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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솔루션이 백화점 및 도소매 사업부문인 한화갤러리아(이하 갤러리아)를 인적분할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4월 흡수합병한 지 1년 5개월만에 내려진 결정입니다. 한화솔루션은 케미칼과 신재생에너지, 갤러리아는 백화점 각각 사업부문의 전문성과 사업 지배력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게 분할의 목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업구조 개편은 한화그룹이 태양광 사업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합니다.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30년 만에 찾아온 글로벌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유가를 비롯한 에너지가격이 급등하고, 그에 따라 신재생에너지사업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죠. 이런 흐름에 따라 한화솔루션이 태양광산업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고 보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태양광사업에 집중해야 겠으니, 너희들은 따로 나가서 알아서 먹고 살아라' 했다는 겁니다. 합병 이전의 형태로 돌리는 물적 분할도 아니고, 인적 분할을 한 것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한화그룹은 케미칼 및 신재생에너지와 백화점 부문을 완전히 분리한 것입니다.


합병을 할 때는 뭐라고 했을까요. 한화솔루션이 100% 자회사 한화갤러리아를 합병하기로 결정한 건 지난 2020년말입니다. 합병을 통해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경영효율성을 증대시키겠다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100% 자회사를 합병해 별도 사업부문으로 두면서 사업영역을 확대한다는 건 크게 의미를 찾기 어렵고, 경영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텐데요. 효율성을 높인다는 건 동일한 비용을 투입해 산출을 높이거나, 동일한 산출을 위해 투입하는 비용을 줄인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이질적인 사업인 케미칼과 백화점이 만나 산출을 높이는 효과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니, 아무래도 비용축소에서 목적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 한화갤러리아는 모회사인 한화솔루션에 비해 규모 면에서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2020년 기준 자회사를 제외한 한화솔루션의 개별기준 매출액은 6조원에 육박한 반면 자회사를 포함한 한화갤러리아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4,554억원으로 10%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한화솔루션 입장에서 매출 확대나 비용 축소의 시너지를 기대할 게 없었다는 것이죠.


합병의 이유는 한화갤러리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화갤러리아와 자회사인 면세점업체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2018년 이후 급격한 매출 감소를 겪게 되고 2019년에는 적자 전환 합니다. 사드 사태 여파로 중국인 여행객이 크게 감소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 알았던 면세점 사업이 죽을 쑤고, 쿠팡을 위시한 온라인 유통이 급성장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들이 침체를 겪습니다. 이른바 빅3 백화점(신세계, 롯데, 현대)은 건재했지만 그 아래 백화점들은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났죠.


한화갤러리아는 2017년말 3,000억원(연결 기준) 수준이던 순차입금이 2020년말 8500억원 가까이로 급증하고, 부채비율도 100% 수준에서 287%까지 크게 상승합니다. 수익창출능력은 떨어지고, 차입금 부담은 늘어나니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죠. 지난해 합병은 모회사인 한화솔루션이 위기에 처한 한화갤러리아를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습니다. 꽤 설득력이 있죠



갤러리아를 다시 떼는 것은 이제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한화솔루션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갤러리아와 갤러리아타임월드를 포함한 도소매 부문의 매출이 13% 가량 증가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지난해 연간 매출액의 딱 절반 정도 됩니다. 지난해 도소매 부문의 영업이익도 289억원으로 전년 대비 10배 증가했다고 하더군요.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한화솔루션의 도소매부문 매출액은 내부거래가 제거되지 않았을 겁니다. 내부거래가 제거되지 않은 단순 합산 매출액으로 증가율을 따지는 건 다소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할되는 한화갤러리아(가칭)는 재무적으로 지난해 합병 이전에 비해 확실히 좋아집니다. 승계되는 자산은 1조7173억원으로 합병 이전과 큰 차이가 없지만, 자본이 8,583억원으로 합병 이전(2020년말 기준 5792억원)보다 크게 늘고 부채는 8,590억원으로 합병 이전(2020년말 기준 1조3143억원)에 비해 크게 줄어듭니다. 특히 합병 이전에는 차입금이 8,309억원에 달했지만, 분할되는 한화갤러리아는 사업장과 사무실 등 리스부채 3,925억원으로 감소합니다.



합병 이전 한화갤러리아는 리스부채 외에 차입금과 사채 등 금융채무가 6,243억원(개별 기준)에 달했습니다. 이 금융채무가 한화솔루션에 합병되었다 다시 분할되면서 사라집니다. 그 동안 갚은 것도 있겠지만, 한화솔루션에 남겨놓고 오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한화솔루션의 6월말 현재 금융채무(차입금)는 약 5조원에 달하는데, 고스란히 존속회사에 남습니다. 신설법인 한화갤러리아로 한 푼도 승계되지 않습니다.


신설법인 한화갤러리아의 자회사가 될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도 재무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매출액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2020년 70억원에 불과했던 흑자가 지난해 429억원 으로 크게 늘었죠.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도 전년 171억원에서  335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투자자산을 매각한 돈으로 차입금을 대거 상환해 순차입금이 (-)로 돌아섰습니다.  차입금보다 많은 현금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흑자 규모가 커지고 현금이 크게 늘어난 데 실적호전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게 있습니다. 바로 한화투자증권 주식을 한화자산운용에 매도하면서 대규모 차익이 발생한 것이죠.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한화투자증권 주식 1,132만 여주를 주당 5,640원에 매도해 370억원의 차익을 얻었습니다. 지난해 흑자의 80% 가량 됩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한화갤러리아가 한화투자증권 주식 303만 여주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에 매각했는데, 거래 가격이 2,773원이었습니다. 한화투자증권 매각으로 얻을 이익을 모회사가 자회사에게 몰아준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