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註] 상장기업(코스피, 코스닥 포함) 중 매출이 매년 30% 이상 급성장하는 기업을 꼽아 봤습니다. 고성장을 질주하던 기업이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헤쳐가고 있는지 알아보는 게 목적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궁금한 것은 이 기업들의 미래 전망이죠. 재무제표로 기업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코로나를 전후한 실적이 기업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면 다가올 위드 코로나 시대에 그 기업이 가게 될 방향을 어렴풋하게는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 3년간 매출이 매년 30% 이상 늘어난 기업으로는 고바이오랩,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카카오페이등 25개사가 있고, 2019년까지 4년 연속 30% 이상 성장하 기업은 샘표, 인스코비, 와이팜 등 12개사가 있습니다. 분석대상기간(2016~2020년) 모두 매출 성장률 30% 이상을 기록한 기업도 있습니다. 뉴트리, 바이오플러스, 프롬바이오, 원티드랩, 클리노믹스, 티앤알바이오팹 등 6개사입니다. 위 기업이 모두 분석대상이 되지는 않으며, 과거 실적을 분석하는 것은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하지만 향후 전망을 점치는 것은 독자의 몫임을 밝힙니다.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 전문기업인 에이비엘바이오가 연초부터 잭팟을 터뜨렸죠. 글로벌 빅 파마인 사노피에 총 1조2000억원에 달하는 기술이전에 성공했습니다.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 이중항체 후보물질인 ABL301의 개발과 상업화를 할 수 있는 전세계 시장에서의 권리를 넘긴 것인데요. 이중항체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의 국내 최초 기술이전 사례라고 합니다. 넘치는 자본을 가진 대형사가 아닌, 전체 임직원이 100명 남짓이고 창업한지 이제 6년이 채 안된 자산총액 765억원인 꼬마(?) 바이오업체가 이룬 쾌거입니다.
대형 기술이전 계약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 규모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국내 제약회사들의 초대형 기술이전 계약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것을 너무 자주 목격해 왔죠. 조 단위 기술이전에 성공했다고 해서 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쥐꼬리 만한 계약금을 받은 게 전부이고, 임상이 중도 포기되면서 더 이상의 수익금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국내 제약업계에서 기술수출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한미약품을 포함해 유한양행, 동아에스티, 한올바이오파마, 영진약품, 제넥신, LG생명과학, 부광약품, 종근당 등 기술 수출의 사례는 많습니다만, 기술 이전을 받은 외국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성공해 FDA의 판매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은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이 몇 년 전에 판매 승인을 받은 적이 있기는 있군요.
글로벌 신약 개발의 진입장벽은 매우 높습니다. 평균 10년 이상의 개발 기간이 소요되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듭니다. 그러고도 도중에 엎어지기 다반사입니다. 리스크가 워낙 크다 보니 실패 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글로벌 빅 파마가 아니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특히 비임상단계부터 판매 허가까지 개발 단계에 들어가는 전체 신약 개발 비용의 80%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소수의 글로벌 빅 파마가 신약개발을 독점하는 이유이고, 국내 유수의 제약사들조차 직접 개발이 아닌 기술 수출에 의존하는 배경이죠. 신약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낮다 보니 기술 수출을 하더라도 빅 파마들은 계약금을 가능한 낮추려고 하고, 임상의 진행 단계에 따라 지급하는 마일스톤의 비중을 높이게 마련입니다.
에이비엘바이오 기술수출에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요. 총 계약규모 10억6,000만 달러(1조 2,720억원)중 계약금이 7500만달러(900억원)으로 국내 바이오 신약 기술수출 중 최대 규모입니다. 여기에 실제 수입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단기 마일스톤이 4500만 달러(540억원) 입니다. 이번 신약후보 물질이 임상의 최종 단계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에이비엘바이오가 사노피로부터 144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겠다는 기대는 충분히 할 수 있죠.
이런 기대는 에이비엘바이오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높은 계약금을 받았다는 것은 사노피가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봤다는 것을 의미하고, 에이비엘바이오의 연구개발 능력이 빅 파마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에이비엘바이오가 개발하고 있는 다른 신약들에 대한 추가 기술 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예상도 하게 되죠.
에이비엘바이오는 '그랩바디(GRABODY)'라는 이중항체 플랫폼 세트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기술수출에 성공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인 'ABL301'은 그랩바디-B 플랫폼에서 개발된 이중항체 물질입니다. 뇌에는 외부의 물질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혈액뇌장벽(BBB)이 있는데, 치료물질이 뇌 속에 잘 전달되도록 BBB 막 위에 있는 IGF1R이라는 수용성 단백질을 타깃하는 운반용 항체(IGF1R항체)가 그랩바디-B이고 이게 각종 뇌질환 관련 신약 후보물질과 이중 항체를 구성해 질환을 치료하는 원리 같습니다.
그런데 이 그랩바디-B의 기술이 BBB 투과율이나 효과의 발현 및 지속성 측면에서 글로벌 경쟁사에 크게 앞선답니다. 그랩바디-B를 통해 파킨슨 병 외 다른 뇌 질환 개발 신약의 기술 수출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죠. 에이비엘바이오측에 따르면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며, 루게릭병 외에도 뇌 전이성 종양, 라이소솜저장병 등에 그랩바디-B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에이비엘바이오에는 또 항암 치료제 플랫폼인 그랩바디-T가 있는데, 5개의 신약 후보(ABL503, ABL111, ABL101, ABL105, ABL103)가 개발 중이고, 이중 둘은 지난해 미국에서 임상1상 IND 승인을 받았고 셋은 올해와 내년에 신청 예정입니다. 항암 치료제 개발의 난제 중 하나가 간독성 문제라는데, 그랩바디-T는 간독성 문제를 줄여준다고 합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신약을 직접 개발하지는 않고 기술을 수출하는 기업입니다. 신약개발 연구소 같은 곳이죠.영업수익을 기술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 기술이전의 성과가 지속적으로 나와줘야 합니다. 일종의 연구소 같은 조직이라 공장도 없고, 판매조직도 필요 없습니다 직원들 대부분 연구원들이고요. 대부분 비용이 연구개발에 직접 소요되는 비용과 직원들 인건비죠.
2016년에 창업한 이후 매년 매우 높은 매출액 증가율을 보이고 있지만, 폭발적인 성장세라고 하기에는 매출 규모가 아직 미미해 쑥스럽습니다. 하지만 매출이 매년 늘었다는 건 작더라도 기술이전에 반복적으로 성공해 왔다는 게 중요하죠. 그러다 이번에 한방 크게 터진 거 아니겠어요?
이 회사 진짜로 사람과 돈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토지나 건물 같은 유형자산도 없고 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 같은 영업자산도 없습니다. 다른 회사 주식이나 채권 같은 것도 없고, 투자부동산 등도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연구시설과 연구기술 그리고 연구원 뿐입니다.
창업자본과 전환상환우선주로 조달한 290억원을 다 까먹고 2018년에 코스닥 상장에 성공하면서 약 1560억원 가량의 현금을 확보했는데, 그 대부분을 금융상품에 넣어 놓고 연구개발비와 회사 운영비로 쓰고 있습니다.
매출이 늘고 있지만 연구개발비를 충당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2020년 한해 연구개발비가 423억원에 이르고 지난해엔 3분기까지 284억원이 발생했는데 전액 비용 처리되었죠. 연구개발비는 2017년 67억원에서 2018년 181억원, 2019년 311억웍으로 매우 빠르게 늘었습니다.
전액 기술이전에 의존하고 있는 매출은 그 자체로는 규모가 미미해 큰 의미가 없지만 연구개발 능력이 기술이전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매출이 늘고 있다는 건 아주 중요하죠. 높은 밸류를 인정 받으며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테고요.
약 1600억원의 상장 자금은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 약 406억원과 금융자산 약 500억원 등 900억원이 남았습니다. 2018년부터 3년 반 동안 연구개발비를 포함해 회사 운영비로 1120억원 가량을 사용했습니다.
상장으로 목돈이 들어오면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한 모양입니다. 직원 수가 2018년말에 48명이었고 연간 급여(급여성 복리후생비, 이하 같음)로 34억6200만원을 지출했죠. 지난해 9월말에는 92명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급여는 61억원이 발생했습니다. 목돈이 들어오자 연구원부터 대폭 채용했네요.
지난해 9월까지 연구개발비 284억원은 직전 년도 동기 427억원에 비해서는 크게 줄어든 것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연구개발비 지출이 늘지 않을 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파이프라인이 다양하게 가동되고 있고 신약 개발의 과정이 진행될수록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되어야 할 테니까요.
연구개발비가 더 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기술이전 수익으로는 몇 년 버티기 어렵습니다. 수익이 매년 늘어도 계좌의 잔고는 매년 표가 날 정도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면 또 몇 년 후에는 대규모 외부자금 조달에 나서야 하죠. 담보로 맡길 자산은 별로 없기 때문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해야 했을 겁니다.
이런 순환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게 바로 대규모 기술이전 계약인데 딱 필요할 때 잭팟이 터졌습니다. 계좌에 남은 900억원에 사노피에서 반환의무가 없는 계약금 900억원을 받아 유동성이 넉넉해 졌습니다.
2020년 영업비용이 678억원이었고 지난해엔 9월까지 392억원이니, 올해 연구개발비가 늘어난다고 해도 설마 900억원을 넘어가지는 않겠죠. 사노피에 기술이전을 하고 받은 900억원이 100% 올해 수익으로 잡힐 테니, 에이비엘바이오는 올해가 흑자 원년이 될 셈입니다. 만약 추가로 기술이전 계약을 따내거나 기존의 기술이전 계약에서 마일스톤 수익이 들어오면 덤으로 수익과 이익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신약개발 기술이전이라는 비즈니스모델이 수익창출과 그로 인한 연구개발 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과정에 들어가는 기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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