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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상장사 에이티세미콘이 이달 초 사실상 회사 영업자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패키징사업을 매각하고 2차 전지업체로의 전환 계획을 밝혔는데요. 에이티세미콘의 최대 자회사인 리더스기술투자에도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발표한 반기보고서에서 확인되는 실적은 충격적인 수준입니다. 매출액(영업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반면 순손실은 30% 가량 줄었죠. 영업비용을 전년 동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 적자 규모를 축소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리더스기술투자의 수익 감소는 지난해 에이티세미콘의 인수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3월 결산법인(올해부터 12월 결산법인으로 전환)인 리더스기술투자는 2020회계연도에 440억원의 영업수익을 올렸지만 올해 3월말에는 265억원의 영업수익을 보고해고 이후 6개월간 49억원의 수익을 기록하는데 그쳤습니다. 충격적인 수준의 수익 감소는 경쟁력 약화에 따른 실적 쇼크일까요. 아니면 손실 축소나 사업 구조조정을 위한 의도적인 축소일까요.



리더스기술투자는 1986년 설립되어 1987년 대신개발금융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금융업에 진출했고, 1989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후 대신벤처캐피탈, 제미니투자 등으로 사명을 바꾼 뒤에 2019년부터 리더스기술투자의 사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에 의한 창업투자회사로 최초 설립되었지만 2016년 11월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기술사업금융업자로 등록하였습니다.


리더스기술투자는 벤처회사, 중소 기술기업 등을 대상으로 자금 지원, 투자활동을 영위하는 벤처캐피탈입니다. 장래성이 있지만 자본이나 경영기반이 취약한 기업을 전문투자가의 안목으로 발굴해 지분투자에 참여하고 자금관리, 경영관리, 기술지도 등 종합적인 지원을 제공해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게 본연의 목적입니다. 피투자기업이 성장해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높은 자본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기업주와 함께 높은 투자위험을 공유합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기술사업금융업자의 주업무는 ①신기술사업자에 대한 투자 ②신기술사업자에 대한 융자 ③신기술사업투자조합의 설립 및 조합자금의 관리와 운용 ④신기술사업자에 대한 경영 및 기술의 지도 등입니다. 주요 투자대상이 되는 신기술사업자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개발할 기술을 응용해 사업화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신기술사업을 해야 하고 중소기업이어야 합니다.


신기술사업금융업자가 신기술사업자에게 투자나 융자를 해서 이득을 얻게 되면 법인세를 비과세해 줍니다. 엄청난 혜택이죠. 그런데 함정이 있습니다. 신기술사업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혁신 기술이 아니라 기존 사업의 생산성 향상이나 품질 향상, 제조원가 절감 등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더라도 신기술사업자로 인정 받을 수 있죠. 벤처기업은 따로 인증을 받습니다. 하지만 신기술사업자라고 판단을 해주는 곳은 따로 없습니다.


신기술사업금융업자가 중소기업에 지분투자를 하거나 융자를 했더라도 그 회사가 신기술사업자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신기술 때문이 아니라 단지 주가차익이나 이자수익을 얻기 위해 투자를 했더라도, 마침 그 회사가 어떤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다면 신기술사업에 대한 투자라고 우길 수도 있겠죠. 최근 몇 년간 신기술사업금융회사가 난립하는 이유일 겁니다.



리더스기술투자는 신기술사업금융회사라는 이미지가 약했습니다. 투자조합을 결성해 운용하지만, 조합 자산의 규모가 매우 작아 벤처캐피탈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이고, 오히려 코스닥 시장의 무자본 M&A에 자금을 공급하는 사채업자 비슷했습니다. 특히 기업사냥꾼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면서 전환사채 발행이 매우 잦았고, 상장사의 주식이나 전환사채를 직접 매입한 후 주식으로 전환해 회수하는 패턴을 보였죠. 하지만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돕기보다는 주가상승을 이용해 차익을 노리는 머니 게임 성향이 강했습니다.


에이티세미콘은 리더스기술투자를 인수하면서 사업방향의 수정을 예고했는데요. 향후 성장성이 큰 ICT, 부품소재,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 분야 등에 투자하고,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 지분투자(Buy Out), 투자조합 결성, 기업인수합병(M&A), 프로젝트 투자 등으로 업무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자산의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선진적인 리스크관리 방안을 구축할 뜻을 밝혔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겠다는 얘기지요.


변신이 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제대로 된 벤처캐피탈로 거듭 나려면 기존의 무분별한 투자를 회수하고,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발굴해 투자에 나서야 할 텐데 회수와 신규 투자 모두 부진해 보입니다. 상장 및 비상장사 주식에 대한 직접투자, 메자닌증권(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직접투자 그리고 투자조합의 결성과 운용이 주요 영업이다 보니 주식시장 상황에 따라 영업성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주가가 하락하면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전환가능성이 낮아지고 결국 회수가 지연될 수 밖에 없죠.



지분증권의 규모가 지난 3월에 비해 크게 줄었는데, 삼부토건 전환사채(장부가액 103억원)을 주식으로 전환해 처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3월에 절반(권면 40억원)을 비티아이글로벌에 매각(매각가 약 41억원)하고 남은 것이었죠. 당시에는 처분 공시를 했는데, 나머지를 처분할 때는 공시가 없었네요. 보유 중인 신기술금융자산은 전부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인데, 에이비프로바이오 전환사채는 권면 10억원(장부가 13억원)이 처분되고 이노시스 신주인수권부사채 21억원(권면 20억원)이 추가됐습니다.


그런데 처분한 삼부토건과 에이비프로바이오 전환사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환사채에는 콜옵션이 없지만, 사채금액의 50%에 대해 발행사 또는 발행사가 지정하는 제3자에게 콜옵션을 부여하는 별도의 계약이 체결되어 있었습니다. 주가가 전환가액을 상회해 차익이 발생을 해도 콜옵션이 행사되면 그 차익의 절반을 챙길 수 없죠. 삼부토건과 마찬가지로 에이비프로 전환사채의 절반은 콜옵션이 행사돼 양도되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시장에 매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노시스 신주인수권부사채에 대한 투자도 평범하지는 않습니다. 7월에 101억원 규모로 발행된 이 사채는 ㈜한투오에서 인수를 했던 것인데 이 중 21억원이 리더스기술투자에 넘어온 것이죠. 리더스기술투자는 21억원 전액을 양도자에게 환매할 수 있는 풋옵션을 보유하고 있고 이 경우 이노시스가 발행한 제9회차 전환사채 12억원을 12억6000만원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노시스는 에디슨모터스가 쌍용차 인수의 자금조달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인수한 에디슨이브이(현 스마트솔루션즈)가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로 있는 곳입니다. 에디슨이브이는 쌍용차 인수에 실패한 후 반기보고서 의견거절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려 있죠. ㈜한투오는 쌍용차 인수 시도를 할 때에도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던 장부상 회사입니다.


신기술금융자산으로 분류가 돼 있지만 이노시스와 에이비프로바이오는 무자본 M&A의 대상인 기업들이고 리더스기술투자는 여전히 그 자금줄이 되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리더스기술투자는 콘텐츠 커머스 기업 ㈜레드선, 생활용품 도매업체 블루피셔㈜, 글로벌 여행 모빌리티 앱 '다니다' 등 스타트업에도 올해 신규 투자해 벤처캐피탈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는 43억원 정도로 크지 않습니다. 비전1호조합에 신규 출자를 했지만 역시 5억원에 그칩니다.


비유동자산 중 매도가능금융자산이 크게 감소한 건 MG손해보험에 대한 투자철수 때문입니다. 200억원을 JC어슈어런스 제2호 PEF에 출자해 투자한 MG손해보험이 지난 4월 부실기업으로 지정돼 공개매각절차에 들어가면서 리더스기술투자는 PEF 지분을 전환사채와 상계하는 방식으로 매각했습니다. PEF 지분을 넘기는 조건으로 만기 전 취득한 전환사채는 타법인 주식 등의 취득자금 용도로 발행된 것이었고, 인수자는 다름 아닌 김형준 대표이사와 김 대표의 개인회사 더에이치테크였습니다. 김형준 대표와 더에이치테크는 200억원 전액을 전환사채 담보로 차입했었죠.


이 일로 에이티세미콘(특수관계자 포함)의 지분율은 전환사채의 잠재지분율 포함 32.76%에서 보통주 지분 18.04%로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전환사채를 상환받았으니 김형준 대표와 더에이치테크는 차입금을 상환했어야 할 텐데, 현금이 아닌 JC어슈어런스 제2호 PEF 지분으로 받았으니 이후 처리를 어떻게 했을 지 모르겠군요.



영업의 부진은 자금조달 축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업활동에서 현금유출이 발생하는 리더스기술투자는 투자재원을 주로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으로 조달하는데, 매년 수백억원 규모로 발행되던 이 메자닌 증권들이 최근 6개월동안 43억원 순발행되는데 그쳤습니다.


자금조달에 적극 나서지 않은 이유는 새로운 투자처 발굴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회사인 에이티세미콘의 유동성 문제도 걸림돌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에이티세미콘 역시 전환사채 발행이 빈번한 곳이죠. 리더스기술투자가 에이티세미콘의 연결대상 자회사이니 에이티세미콘의 연결재무제표상 전환사채 부채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죠. 이 전환사채가 모두 유동부채로 분류되다 보니 에이티세미콘의 유동성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은 그 동안 일반적으로 양호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선인 100%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그로 인해 외부감사인이 감사의견으로 에이티세미콘의 낮은 유동비율을 지적하기도 했죠. 자칫하면 한정의견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에이티세미콘의 유동비율은 9월말 현재 기준으로 100%를 크게 상회하게 되었는데요. 이는 본업인 반도체 패키징 사업을 통째로 매각하기로 하면서 유형자산 대부분이 매각예정자산으로 재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족쇄가 풀려서 일까요. 리더스기술투자는 지난달 만기 전 취득하 자기전환사채 280억원을 재매각했습니다. 이중 200억원은 MG손해보험 인수를 위해 김형준 대표와 더에이치테크를 상대로 발행했던 제14회차 전환사채입니다.



리더스기술투자는 지속적인 적자로 결손금이 9월말 현재 859억원에 이릅니다. 자본금 잠식이 진행 중인데 잠식률이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약 20%,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39%에 이릅니다. 대규모 자본확충과 실적의 대폭 개선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어쩌면 에이티세미콘의 본업 매각과 대대적인 자금조달이 리더스기술투자에게 큰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본업을 매각한 것처럼 벤처캐피탈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리더스기술투자도 매각하거나, 대규모로 조달된 자금 중 일부를 리더스기술투자에 투입해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