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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 ㈜한화가 비상장 자회사인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자본시장 미디어 더벨에 다르면 한화그룹은 ㈜한화와 한화건설 합병을 위한 내부 검토에 최근 착수했고, 이르면 다음달(7월) 구체적인 합병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상대로 된다면 상당히 빠른 속도인데, 한화가 한화건설의 보통주 10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외부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구한다거나, 합병대가 산정을 위한 기업가치 평가 등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장차 한화그룹의 지주회사가 될 것이 확실시 되는 ㈜한화의 한화건설 흡수합병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한화건설이 자산규모 국내 2위 생명보험회사인 한화생명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입니다.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하게 되면 다음 수순은 ㈜한화의 지주회사 전환이 될 공산이 크죠. 그리고 한화생명이 이미 그룹의 금융회사들을 수직계열화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 중간지주사 설립이나 금융계열의 분리가 뒤따를 것입니다. 한화건설의 흡수합병이 한화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중요한 변수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한화생명은 자산규모가 무려 162조원이나 됩니다. 한화건설의 자산총계는 대략 6조원 정도(연결 기준)입니다. 연간 매출액은 대략 3조원입니다. 한화생명을 품기에는 한없이 작은 회사입니다.
한화가 거의 모든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니 합병을 결정한다면 무리없이 진행이 될 것 같습니다만, 걸리적거리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한화건설이 지난 2014년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입니다. 한화건설은 당시 재무구조 개선을 한다며 4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했고, 2017년에 1000억원, 2020년에 1000억원을 상환하고 2000억원이 남아 있습니다. 레콘㈜이라는 장부상 회사가 전액 보유하고 있는데, 우선주 지분 중 57.70%, 전체 주식 중 3.23%에 달합니다.
㈜한화도 우선주 70만1800주를 보유하고 있는데, 2016년 2000억원 규모로 발행된 상환우선주입니다. 한화가 한화건설을 합병하게 되면, 이 상환우선주는 자기주식이 돼 버리기 때문에 주식의 의미를 잃게 되죠. 자기주식은 더 이상 주식이 아닙니다.
반면 레콘이 보유한 상환전환우선주는 그대로 두면 합병 이후에 ㈜한화의 주식과 교환해 줘야 합니다. 상환전환우선주도 명색이 주식이니 당연하죠. 한화 입장에서는 껄끄럽습니다. 금액이나 지분율로는 크게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이 상환우선주는 일반적인 주식이 아니라 사실상 차입금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죠.
한화건설이 2014년 발행한 상환우선주는 회계상 전액 자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회사가 상환권을 갖고 있고 투자자는 상환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죠. 계약상으로는 현금 또는 금융자산을 인도할 의무도 한화건설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상환우선주는 처음 발행될 당시 3년 후 상환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상환일을 2017년 6월26일로 적시하고 있었죠. 연 최고 9.00%의 우선배당율도 발행 당시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또 3년간의 주주간 계약에 따라 우선주 투자자는 대주주인 ㈜한화의 동의 없이 우선주를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었고, 상환일인2017년 6월26일 상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화가 우선주의 전부에 대해 매수청구를 할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와 대주주 중 아무나 우선주를 상환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콜옵션 행사 결과 우선주 순매도 금액이 발행가액(투자자의 인수가액)에 미달하게 되면, 그 차액을 ㈜한화가 지급하기로 하는 정산 계약도 체결되어 있었습니다. 우선주 투자자는 원금을 손해 볼 일이 없었던 겁니다. 채권이 아닌 주식인데 말이죠. 조기 상환도 가능하기는 했습니다. 우선주 인수대금 총액의 30% 한도로요. 하지만 조기 상환을 하려면 발행가액에 일정 수준의 웃돈(가산금)을 얹어줘야만 했죠.
우선주는 단 한 주도 보통주로 전환되지 않았습니다. 상환일인 2017년 6월26일 1000억원이 상환되고, 나머지 3000억원에 대해서는 계약조건이 변경되며 3년 연장이 되었죠. 2020년 6월26일에도 1000억원이 추가 상환되고 2000억원에 대해 다시 3년이 연장되었습니다.우선 배당률은 바뀌었지만, 발행조건이나 정산이나 옵션 등 주주간 계약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죠.
상환우선주가 차입금의 성질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더 있습니다. 바로 상환우선주를 인수한 레콘㈜의 정체입니다. 레콘은 실질적인 투자자들이 우선주 인수를 위해 설립된 자본금 100원, 발행주식 1주짜리 장부상 회사(SPC)입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화건설의 우선주 인수대금 4000억원을 조성하기 위해 11개 금융회사와 기관투자가의 대주단이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레콘㈜의 감사보고서를 보니 우선주 인수대금을 빌려 준 곳은 총 10개더군요. 동부화재(현 DB손해보험)가 대주단에 참여하기로 했다가 빠진 모양입니다.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 5개 은행, 교보생명 등 3개 보험사에 경찰공제회와 IBK캐피탈이 총 4000억원을 연 5.0%의 금리로 레콘㈜에 빌려 주고, 레콘이 그 돈으로 한화건설의 우선주를 인수한 겁니다.
우선주 발행 조건에는 한화건설이 인수자인 레콘㈜에 후순위로 197억원을 후순위 대여한다는 계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레콘㈜이 대주단에 빌린 차입금을 다 갚고 남은 게 있어야 한화건설이 상환을 받을 수 있었죠. 한화건설은 2014년에 147억원, 2015년에 추가로 50억원을 레콘㈜에 후순위 대여해 줍니다.
레콘㈜은 장부상 회사이기 때문에 자산이라고는 한화건설 상환전환우선주 뿐이었고, 발생할 수 있는 수익은 한화건설이 지급하는 배당금 뿐입니다. 대주단에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우선주 배당금을 꼭 받아야 하죠. 만약 한화건설이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면, 한화건설에서 후순위 차입한 197억원을 대주단에게 지급할 이자로 쓰이게 되었을 겁니다. 대주단 차입 원금을 갚을 돈이 부족해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한화건설은 지난 달 2000억원 남은 상환전환우선주 발행조건을 다시 변경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올해 우선주 배당금 2.30%를 지급하고, 오는 6월 26일 상환우선주 전부를 상환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한화㈜로의 흡수합병 전에 레콘㈜이 보유한 상환우선주를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죠. 3월말 현재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 2020억원 정도 뿐이니 우선주를 상환하려면 추가로 조달을 하든지, 다른 자산을 현금화하든지 해야겠네요.
한화건설이 흡수합병을 앞두고 있다면, 우선주 상환은 불가피했을 겁니다. 레콘이 이 우선주를 유동화한 것으로 추정되거든요. 공시나 재무제표를 통해 유동화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우선주를 기초로 자산유동화증권(ABS 또는 ABCP 등)을 발행해 4000억원을 조달하고, 그걸로 대주단 차입금을 상환한 것 같습니다. 채권자가 10곳에서 불특정 다수로 바뀌었겠죠. 유동화를 하지 않았다면 실질적인 채권자가 10곳이었을 텐데, 유동화를 했다면 누군지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채권자로 바뀝니다. 명목상 주주는 레콘㈜이지만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잖아요. 채권자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합병 동의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합병을 하게 되면 기초자산이 한화㈜의 주식으로 바뀌게 되니 유동화 프로그램을 다시 짜야 합니다. 기초자산을 마음 대로 바꿀 수는 아마 없을 걸요. 갚아 버리는 게 속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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