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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내는 기업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본이 증가합니다. 벌어들인 이익을 전부 배당금 지급으로 써버리지 않는 한 남은 이익이 사내 유보되어 이익잉여금으로 쌓이게 되니까요. 흑자를 내고 잉여금이 쌓이는데도 자본이 줄어드는 경우로는 유상감자를 들 수 있습니다. 유상 감자는 주주의 몫인 자본의 일부를 돌려주고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주식을 매입해 소각하는 것이니 당연히 자본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유상 감자가 이익잉여금을 재원으로 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줄었던 자본은 다시 복구됩니다. 회사가 벌어들이는 이익이 다시 잉여금으로 쌓이게 될 테니까요.
손익계산서 상 흑자 기업의 자본을 줄이는 다른 요인으로 기타포괄손실이 있습니다. 기타포괄손실은 일종의 미실현 손실인데 손익계산서의 당기순이익에 반영되지 않고, 재무상태표의 자본을 직접 차감합니다. 당기순이익보다 기타포괄손실이 더 크다면 그해 자본이 줄어들게 되죠.
SK머티리얼즈는 매년 흑자를 냈으면서도 자본이 줄어든 매우 이례적인 회사입니다. 매우 이례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본 감소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SK그룹에 인수된 후 지속적으로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SK머티리얼즈는 2016년부터 5년간 총 3786억원의 순이익을 냈습니다. 같은 기간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은 총 1721억원이고요. 이익잉여금이 2008억원 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자본은 지난해말 2971억원으로, SK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2015년말에 비해 895억원 줄었습니다. 자기자본은 SK그룹에 인수된 해인 2016년말 4512억원에서 지속적으로 줄어 왔습니다.
매년 잉여금이 늘어나는 자기자본이 오히려 줄었다면, 증가한 잉여금보다 더 많은 누수가 발생했다는 얘기죠. 그런데 SK머티리얼즈는 유상감자를 한 적이 한 번도 없고 대규모의 기타포괄손실이 발생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소액이지만 기타포괄이익을 갖고 있습니다.
SK머티리얼즈의 자기자본을 감소시킨 주범(?)은 다름 아닌 자기주식입니다. SK머티리얼즈는 주가 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2년에 한번씩 주식시장에서 자기주식을 매입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큽니다.
인수 첫 해인 2016년 12월부터 약 2개월간 53만주를 주당 18만1441원에 사들였고, 2018년 6월부터 약 1개월 반 동안 또 53만주를 주당 17만6593원에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난해7월 역시 53만주를 주당 24만2739원에 자기주식 매입에 나섭니다. 격년을 주기로 매번 같은 물량의 자기주식을 반복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겁니다.

현재 SK머티리얼즈가 보유한 자기주식은 159만주로 지분율 15.07%에 달합니다. 취득에 총 3184억원이 들었죠. 자기주식 매입은 주주에게 출자자본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사들인 주식을 소각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유상 감자와 같습니다. 자기주식을 매입한 만큼 자본이 줄게 됩니다.
자기주식 매입의 목적이 주가안정이라는 회사측의 주장에는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2016년이나 2018년 자기주식 매입 전 SK머티리얼즈의 주가는 상승추세에 있었고, 심지어 2020년 7월 당시에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 중이었습니다. 주가 안정이 목적이 아니라, 오르는 주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게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SK머티리얼즈가 돈이 남아 돌아서 자기주식을 매입한 게 아닙니다. 인수 이후 이익은 줄고 있었고 현금흐름은 매년 쪼들렸습니다. 있든 돈 없는 돈 박박 긁어서 자기주식 매입에 썼습니다. 그런 회사, 본 적 있나요?

SK머티리얼즈가 SK그룹에 인수된 후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현금흐름은 약 6600억원 정도 됩니다. 같은 기간에 자본적 지출과 종속기업 및 관계기업 투자, 배당금과 자기주식으로 나간 돈이 1조2524억원입니다. 벌어들인 현금흐름을 다 쓰고도 6000억원 가량이 모자라죠.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어떻게 되죠? 가진 현금을 소진하게 되고 그러고도 부족하면 외부에서 조달해야 합니다.
외부 조달 방법에는 유상증자와 차입이 있습니다. SK머티리얼즈는 인수 초기만 해도 300억~400억원을 현금으로 보유했지만, 2018년 이후에는 10억~30억원에 그칩니다. 유동성 관리를 아주 타이트하게 하고 있죠.

외부조달 방법으로는 차입을 선택했습니다. 하긴…… 배당금 지급과 자기주식 매입에 필요한 재원을 유상증자로 마련하는 건 모양이 이상합니다. 주주의 주머니에서 나와서 주주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꼴이잖아요.
SK머티리얼즈는 매년 차입금을 늘려 왔습니다. 자기주식 매입이 있었던 기간에는 차입금이 더 늘었습니다. 그렇게 5년간 늘어난 차입금이 6000억원에 달합니다. 현금흐름 부족 분과 거의 일치합니다. 자기주식 매입을 하지 않았으면 그 절반이면 충분했을 겁니다.

주주에게는 자기주식 매입으로 출자 자본을 돌려주고, 그래서 부족한 자금을 차입금으로 메우는 걸 반복해 왔으니 재무구조가 어떻게 됐겠어요. 자본이 줄고 부채가 늘어나니 부채비율은 상승하고, 차입금이 쌓이니 이자로 나가는 돈이 많아지죠.
SK머티리얼즈의 부채비율은 2016년 63%로 낮은 수준이었으나 올해 6월말 현재 292%에 달합니다. 매년 이자지급액은 2016년 47억원에서 지난해 160억원까지 불어났습니다. 이자 등 금융비용의 증가는 당기순이익을 줄이고, 유동성을 압박하는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SK머티리얼즈는 재무 전반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게 뻔한 자기주식 매입에 왜 그렇게 집착했던 걸까요. 현재 SK머티리얼즈 주가가 40만원을 호가하니 159만주의 자기주식 시장가치는 약 6300억원 정도 됩니다. 매입에 3184억원을 썼으니 투자로 따지면 100% 이상의 수익이 났습니다만, SK머티리얼즈가 투자 대박을 노리고 자기주식을 매입하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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