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註] 상장기업(코스피, 코스닥 포함) 중 매출이 매년 30% 이상 급성장하는 기업을 꼽아 봤습니다. 고성장을 질주하던 기업이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헤쳐가고 있는지 알아보는 게 목적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궁금한 것은 이 기업들의 미래 전망이죠. 재무제표로 기업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코로나를 전후한 실적이 기업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면 다가올 위드 코로나 시대에 그 기업이 가게 될 방향을 어렴풋하게는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 3년간 매출이 매년 30% 이상 늘어난 기업으로는 고바이오랩,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카카오페이등 25개사가 있고, 2019년까지 4년 연속 30% 이상 성장하 기업은 샘표, 인스코비, 와이팜 등 12개사가 있습니다. 분석대상기간(2016~2020년) 모두 매출 성장률 30% 이상을 기록한 기업도 있습니다. 뉴트리, 바이오플러스, 프롬바이오, 원티드랩, 클리노믹스, 티앤알바이오팹 등 6개사입니다. 위 기업이 모두 분석대상이 되지는 않으며, 과거 실적을 분석하는 것은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하지만 향후 전망을 점치는 것은 독자의 몫임을 밝힙니다.
와이팜은 2020년 7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습니다. 상장공모는 신주모집 50%, 구주매출 50%의 일반공모 방식을 택했습니다. 공모시장에서 꽤 인기가 높아 주당 공모가액이 희망밴드의 상단인 1만1000원으로 정해졌습니다. 기존 주주는 약 408억원을 회수했고, 회사에는 주관사의 인수수수료 등 상장비용을 빼고 약 398억원의 현금이 유입됐습니다.
2006년에 창업을 해서 14년을 고생한 끝에 이룬 개가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회사 계좌에는 그 동안 만져보지 못했던 목돈이 쌓였으니 포만감이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오랫동안 쪼들려 살던 것에서 벗어나 단박에 더 큰 성장을 이루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고요.
게다가 2019년 회사는 대단한 성과를 이루면서 말 그대로 우뚝 섰습니다. 삼성전자의 메인 공급처가 되면서 매출이 100% 가까이 증가하면서 1000억원대를 가볍게 넘어섰고 처음으로 100억원대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 전 13년 동안 기록한 누적 이익의 두 배였습니다.
사실 2018년까지 회사의 현금사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매출은 매년 늘었지만 현금은 늘 부족했습니다. 영업활동으로 창출하는 현금보다 사용하는 현금이 더 많았습니다. 외부 자금의 수혈이 없이는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2019년의 매출 대박은 상황을 단번에 역전시켰습니다. 영업활동에서 무려 127억원의 현금이 창출된 겁니다. 이듬해 코스닥 상장에 성공하며 400억원에 가까운 뭉칫돈이 들어왔으니 갑자기 현금이 넘쳐났습니다.
최종 소비재를 취급하고 시장 확대 가능성이 높다면 새로운 공장을 짓고 기계를 들여 오는데 투자를 했을 겁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물질을 개발하면 시장을 선점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면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늘렸을 겁니다 그런데 와이팜은 그 둘에 모두 해당되지 않는 곳입니다.
와이팜은 팜리스 기업입니다.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거의 100%에 가까운 곳인데, 제조를 외주에 맡깁니다. 2019년에 매출이 두 배 이상으로 훌쩍 커졌지만 자체 공장 없이 외주로 소화해 냈습니다.
심지어 삼성전자에서 주문이 폭주하던 2019년에 와이팜은 유형자산인 토지와 건물을 투자부동산으로 계정 재분류했습니다. 당분간 설비투자에는 뜻이 없어 보입니다. 매출이 훨씬 더 늘어서 자체 공장을 돌리는 것이 규모의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공장을 짓는 데 투자를 하겠지만, 아직은 외주가 원가관리에 낫다고 판단하는 모양입니다. 애플이나 화웨이 등 외국의 대형 휴대폰 업체가 추가로 고객이 된다면 고려할 지도 모르겠군요.
연구개발비를 크게 늘리지도 않았습니다. 상장 이전이나 이후나 연구개발에 쓰는 돈은 연간 3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매출이 늘면서 인건비가 다소 늘기는 했지만 공장이 없다 보니 판매관리비도 매출에 비례해 늘거나 줄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회사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큰 돈이 들고 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금융자산, 그것도 다른 기업의 지분 상품입니다. 와이팜의 자산총액이 지난해 9월말 현재 1123억원인데, 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이 409억원에 달합니다. 모든 자산을 통틀어 가장 큽니다. 2020년말에는 496억원으로 전체 자산의 거의 절반에 육박했습니다.
상당히 큰 돈이 움직입니다. 지난해 9월까지 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을 매입하는 데 366억원의 현금을 썼고, 매각해 현금 회수한 건 373억원에 달합니다. 특히 실적이 크게 좋아진 2019년부터 투자를 확 늘렸습니다. 지난해에는 현금 회수분이 7억원 정도 더 많은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에는 거의 취득만 했습니다. 순매입액이 275억원에 이릅니다.
영업활동에서 현금흐름을 거의 창출하지 못하다가 2019년에 127억원의 현금이 생깁니다. 그 중 104억원을 금융자산 매입에 사용합니다. 2020년에는 영업활동에서 오히려 69억원의 현금적자가 나는데요. 141억원어치의 금융자산을 사들입니다. 상장공모로 들어온 398억원의 3분의 1 이상을 쓴 셈입니다.
도대체 무얼 그렇게 사고 파는 걸까. 지난해 9월말 현재 가장 많은 게 코스닥 상장사인 테스나 주식입니다. 반도체 후공정 중 웨이퍼 테스트업체인데요.
3.75%의 지분을 138억원에 사들였고 100% 이상의 평가이익이 나서 장부가액이 286억원에 달합니다. 2020년 말에는 360억원이었는데 지난해 주가가 하락하면서 평가이익이 좀 줄었군요.
테스나 외에 비중이 큰 건 41억원에 취득해서 22억원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난 텔레스퀘어라는 회사의 전환상환우선주인데, 여기는 와이팜의 관계기업입니다. 와이팜 유대규 대표가 2017년까지 대표를 지냈습니다. 이 밖에 2020년에는 펄어비스 주식을 갖고 있었는데 지난해 처분하고 코리아서키트 주식으로 갈아탔네요.
눈에 띄는 게 또 하나 있는데 코너스톤상생3호 신기술조합입니다. 창업투자를 주로 하는 신기술금융조합인데, 이것 역시 타법인 주식 등에 투자를 하는 걸 업으로 삼고 있겠죠. 그러고 보니 계열사 중에 펜타스톤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를 지난해 1월 110억원을 출자해 설립했습니다. 유대규 대표이사가 이곳 대표도 겸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대규 대표에게 투자 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상장사 주식을 사고 파는 재테크성 투자도 하고 있고, 투자전문회사와 조합에 출자를 한 걸 보면 M&A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나 봅니다. 아니다 다를까 벌써 여러 곳에 씨를 뿌려 놓았습니다. 관계기업 주식 중 텔레스퀘어 보통주 3억여원을 제외하고 6개 신기술조합에 지분을 심어 놓았습니다.
와이팜은 지난해 테스나 인수를 추진했습니다. 보통주와 의결권 있는 우선주 2,798억원 그리고 신주인수권부 사채 1202억원을 포함해 무려 4,000억원이 들어가는, 와이팜으로서는 초대형 M&A를 시도했죠. 9월 24일 계약을 하고 12월28일 잔금지급과 함께 거래를 종결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초 와이팜이 직접 인수를 하려다가 와이팜에스티씨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인수하는 형태로 바꾸었죠.
이건, 상장공모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요. 인수자금을 대려면 엄청난 자금조달이 뒤따라야 했겠습니다. 하지만 무리였습니다. 와이팜은 잔금 396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인수 포기 선언을 합니다. 계약금 40억원만 날렸습니다.
와이팜은 테스나 인수를 위해 지난해 12월 23일 3자배정 유상증자(우선주)로 725억원, 사모 전환사채로 200억원, 사모 신주인수권부사채로 200억원 등 총 1,125억원을 조달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집했던 투자자 중 일부가 투자 의사를 철회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와이팜이 자금조달에 성공했다면, 인수자금 중 나머지 2,835억원은 인수 주체로 나선 자회사 와이팜에스티씨가 외부 차입으로 마련을 해야 했을 겁니다.
테스나는 자산총액이 지난해 9월말 현재 5,000억원에 육박하고 2020년 매출이 1,325억원인데 지난해에는 9월까지 이미 1440억원을 기록해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입니다. 같은 기간에 26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습니다. 와이팜 보다 규가 훨씬 크고 이익도 많이 나는 회사입니다. 유대규 대표의 배포가 상당하군요.
그런데 와이팜은 테스나 지분 3.75%를 팔거나 인수에 재도전하거나 양단간의 결정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회사의 유동성 사정이 상당히 빠르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2020년 이후로 기업공개와 단기차입으로 470억원을 조달했는데 영업부진으로 296억원이 빠져나갔습니다. 타법인 주식과 장기금융상품을 사는 데 157억원을 썼습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현금이 44억원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관계개선이 이루어져 영업활동에서 현금흐름 창출이 되지 않으면 유상증자나 차입으로 외부자금을 조달하거나 그게 싫으면 자산매각이 불가피합니다. 가장 팔기 쉬운 자산은 역시 테스나 주식으로 보입니다.
테스나는 지난해 9월말 현재 600억원 정도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네요. 유대규 대표가 다시 테스나 인수에 나서서 성공을 하면 유동성 확보는 물론이고 외부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일 것도 같습니다. 그야 말로 막판 뒤집기 한판 같은 거죠. 하지만 실패한다며 와이팜 자체의 유동성 악화가 상당한 악재로 떠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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