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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공작기계 전문업체인 화천기계에 최근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1952년 모회사인 화천기공이 설립된 이래 경영권 다툼이 한번도 벌어진 적 없이 오너 중심의 경영체제가 유지돼 왔던 곳인데 말입니다. '원조 슈퍼개미'라고 언론에서 보도되는 보이스에셋 대표 김성진씨가 경영참여 목적으로 화천기계의 지분 10% 이상을 취득하면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허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허락하게 되면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성진씨 측은 화천기계의 기존 이사 전원과 감사의 해임과 자신 측의 이사 6인의 선임 및 김성진씨의 감사 선임을 주총 의안으로 내세웠습니다.
김성진씨가 정말로 경영권을 빼앗아 오겠다는 목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경영진의 한 자리를차지한다거나,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로 주주가치를 높인다거나, 이슈를 만들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익을 누리려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목표의 수준과 관계없이 지금까지의 과정은 분명한 적대적 M&A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영권 분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주가인 법이죠. 소식이 알려지자 2000원대 초반까지 떨어져 있던 화천기계 주가는 단박에 3000원대 후반까지 치솟았고 한 차례 등락을 거쳐 8월18일 현재 3200원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가가 올랐다고 해서 시장이 적대적 M&A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말의 기대 정도는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습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은 화천기계에 대한 적대적 M&A의 성공 여부,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주가의 등락 여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화천기계가 왜 타깃이 되었는지, 공격자는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성향인지, 적대적 M&A 시도에 대해 어떤 방어전략이 있을 지가 더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내막이나 답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공격전략이나 방어전략을 제시할 수 있지도 않습니다. 이 기회에 공작기계로 70년간 한 우물을 판 기업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 화천그룹에 대해 공부해 보는 셈 치고 이모저모 살펴보려는 정도이죠.
그래도 명색이 경영권 분쟁인데, 코멘트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일단 물리적으로 보면 공격 보다는 방어의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맞겠죠? 주총을 통해 이사진을 다 갈아치우지는 못해도 머리 수에서 우위를 점하는 걸 적대적 M&A의 성공이라고 본다면 말이죠. 공격하는 입장인 김성진씨 측은 10.43%의 지분을 확보한 상황이지만, 기존의 최대주주인 권영열 회장 측은 모회사인 화천기공의 29.95%를 포함해 34.5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격자가 주식을 추가 취득할 수 있고, 기관투자가와 소액투자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만, 지분율의 격차는 꽤 커 보입니다.
회사 경영이 부실하거나 재무적으로 취약할 때, 그 외에도 주주들이 회사에 대해 불만이 클 때 공격자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또 공격자가 아주 매력적인 회사 발전 방안이나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갖고 있다면 표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화천기계의 약점이자 공격자의 공략 포인트 중 하나가 배당인 모양입니다. 화천기계는 최근 몇 년 동안 배당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 이후 총 배당액이 6억원 정도니까요. 올해 1억9800만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죠. 유통주식 수가 1980만주이니, 1주당 10원을 배당한 꼴입니다. 김성진씨 측은 주총 의안으로 보통주 1주당 3500원의 배당 안건을 제시했더라고요. 현 주가보다도 높은 매우 파격적인 배당 규모입니다. 소액주주들에게는 확실히 매력적으로 들릴 것 같습니다.
누가 이길 지는 관심이 없지만, 대규모 배당은 회사의 재무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의 미래에 관심이 없는 주주라면 1회성으로 대규모 배당 잔치를 즐기고 떠나면 그 뿐이지만, 경영을 하는 입장이 되거나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장기 투자를 하고 있다면, 손익계산이 달라질 수도 있죠.
배당 안건이 주총에서 통과된다면 화천기계 이익잉여금이 1034억원에서 341억원으로 크게 줄게 됩니다. 화천기계 자본총액이 1262억원인데 배당으로 693억원이 빠져 나가면 부채비율은 29%에서 65%로 상승하게 되죠. 부채비율이 크게 상승하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네요. 부채가 별로 없는(6월말 현재 367억원) 회사라서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배당은 이익잉여금으로 주는 게 아닙니다. 현금으로 주죠. 화천기계 현금이 6월말 기준으로 212억원 있습니다. 단기금융상품 254억원을 전부 현금화를 해서 배당 재원으로 쓰면 466억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230억원 가량이 부족합니다.
모자라는 배당금을 채우려면 결국 증자를 하거나 차입을 해야 합니다. 배당하겠다고 공장이나 기계를 내다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증자나 차입을 해서 배당을 한다고 위법은 아닙니다. 배당을 얼마까지 할 수 있는지는 배당가능이익의 크기에 달린 것이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 지는 상관 없으니까요.
모자라는 배당금 만큼만 차입을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693억원의 배당을 하고 나면 화천기계의 유동성은 바닥이 나게 됩니다. 공장을 돌릴 돈도 직원들 월급을 줄 돈도 원재료를 사올 돈도 없게 되죠. 이런 걸 운영자금이라고 하잖아요.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운영자금을 더해 조달을 해야 겠죠. 운영자금이 얼마나 들지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공장에서 발생하는 제조비용과 본사와 영업조직에서 발생하는 판매관리비 중 현금유출이 수반되지 않는 감가상각비를 제외한 금액을 기준으로 한다면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3개월에 420억원, 6개월에 850억원, 1년이면 1700억원 정도 들려나 봅니다.
물론 매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있으니 운영자금 전부를 외부조달해야 하는 건 아니죠. 하지만 매출로 벌어 비어 있는 곳간을 채우려면 시간이 걸리니 상당한 수준의 조달은 불가피할 겁니다. 유동성이 바닥이 나면 불안해서 살겠어요. 유동성 부족은 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주당 3500원의 배당을 하게 된다면, 외부조달은 넉넉히 해야 할 겁니다. 그럼 부채비율은 65%까지의 상승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고요.
주당 3500원의 배당이야 1회성이겠지만, 경영진이 바뀐다고 해도 고배당 정책을 이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화천기계가 전통이 깊은 공작기계 업체이기는 합니다만 돈을 많이 버는 회사는 아닙니다. 매출은 완연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2020년까지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실적은 괜찮습니다.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고 흑자전환에도 성공했습니다. 공작기계 시장이 오랜만에 호황을 보였고, 자동차 엔진용 부품의 판매도 호조를 보였습니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매출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작기계 부문 영업이익이 덜 나고 있지만 자동차부품부문의 영업이익이 더 나면서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보다 정교한 실적 전망은 근거 자료도 충분하고 예측능력을 갖춘 애널리스트 의견을 참고하시는 게 더 좋겠습니다.
실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한창 때에 비하면 여전히 한참 부족합니다. 2011년 창사 이래 최대 인 2962억원에 비하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든 매출입니다. 일단 바닥을 친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은 무려 10년이나 이어지던 하락세가 끝났다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화천기계에 정말 필요한 것은 장기적인 성장의 주춧돌을 다시 마련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주력사업인 공작기계 부문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고 두산공작기계, 현대위아와 경쟁해 시장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도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기존의 공작기계와 자동차부품에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면서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본의 축적이 필수적일 겁니다. 고배당 정책으로 전환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화천기계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한 우물을 파면서 꾸준히 이익이 나 준다면 배당을 늘릴 여지는 있을 것 같습니다. 현금흐름 관리가 괜찮은 편입니다. 2018~2020년 3년 연속 영업적자를 낼 때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소폭이지만 순유입을 기록했죠. 설비투자에 큰 돈을 쓰지 않기 때문에 실적이 안정만 돼 준다면 매년 현금흐름 잉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배당 여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설비투자 등 자본적 지출에 큰 돈이 들지 않고, 미래 성장을 위한 대규모 투자나 신사업 진출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이익을 내부 유보할 명분이 없죠. 배당을 늘려 주주에게 돌려주는 게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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