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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계열의 시공능력평가 7위 건설사 롯데건설이 지난 18일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습니다. 원자재가격이 오르고 부동산경기가 침체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위해 선제적 대응 차원의 자본확충을 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입니다. 한 마디로 급히 자금이 필요한 문제는 없다는 것이죠.


롯데건설은 대부분 사업장이 수도권에 위치해 입지가 좋고 분양도 잘되고 있다고 합니다. 부채비율도 150% 정도로 높지 않고 그룹과 계열사들이 든든히 뒤를 받치고 있어 걱정이 없다고도 합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가 늘고 있지만 내년 상반기 분양이 잘 되면 해소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 문제가 없는 회사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자금조달이 매우 급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한 직후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에게서 운영자금 목적으로 5000억원을 차입하기로 했는데, 갚기로 한 날이 내년 1월 18일이더군요. 3개월 쓰겠다고 빌린 돈입니다. 증자와 차입으로 무려 7000억원을 마련한 것인데, 급한 불을 끄거나 곧 불이 날 것을 우려해 서둘러 조달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합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기업이 투자를 위한 것도 아니고 운영자금 목적으로 갑자기 대대적인 자금조달에 나서지는 않죠.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상환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회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위한 선제대응이라는 말은 앞으로 재무구조가 나빠질 위험이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유상증자보다 훨씬 많은 단기차입을 한 것은 재무구조보다 유동성 확보에 방점이 찍힌 걸로 보이죠.


최근 증권가에는 건설사와 관련한 흉흉한 루머가 돌고 있습니다. 건설사들이 대규모 건축사업을 하기 위해 발행한 PF ABCP 등 자산유동화증권들이 차환발행에 실패하면서 부도를 맞는 곳들이 곧 나올 것이란 소문이죠. 실제로 충남지역의 중견 건설사인 우석건설의 전자어음이 부도를 내기도 했습니다.대우건설, 롯데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은 프라이머리 CBO(P-CBO)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프라이머리 CBO는 개별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을 모아 그 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증권을 말합니다. 신용이 낮은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을 도와주기 위해 정부가 만든 자금조달 구조인데, 여기에 신용이 높은 대형 건설사들이 참여한 겁니다.


이렇게 건설사 부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외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자금시장이 경색된 데 있습니다만 부도설이 갑자기 확산된 건 강원도 춘천의 레고랜드 사태 후폭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레고랜드 테마파크 건설을 위한 대출채권(차주: 강원중도개발공사)을 기초로 발행한 유동화증권(ABCP)이 부도처리된 사건이죠.


강원도는 지난 2020년 강원중도개발공사를 사업주체로 레고랜드 코리아 개발 사업에 나섭니다. 개발자금 조성을 위해 금융권이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대출을 해주고, 그 대출채권을 담보로 특수목적회사인 아이원제일차(SPC)가 ABCP를 발행합니다. 그런데 지난달 말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대해 법원에 회생신청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ABCP 2050억원이 부도처리됩니다. 강원도가 보증을 선 대출이었는데 상환을 거부했기 때문이죠.



지자체가 보증을 선 ABCP이기 때문에 신용평가사들은 최고 신용등급인 A1을 부여했죠. 최고 신용등급의 어음이 부도를 냈으니 자금시장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 아래 등급의 어음 금리는 폭등을 했고, 건설사들의 어음 융통이 어려워진 겁니다.


롯데건설이 루머에 휩싸였습니다. 단기자금에 문제가 생겨 7일짜리 기업어음을 연 30% 금리로 발행하려다 재무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자 유상증자로 돌아섰다는 소문이 돌았고, 3개월짜리 기업어음을 연 15% 금리로 발행하려고 했지만 증권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 얘기도 돌았습니다.


루머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습니다. 롯데건설은 30%짜리나 15% 짜리 금리의 기업어음 발행을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죠. 롯데건설이 30%의 금리로 차입을 한다니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죠. 롯데건설의 해명을 믿습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롯데건설이 루머의 대상이 된 이유는 있겠죠. 과장이 심하게 되었겠지만 건설사 자금난이 핫 이슈가 되면서 대형 건설사 중 롯데건설에 대해 시장이 우려하고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지난 9월 한국기업평가가 '건설업 신용보강 A to Z-PF우발채무의 실질적 리스크 범위에 대한 KR의 견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건설사가 롯데건설이었습니다. 롯데건설은 지난 6월말 현재 PF우발채무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미착공 비중이 70% 이상으로 높아 우발채무 중 브릿지론에 들어간 신용공여가 많습니다. 또 6개월 이내에 만기도래하는 프로젝트의 비중이 80% 이상이었습니다. PF우발채무의 만기구조가 단기화되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신용경색이 발생할 경우 한꺼번에 상환압박에 직면할 수 있게 됩니다.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면 유동성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죠.


롯데건설의 반기보고서에서 부동산PF 유동화 관련 신용보강 제공 현황을 살펴보았습니다. 6월말 현재 발행된 PF관련 증권에 대한 신용보강은 약 5조원인데, 연대보증과 조건부채무인사가 각각 3514억원과 3821억원이고 자금보충 약정이 4조2820억원으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유동화증권은 ABCP와 ABSTB(유동화전자단기사채)가 각각 약 2조2000억원 수준으로 이 둘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모두 길어야 만기 6개월 짜리로 발행돼서 프로젝트 만기까지 차환을 반복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보통 3개월, 길면 6개월마다 계속해서 만기를 맞습니다.


ABCP와 ABSTB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롯데건설의 PF사업장 대부분이 주택건축(주로 아파트)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주택사업장의 유동화 구조가 대체로 짧은 만기의 ABCP나 ABSTB를 발행하고 건설사와 증권사가 신용보강한 후 투자자들에게 팔려 나갑니다. 만기 때마다 투자자들의 동의를 얻어 차환발행을 하게 되는데, 요즘처럼 금융시장이 불안하거나 건설사 신용에 문제가 생기면 차환에 실패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부동산PF 유동화가 왜 무서운가 하면, 많은 사업장 중 한 사업장에서 문제가 생겨서 유동화증권이 차환발행에 실패하게 되면, 리스크가 해당 건설사의 멀쩡한 다른 사업장에까지 한꺼번에 퍼진다는 데 있습니다. 롯데건설의 사업장이 대부분 수도권에 있어 입지가 좋고 사업성이 우수하다고 해도, 부실한 한 사업장에서 발행된 ABCP나 ABSTB가 차환발행에 실패하면 롯데건설의 모든 사업장에서 발행된 다른 ABCP와 ABSTB도 차환발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죠. 롯데건설이 갑자기 대규모 상환부담에 직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롯데건설은 충분한 현금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대처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유상증자와 계열사 차입까지 동원해 갑자기 7000억원이라는 거금을 끌어 모은 배경으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상증자와  단기차입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선제대응을 한 게 아니라,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서는 돌발적인 상환위험에 부딪힐 수도 있다고 판단한 선제대응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