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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티세미콘은 부분 자본잠식에다 2년 연속 대규모 세전 손실을 기록해 관리종목 지정 우려가 있었던 곳입니다. 과거 2013~2016년에도 4년 연속 세전 손실을 기록하고 감사범위제한에 따른 한정의견을 받아 관리종목에 지정된 적이 있습니다. 부실기업이 분명한데 약 400억원이라는 큰 돈을 조달해 리더스기술투자를 인수했네요.


당연히 회사에는 그 만한 조달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죠. 대주주의 수완으로 가능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에이티세미콘의 실질적인 최대주주는 김형준씨입니다. 보통주로는 최대주주인데, 전환사채 등 주식으로 전환가능한 잠재주식을 포함한 지분율은 3.74%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9.73%를 보유한 더에이치테크(구, 제이앤에이치테크)가 김형준씨의 개인회사입니다.


중소기업인 삼성코퍼레이션이 4.16%를 갖고 있는데, 에이티세미콘 부사장 정윤호씨가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하고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입니다. 정윤호씨는 에이티세미콘의 부사장 외에도 계열사인 에이티에이엠씨와 에이펙셀생명공학의 대표를 겸하고 있고 리더스기술투자와 에이치젠바이오 사내이사에도 올라 있는 등 전 계열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형준씨의 핵심 측근으로 보입니다..



김형준씨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부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에이티세미콘 인수는 대부분 제3자로부터 빌린 차입금을 재원으로 했을 것 같습니다. 더에이치테크는 지난해말 자산이 79억원인데, 60억원이 에이티세미콘 주식입니다. 부채로 차입금이 55억원 있고, 김형준씨가 납입한 자본은 8억1000만원입니다. 그 외 자본으로 매도가능증권 평가이익이 15억원 정도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더에이치테크가 차입금을 조달해 에이티세미콘 주식 등을 45억원에 인수했고, 주가가 올라 15억원 가량의 평가이익이 나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재무제표 주석을 보니 더에이치테크는 지난해말 현재 53억원을 김형준씨에게서 차입을 했더라고요. 김형준씨에게서 빌린 돈으로 에이티세미콘 주식을 산 거죠. 그런데 그 주식 중 400만주를 대표이사 차입금에 대한 담보로 제3자인 임천섭씨에게 제공했더라고요. 김형준씨는 임천섭씨에게 돈을 빌려 더에이치테크에 대여했던 겁니다. 그 규모가 32억원 정도 됩니다.


물론 처음에 김형준씨에게 돈을 빌려준 건 다른 곳일 수 있습니다. 2019년 말에는 에이티세미콘 주식을 삼성증권에 담보로 제공했더군요. 채권자가 삼성증권에서 지난해 임천섭씨로 바뀌었다는 뜻이죠.


정윤호씨 개인회사인 삼성코퍼레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말 현재 자기자본이 마이너스(-) 3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이고, 자산 70억원은 전액 부채(73억원)로 조달한 것입니다. 외부 차입금으로 에이티세미콘 지분을 인수한 겁니다.


김형준씨가 에이티세미콘 지분을 인수한 과정도 비슷합니다. 김형준씨는 2018년 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에이티세미콘 지분을 처음 인수하게 되는데, 7억원의 자기자금과 25억원의 차입금(차입처 Chen,Chin-Tien) 등 32억원이 들었습니다. 에이티세미콘 인수과정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리더스기술투자를 인수할 때는 에이티세미콘을 앞장세웠는데요.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인수자금 전액을 전환사채 발행으로 충당합니다. 13회차~15회차 전환사채 발행자금 합계 140억원으로 계약금 중도금을 치르고, 유진에이티제일차 주식회사를 대상으로 200억원 규모의 16회차 전환사채 발행자금으로 잔금 지급을 완료합니다.


13~15회차 에이티세미콘의 전환사채를 인수한 곳은 더에이치테크(50억원)을 비롯해 케이앤지코퍼레이션(30억원), 티에이치디(40억원), 유니언제이(20억원)인데요. 케이앤지코퍼레이션(김유선 100%)은 지난해 10월 1000만원의 자본으로 설립된 경영컨설팅업체이고, 티에이치디(정명안 100%)는 지난해 8월 설립되었는데, 12억원의 차입금과 8억5500만원의 자본총액으로 구성된 자산 20억원을 보유한 경영컨설팅업체입니다. 유니언제이는 올해 3월3일 임진환씨를 대표이사로 신규 설립된 경영컨설팅업체입니다. 세 회사는 모두 경영컨설팅업체이고 소액의 자본으로 신규 설립업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환사채 인수를 위해 동원된 회사들일 겁니다. 세 회사 모두 전환사채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차입금을 조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 자금의 출처는 오리무중이죠..


미래가 불투명한 부실회사의 전환사채에 흔쾌히 투자한 사람들(또는 회사)은 어떤 판단을 했을까요. 에이티세미콘의 수익창출능력을 믿고 투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에이티세미콘의 리더스기술투자 인수계획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게 돈이 될 거라고 생각했겠죠. 그리고 아마 김형준씨와 에이티세미콘에서 최소한 전환사채의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모종의 약속을 받았을 지도 모르죠.


김형준씨와 더에이치테크도 올해 10월 리더스기술투자 전환사채를 각각 80억원과 120억원어치 인수합니다. MG손해보험 유상증자를 위해 조성된 펀드인 제이씨어슈어런스 제2호 출자자금(2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된 14회차 전환사채를 공동 인수한 겁니다. 김형준과 더에이치테크 모두 자기자금으로 인수한 것이 아니라 부동산개발업체(디벨로퍼) 에스티에스개발과 그 관계회사 베스트에이엠씨에게서 전액 차입해 마련했습니다. 중견 디벨로퍼인 에스티에스개발은 지난해말 현재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이 1000억원 이상 있을 정도로 풍부한 유동성을 갖고 있었네요. 여유자금으로 돈놀이를 하나 봅니다.


에스티에스개발은 지난 2018년 삼부토건 인수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당시 삼부토건 유상증자에 참여해 1대 주주로 올라선 우진의 동맹군이었는데요. 실제 지분율로만 따지면 에스티에스개발이 훨씬 높았습니다. 우진과 에스티에스개발 연합군의 삼부토건 장악은 이들을 기업사냥꾼으로 본 경영진과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경영권분쟁 끝에 실패로 끝났죠.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형준씨는 2015년부터 개인회사 더에이치테크를 앞세워 코스닥 시장의 큰손으로 활약했다고 합니다. 아쉽지만 2016년 에이티세미콘의 최대주주 에이티테크놀로지를 인수한 것 외에 다른 활약상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진짜 활약은 이제부터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상 무자본 M&A로 에이티세미콘을 인수하더니, 관리종목에 들어갈 지도 모를 정도로 부실한 그 회사를 앞세워 다시 또 전액 차입금만으로 리더스기술투자를 인수하고, MG손해보험에까지 손을 뻗치는 수완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주가가 내리면 전환가액이 따라 내리는, 황당한 구조의 전환사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를 수완이죠. 다소 위험해 보이는 김형준씨와 에이티세미콘의 행보가 성공한 투자로 끝날지, 실패한 도박이 될지 사뭇 궁금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