룹이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한 2016년초 주가는 대략 10만원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40만원이 넘으니 시장에서 인정하는 기업가치가 4배 이상 뛰었죠. 하지만 주가가 오른 것은 향후 전망이 밝기 때문이지, 실제 수익창출능력이 크게 좋아져서는 아닙니다.


SK머티리얼즈의 매출(연결 기준)은 인수 당시에 비해 약 2배 가량으로 증가했지만, 이익이나 현금흐름은 크게 늘지 못했습니다. 1년동안 영업에서 벌어들이는 현금흐름이 여전히 2000억원대에 머물고 있고, 그 정도로는 설비투자와 주주에게 나누어 줄 배당금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성장 전망이 좋은 기업은 투자할 곳도 많은 게 보통이죠. SK머티리얼즈도 그렇습니다. 벌어들이는 돈으로 설비투자를 하는 것도 모자라지만, 소재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분 투자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돈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증자를 하거나 차입을 할 수 밖에 없죠. 결국 매년 차입금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매년 차입이 늘다 보니 재무적으로 불안한 상황입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300%가 넘고, 차입금의존도(차입금/자산총계)가 65%에 달합니다. 차입금 중 1년 이내에 만기도래분이 58%에 달해 만기구조도 매우 나쁩니다.


사실상 지금의 재무구조로는 SK머티리얼즈가 더 이상 대규모 차입을 이어가기 어려워 보입니다. 차입에 의존해 투자를 지속할 상황이 아니죠. 그렇다고 유상증자를 매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대주주인 SK㈜는 논외로 쳐도 50%가 넘는 일반주주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됩니다.


설사 SK머티리얼즈의 재무구조가 좋다고 해도 글로벌 1위 소재기업이 되는데 필요한 막대한 투자를 할 정도의 능력은 없습니다. 대주주이자 그룹의 전문 투자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SK㈜가 나서야 합니다. 4대 핵심 사업이 아닌 사업을 철수 또는 매각하거나, 분할과 상장을 통해 SK㈜가 확보한 자금을 SK머티리얼즈를 앞세운 소재사업에 투자해야 그룹의 사업 구조조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재무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 SK머티리얼즈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