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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기업으로서 한화건설의 입장만 따지자면 한화생명 지분은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계속 보유하는 것도 곤란하고 처분하기도 난감한 상황이죠. 한화생명 지분의 장부가액은 2조2600억원 가량으로 한화건설 총자산(연결기준, 이하 같음)의 거의 40%에 달합니다. 한화건설이 보유한 최대 자산이죠.


한화건설의 매출액은 2019년 이후 2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지난해에는 2015년 이후 처음으로 3조원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영업이익도 2000억원 아래로 내려갔죠. 올해 1분기에도 지난해 동기와 대동소이한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본업이 부진하기는 하지만, 한화건설은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 중입니다. 그 흑자 중에는 한화생명 지분 보유에서 발생한 이익이 적지 않습니다. 한화생명이 얻은 순이익 중에 지분율 만큼 한화건설의 순이익에 지분법이익으로 더해지죠.


지난해 영업이익 감소에도 불구하고 당기순이익은 3622억원으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최대였습니다. 한화생명에서 3000억원 이상의 지분법이익을 얻었기 때문이죠. 올해 1분기 순이익은 103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900억원대에서 급감했는데, 한화생명 지분법 이익이 44억원에 그친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도 이익에 조금 보탬이 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흑자 행진 중인 한화건설의 순자산은 2년 연속 큰 폭으로 감소했고, 올해 1분기에도 대폭 줄었습니다. 모회사인 ㈜한화에 배당을 하기는 했지만 순이익의 범위 내에서 했기 때문에 배당 때문에 순자산이 감소한 것은 아닙니다. 순자산 감소의 주범은 바로 기타포괄손실이죠.



기타포괄손익은 일종의 미실현손익의 개념인데요. 미실현이기 때문에 손익계산서에는 기록되지 않고, 재무상태표의 순자산(자본)에 직접 가감합니다. 매년 더하거나 빼서 기타포괄손익누계액으로 기록됩니다. 한화건설의 기타포괄손익누계액은 2019년말 현재 4000억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에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올해 3월말에는 마이너스 폭이 60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2년 3개월만에 1조원 이상의 손실이 생긴 셈이죠.


한화건설에 지분법이익으로 보탬을 준 곳이 한화생명이지만, 2년 3개월 동안 1조원 이상의 손실을 준 곳도 한화생명입니다. 한화생명이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 하실 수 있습니다. 손익계산서상의 당기순이익 기준으로는 분명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화생명은 2020년 이후 막대한 기타포괄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한화생명이 지난해 1조2492억원을 포함해 2016년 이후 6년 3개월 동안 올린 당기순이익은 3조6000억원에 육박합니다. 이 중 한화건설이 보유한 지분율 만큼 한화건설의 당기순이익에 더해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한화생명은 같은 기간에 약 3조8000억원에 육박하는 기타포괄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이 중 한화건설의 지분율 만큼이 한화건설의 기타포괄손실로 넘어옵니다. 당기순이익에 더해진 것보다 기타포괄손실로 순자산을 깎아 먹은 것이 더 큽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1분기 한화생명의 기타포괄손실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무려 4조4000억원에 이릅니다. 같은 기간 손익계산서상 순이익은 1조4000억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한화건설이 한화생명으로부터 얻은 지분법이익은 지난해와 올해 1분기를 합해 3224억원입니다. 한화생명으로부터 발생한 기타포괄손실은 1조1673억원에 달합니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한화건설 순자산 감소의 주범이 한화생명입니다.


물론 한화생명으로부터 배당을 받기는 했습니다. 2016년이후 1432억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배당금 유입이 크게 줄었습니다. 2018년까지는 300억원 이상을 받았는데, 2019년에 218억원, 2020년과 지난해에는 65억원을 수령하는 데 그쳤습니다2019년까지는 한화생명에서 받은 배당금으로 ㈜한화에 배당을 주고도 남았지만, 2020년부터는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한화건설의 순자산 감소를 초래한 한화생명의 기타포괄손실은 대부분 유가증권평가손실입니다. 한화생명이 보유한 유가증권의 가격이 떨어진 겁니다. 한화생명은 3월말 현재 금융자산이 127조원 가량 있는데, 약 90조원이 유가증권입니다.


유가증권은 평가이익이나 손실을 손익계산서상 당기순이익에 가감하는 게 있고, 손익계산서를 건너 뛰고 재무상태표의 순자산에서 직접 더하거나 빼는 게 있습니다. 매도가능유가증권이나 만기보유유가증권이 이에 해당합니다. 한화생명이 보유한 90조원의 유가증권 중 약 75조원이 그렇습니다.


75조원의 유가증권은 대부분 국공채나 회사채 또는 외화증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안전한 자산들이어서 떼일 염려는 거의 없습니다만, 금리가 오르면 가격이 하락합니다. 지난해와 올해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한 이유가 바로 국내외 금리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죠.


최근에도 국내외 금리는 오르는 추세죠. 미국 중앙은행과 한국은행을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천정부지로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으니 채권금리가 오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습니다. 주요국의 기준금리는 올해 내내 오를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죠. 어쩌면 내년 이후에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하고요.


금리가 더 오르게 되면, 한화생명이 보유한 채권의 가격은 더 떨어지게 될 테고 평가손실이 추가로 발생하게 되겠죠. 채권 평가손실은 지분율 만큼 한화건설 순자산 감소로 이어질 겁니다.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화건설이 보유한 한화생명 지분의 장부가액은 올해 3월말 현재 2조2601억원입니다. 2019년말 3조원 이상이었던 적도 있는데 3년째 감소하고 있습니다. 약간 사족이기는 한데, 2019년말 장부가액은 믿을 수 없습니다. 2020년 사업보고서에는 기초가액이 2조9000억원대로 기록되어 있더라고요. 2019년말 가액과 일치해야 하는데 말이죠. 한화생명이 2019년 재무제표를 정정 공시했는데, 한화건설이 이를 반영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쨌든 추세로 보면 2020년 이후 장부가액이 줄고 있습니다. 장부가액이 감소하는 이유에는 한화건설이 받은 배당금도 있지만, 한화생명의 기타포괄손실이 당기순이익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죠. 한화건설 순자산 감소는 결국 한화생명 지분가치 하락에서 초래된 것입니다.



한화건설이 한화생명 지분을 판다면, 한화생명의 지분가치 변동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죠. 물론 한화그룹 금융계열사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고, 한화건설 자산의 40%에 육박하는 한화생명 지분을 외부에 판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혹시라도 팔게 된다면, ㈜한화로 팔아야겠죠.이 또한 가능성이 아주 낮은 시나리오이긴 합니다. 시장가격대로 사오더라도 7000억원 가량의 현금이 필요합니다. ㈜한화가 한화건설 보통주 지분 100%를 들고 있는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죠.


한화건설이 시장가격대로 한화생명 지분을 판다면 무려 1조5000억원대의 처분손실이 발생해 버립니다. 졸지에 자본잠식에 빠져 버리죠. 최대주주이니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받는다고 해도 처분손실이 좀 줄어들 뿐입니다.


㈜한화가 장부가액대로 한화생명 지분을 사 주면 한화건설로서는 좋겠죠. 그렇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할 겁니다. 장부상으로는 이익도 손실도 나지 않겠지만, 공정가치와 처분가액이 너무 차이가 나서 국세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거든요.


현행 세법에는 법인이 특수관계자와 한 매매거래가 매매거래가 공정가액을 현격히(5%) 벗어나게 되면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부당행위 계산의 부인'이라는 게 있습니다. 현격7000억원 정도인 한화생명 지분의 공정가치에서 5% 높은 가격으로 ㈜한화에 팔게 되면 실제 매매가격과 7035억원(7000억원×105%)의 차이를 세법상 익금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