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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가 일반화되니 별 일이 다 생깁니다. 게임회사가 암호화폐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다른 상장사를 인수해 규모를 확장하고, 암호화폐로 조달한 자금은 이익으로 회사의 이익이 됩니다. 기업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면 주주가 돈을 내든지(자본), 채권자가 돈을 내든지(부채) 해야 하는데, 돈을 낸 사람은 주주도 아니고 채권자도 아닌 암호화폐 투자자입니다. 기업이 성장하고 이익을 많이 내도 암호화폐 투자자는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전통적인 금융의 상식을 잣대로 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이해가 깊은 사람들은 '참 바보 같은 소리 한다'고 혀를 찰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익숙해 졌으니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죠. 그런 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해 글로벌 히트를 친 미르4 게임의 개발사 위메이드가 지난 9일 잠정실적 발표를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실적을 냈습니다. 직전 해 1262억원이던 매출(연결 기준)이 5606억원으로 344%나 증가했고, 적자이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258억원과 4852억원에 달합니다. 3000억원대이던 자산은 1조원에 육박하게 되었죠.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대부분 지난해 4분기, 3개월 동안에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마치 아무 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갑자기 고층 빌딩이 들어선 느낌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실적을 발표한 다음날인 10일 위메이드의 주가는 폭락했습니다. 4분기 실적이 착시이고 사실은 예상을 한참 밑도는 어닝쇼크 수준이라는 분석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위믹스'라는 위메이드가 발행하는 암호화폐가 있었습니다.
위메이드가 밝힌 지난해 4분기 매출 3524억원 가운데 암호화폐 위믹스 유동화 매출이 2255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죠.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암호화폐를 매각(유동화)해 들어온 자금을 4분기 매출로 올렸던 겁니다.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데 추가로 비용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전액 이익으로 잡혔습니다.

회사측은 4분기 매출 증가의 배경으로 게임 '미르4'의 글로벌 매출이 반영되었고 위믹스 플랫폼 성장을 꼽았죠. 하지만 게임 매출은 853억원, 위믹스 플랫폼에서 발생한 매출은 36억원에 그쳤습니다. 게임과 라이선스 매출이 전년 동기나 전분기에 비해 두배로 늘어나기는 했는데, 아마 시장의 예상하고는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죠. 증권가에서 암호화폐를 유동화한 것을 빼면 어닝쇼크라고 한 건 그 때문입니다.
위메이드는 공시는 물론이고 IR보고서에도 위믹스 유동화에 대해 거의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동화 규모만 한 줄 밝혔을 뿐이고,, 대부분의 내용을 미르4와 플랫폼 성장으로 채웠죠. 대부분의 매출과 이익이 위믹스 유동화에서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암호화폐 매각이 매출과 이익으로 잡히는 게 적절한 회계처리일까요. 회사의 매출과 이익이 되려면 암호화폐의 소유자가 회사이어야 하고, 그럼 회사의 재무제표에 자산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야 할 겁니다. 그게 지금까지의 상식이죠.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 게 회계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위메이드는 지난해 9월말 현재 개별 기준으로 110억원, 연결 기준으로 600억원의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자회사를 포함해 총 600억원인 암호화폐가 4분기에 2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발생시킨 그 암호화폐가 아니라는 말이죠.
2255억원의 매출을 일으킨 암호화폐는 위메이드의 자산에 없었습니다. 위메이드에는 위메이드 트리라는 자회사가 있고, 위메이드 트리에는 Wemade tree Pte라는 해외 자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가 암호화폐 위믹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Wemade tree Pte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암호화폐는 어디에도 자산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가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매각(유동화)되어 2255억원의 현금이 위메이드로 유입된 셈입니다. 위메이드가 위메이드 트리를 최근에 합병했으니, 이제 Wemade tree Pte는 위메이드의 자회사가 되었네요.
암호화폐도 화폐이니 법정통화를 발행하는 한국은행과 비교하면 좀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한국은행에게도 화폐는 자산이 아니죠. 하지만 화폐를 발행해 시중에 유통시키죠. 그 돈으로 국채도 사고, 그 외 여러 곳에 씁니다. 한국은행에게 화폐 발행은 자금조달인 셈이죠. 그런데 한국은행에게 그 화폐는 부채입니다. 발행한 화폐에 대해 상환의 의무를 지게 되죠.
위메이드의 암호화폐 유동화는 한국은행의 화폐 발행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위메이드에게 자산은 물론 부채도 아니고 자본(주식)도 아니죠. 암호화폐를 매입한 사람은 위메이드가 만든 플랫폼에서 돈처럼 사용할 수 있지만,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바꿔 달라고 위메이드에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암호화폐는 유동화되는 순간 위메이드와 금전적인 관계가 끊기게 되죠.
하지만 암호화폐를 유동화 해 확보한 자금은 온전히 위메이드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돈을 운용해서 생긴 이익은 암호화폐 투자자가 아닌 주주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암호화폐 투자자와는 상관이 없죠.

위메이드는 지난해 800억원을 투입해 비덴트의 전환사채를 매입했고, Wemade Tree Pte는 1800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위메이드 이노베이션을 통해 다른 게임회사 선데이토즈의 주식과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총 1667억2500만원어치 매입했습니다. 그 자금은 당연히 위믹스 유동화에서 나왔을 테지요. 위믹스 플랫폼을 활성화하기 위해 수 많은 게임을 유치(온보딩)하는 데 필요한 자금 역시 위믹스 유동화를 통해 마련했을 겁니다.
위메이드가 위믹스를 발행하기 위해 들어간 돈은 사실상 없습니다. 발행하면 돈이 들어오지만, 취득하기 위해 돈이 들지는 않습니다. 공짜로 자금을 조달하는 셈입니다. 다른 기업처럼 유상증자를 하거나 사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암호화폐 발행회사가 그 암호화폐를 축으로 하는 블록체인 생태계와 공생 관계에 있기는 하겠죠. 위믹스 플랫폼이 성장을 할수록 위메이드라는 기업은 성장을 할 것이고, 위믹스라는 암호화폐 가치도 상승할 것입니다. 반대로 생태계가 위축되면 위메이드 기업가치와 위믹스 암호화폐 가치가 동반 하락할 테고요.
하지만 그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발권을 하는 것 자체가,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 자체가 위메이드에게 매출이 되고, 이익이 되어 주주의 부를 불려 준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합니다.
위메이드가 지난해 4분기 위믹스를 대량 유동화한 건 아닌 모양입니다. 지난 2020년 11월 이후 매월 꾸준하게 매도를 했습니다. 오히려 2020년 11월~2021년 1월까지 매도 물량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4분기 매출로 기록된 것은 위믹스 매도의 회계처리에 대해 이제서야 회계법인과 의견조율이 끝났기 때문이죠.
위믹스의 총 발행량은 10억개에 달한다고 하고 현재까지 1억8000만개를 매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확보한 자금이 2271억원이고 677억원이 생태계 구축과 마케팅에 사용됐다고 합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M&A에 쓰인 것 같군요.
그럼 대량 8억2000만개의 토큰이 남아 있다는 것인데, 이 토큰은 결국 위메이드가 아무런 이자나 배당 등의 대가 없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조달 여력이 되겠습니다. 위메이드는 선데이토즈 인수 후에도 다른 게임회사를 인수하는 데 조 단위 돈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언제가 될 지 몰라도 위믹스의 유동화 시기와 맞물릴 수 밖에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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