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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시아에서 한국전자로 최대주주가 변경된 카메라 모듈 제조기업 에이치엔티는 2019년 휴림로봇의 최대주주가 됩니다. 휴림로봇이 실시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6.62%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베이징 링크선의 6.06% 지분율을 넘어섰죠. 이때 삼부토건의 최대주주가 휴림로봇이었습니다.


휴림로봇은 2018년 9월에 삼부토건 지분을 갖고 있던 디에스티글로벌투자파트너즈PEF의 출자 지분을 ㈜우진에 넘기면서 2대주주로 내려앉았는데, 우진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이앤씨그로쓰제일호유한회사 외 2인과 특수관계가 해소되면서 지분율이 하락해 휴림로봇이 다시 삼부토건의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하지만 삼부토건의 경영권 지분을 휴림로봇이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휴림로봇이 보유한 주식 288만여주 중 200만주에 대해 ㈜우진 측이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었고, 근질권을 설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계약대로라면 2019년 9월17일까지 200만주에 대한 양수도 거래가 완결될 예정이었죠.


하지만 우진이 최대주주가 된 후 개최한 주주총회에서 삼부토건의 경영진이 우진을 비토해 버립니다. 이사회가 새로운 이사 후보를 대거 내세우면서 우진측이 후보로 추천한 인물들은 정관상 이사 수 초과 조항에 걸려 의안에 상정되지도 못합니다. 등기임원이면서 삼부토건 회장을 맡고 있던 디신통그룹 인물 류둥하이에 대한 해임 건도 부결됩니다.


의미를 잘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휴림로봇은 최대주주인 베이징 링크선과 경영권 분쟁으로 날이 서 있던 상황에서 삼부토건 지분을 ㈜우진에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죠. 그런데 삼부토건 이사회는 우진측의 경영권 장악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새로운 이사 후보를 대거 추천하고 의안 상정 순서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정해 우진측 후보 선임 안건의 의안 상정을 막았습니다. 우진 측이 원하던 류둥하이 회장의 해임도 부결시켰죠. 게다가 비록 선임에 실패했지만 이사회가 내세운 사외이사 후보에는 디신통그룹 부사장이었던 천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삼부토건 이사회는 휴림로봇이 각을 세우고 있던 베이징 링크선의 모회사 디신통그룹에 우호적이었던 겁니다.


삼부토건의 주요 주주는 휴림로봇과 ㈜우진측의 펀드였지만 그 어느 쪽도 삼부토건의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최대주주가 우진이든 휴림로봇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었죠.


에이치엔티가 휴림로봇을 인수하기 석달 전인 2019년 3월27일 삼부토건은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합니다. 삼부토건 이사회는 주총에 새로운 이사 후보 3인(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2명)을 추천합니다. 사내이사 후보는 다름 아닌 조성옥 전 대교종합건설 회장이었습니다. 조성옥씨는 이렇게 삼부토건 등기이사가 되고 곧바로 회장에 취임합니다.조성옥 회장이 경영을 총괄하고 디신통그룹 인물인 류둥하이 회장은 경영자문 역할을 맡습니다.



당시 삼부토건 이사회 구성원은 모두 8명이었는데, 류둥하이 회장과 이응근 대표이사를 포함한 4명은 휴림로봇이 삼부토건을 인수하면서 이사로 추천한 분들이었고, 조성옥 회장은 그 4명이 회장으로 영입한 분이었습니다.


조성옥 회장이 삼부토건에 입성하고 두달 후 한국전자가 코아시아로부터 에이치엔티를 인수하고, 새로 꾸려진 에이치엔티 이사회가 열흘 후 휴림로봇 인수를 결정합니다. 이때 에이치엔티 이사진이 매우 다채롭습니다. 캐나다 환경부 장관과 부총리를 지냈고 2003년에는 퀘백 수상이 됐던 장 샤레(Jean Charest)씨를 사내이사로 영입했죠. 장 샤레는 후에 캐나다 보수당이 되는 진보 보수당의 대표를 지낸 우파 정치인이기도 했죠. 그뿐 아닙니다. 에이치엔티는 또 글로벌 전장기업 발레오의 회장을 지낸 티에리 모린(Thierry Morin)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총괄 회장직을 맡깁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합니다. 카메라 모듈 사업을 사실상 포기해 껍데기만 남다시피 한 중소기업 에이치엔티가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을 지 모르는 자율주행차 사업에 뛰어든 것도 놀랍지만, 자산규모 12억원짜리 작은 회사 한국전자가 에이치엔티를 인수한 뒤에 자율주행차 사업을 하기 위해 영입한 영입한 인물이 캐니다의 유력한 보수 정치인과 대표적인 글로벌 전장기업 발레오의 전 회장이라니요.


한국전자가 외국의 거물 정치인과 글로벌 기업 전 회장씩이나 되는 인물과 인맥을 맺고 있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그 분들은 도대체 무얼 보고 자율주행차 사업에 대해 아무런 기반도 없는 한국의 중소기업 이사진에 합류를 한 걸까요.


에이치엔티는 매우 발 빠른 움직임을 보입니다. 산업용 로봇 전문 회사 휴림로봇을 인수한 지 한달 만에 미국에 인공지능(AI) 전문기업 '팬옵틱스 인더스트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또 한달 후, 팬옵틱스 인더스트리를 통해 미국의 자율주행 플랫폼 기업 우모(UMO)를 인수했다고 발표합니다. 우모는 자율주행에 필요한 3D 지도와 운행 데이터를 수집해 만드는 플랫폼 구축 전문 회사라고 합니다. 에이치엔티는 또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기업 ㈜엠디이의 전환사채도 80억원어치 인수합니다.


자율주행 관련 기업을 인수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겠죠. 그래서 에이치엔티는 타법인 주식 등의 취득자금 목적으로 전환사채 1회와 2회 각 100억원씩 총 200억원어치를 발행하고 1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도 실시합니다. 자율주행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에 에이치엔티 주가는 연일 강세를 보입니다.


그런데 우모라는 회사의 실체를 모르겠습니다. 구글링을 해도 정보가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다만 에이치엔티가 팬옵틱스 설립에 출자한 자본은 35억원이고, 팬옵틱스는 이 중 12억원으로 우모 지분 80%를 인수합니다. 자율주행 플랫폼을 선도한다고 보기에는 기업가치가 너무 낮습니다. 거창한 듯 보였던 자율주행 사업의 첫 걸음은 예상과 달리 소박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한다는 ㈜엠디이는 자산총액 29억원에 순자산이 (-)13억원인 완전 자본잠식 기업이었습니다. 2019년에 에이치엔티의 종속기업에 편입되는데 그해 말에는 자산이 46억원, 순자산이 (-)79억원으로 결손이 더욱 커집니다. 2019년에만 5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합니다. 에이치엔티가 인수해 준 전환사채 80억원으로 조달한 돈의 대부분을 날린 셈입니다.



에이치엔티는 2019년말 현재 팬옵틱스와 우모, 그리고 엠디이를 연결종속기업에 편입하는데, 우모의 재무상황에 대해서는 사업보고서에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20% 비지배지분 몫의 지분이 (-)1억6913만4000원으로 보고되었고 비지배지분에 귀속되는 당기순손익이 (-)1억6252만2000원으로 보고됩니다. 우모가 완전 자본잠식 회사였다는 뜻이고, 2019년에 8억원 이상의 순손실을 기록했음을 의미합니다. 제대로 굴러가기는 하는 회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에이치엔티가 가진 자산 중 가장 가치가 있는 건 오히려 휴림로봇 지분이었을 겁니다. 휴림로봇에 대한 지분율이 6.62%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경영권 지분이었고, 휴림로봇은 자산규모 4000억원에 달하는 삼부토건의 최대주주였으니까요. 한국전자가 에이치엔티를 인수해 기치를 올렸던 자율주행사업은 정말 진정성이 있었던 것일까요.


에이치엔티는 오히려 M&A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 같았습니다. 2019년에만 두 개의 M&A펀드에 95억원을 투자해 방송제작사 김종학프로덕션과 모델에이전시 회사 에스에이치엔터테인먼트를 보유했고, 휴림로봇을 인수해 삼부토건의 경영권 지분까지 손에 넣는 수완을 발휘한 걸 보면 말이죠.용도는 잘 모르겠지만 위너스임페리얼전문사모1호라는 펀드에도 30억원을 투자합니다. 자율주행사업을 하겠다고 우모와 엠디이에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투자가 다른 곳에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전자는 에이치엔티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에이치엔티 인수 후 최대주주가 강석덕씨에서 코메드앤파트너스엔코(이하 코메드)라는 곳으로 변경되죠. 코메드 역시 진정한 투자자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베일에 가려진 누군가가 또 있습니다.


코메드는 2017년 대우주선해양 급식업체 웰리브 인수에 참여한 곳 중 하나입니다. 베이사이드PE가 650억원으로 웰리브를 인후할 때 유한책임사원(LP)으로 24억원을 투자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코메드는 상장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었고, 인수하는 상장사의 자금으로 1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장사 인수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투자규모가 24억원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행각으로 미루어 보건대 코메드는 기업 인수 거래에 투자해 이익을 추구하는 M&A 전문 투자회사쯤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전자는 2020년 2월 이엔케이컨소시엄이라는 곳과 주식 및 경영권 양수도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 계약으로 이엔케이컨소시엄은 에이치엔티 지분 17.87%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됩니다.이엔케이컨소시엄은 코스닥 상장사 코디엠의 종속기업이었죠.


이미 등장한 이름 중에 코디엠의 종속기업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이엔씨그로쓰사모투자와 이앤씨그로쓰사모투자가 출자한 이앤씨그로쓰제일호유한회사, 이앤씨그로쓰제이호유한회사입니다. ㈜우진과 연합해 휴림로봇이 보유한 삼부토건 지분을 인수한 바로 그곳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