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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개인 투자자들을 울리던 물적분할이 기승을 부리더니 올 들어서는 인적분할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모 언론은 금융감독원을 인용해 올해 인적분할을 이사회에서 결의한 기업이 모두 13곳으로 12년 만에 가장 많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해엔 3곳에 불과했다고 하네요.
특히 9월 이후 인적분할 공시를 한 기업 이수화학 OCI 현대그린푸드 현대백화점 AJ네트웍스 아주산업 대한제강 한화솔루션 등 8곳이나 되고, 그 이전에는 코오롱글로벌, 파인테크닉스, 유니드(이상 상장사), 더존홀딩스, 한화글로벌에셋, 한화호텔앤리조트, 엔에스쇼핑, 비즈테크파트너스, CNH하스피탤러티가 인적분할 공시를 했습니다. 어라? 13곳이 넘는데요? 어쨌든 올해 하반기 이후 인적분할을 결정하는 기업들이 줄을 잇는 것은 분명합니다.
보도를 한 언론은 인적분할이 늘어난 이유로 LG화학, 카카오그룹, SK그룹 등의 상장사들이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에 대해 개인 투자자들의 여론이 나빠지자, 대안으로 인적분할을 선택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더군요. 글쎄요. 인적분할과 물적분할 모두 기업분할의 방법이니 서로 대체될 수도 있겠지만, 적절한 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의 방법이 다르니, 그에 적합한 용도도 대개는 다릅니다.
물적분할은 회사가 특정사업의 자산과 부채를 따로 떼어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 물적분할을 하게 되면 모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100% 소유하게 되죠. 보통 본업을 남겨 두고 신규 사업이나 보조 사업을 떼어 내죠. 이걸 거래의 관점으로 보면 모회사가 현물출자를 하고 그 대가로 자회사의 주식 전부를 교부 받는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모회사가 자회사를 완전 소유하기 때문에 분할 후 작성하는 연결 재무제표는 분할 전 회사의 개별 재무제표와 같습니다.
인적분할은 회사를 둘로 나누어서 주주가 각각 소유하는 형태입니다. 자산과 부채를 각각 둘로 나누게 되고, 그에 따라 분할된 두 회사의 순자산(자기자본)이 결정됩니다. 주주가 같을 뿐이지 분할된 두 회사는 서로 지분을 보유하지 않게 되는 게 원칙입니다. 별개의 법인격을 갖게 되는 것이죠. 주주가 갖고 있던 분할 전 회사의 주식은 줄어들게 되고, 그에 상당하는 신설회사 주식을 받습니다. 결국 분할로 발행되는 신설기업의 주식을 분할회사에 귀속하느냐, 주주에게 귀속하느냐에 따라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이 나뉜다고 보면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물적분할이든 인적분할이든 한 회사를 단순히 둘로 쪼개는 것이기 때문에 분할 자체 만으로 기업가치가 달라지지 않고, 따라서 주주의 부에도 변화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늘 그렇듯 이론은 이론일 뿐이죠. 분할 후 발생하는 후속 사건들로 인해 대주주와 소액 주주 사이에 이해의 충돌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물적분할은 왜 하는 것일까요.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물적분할과 모자기업 동시상장의 주요 이슈-2022.7 남길남) 2010년 이후 이루어진 377개의 물적분할에서 분할목적으로 '전문화'가 제시된 사례가 무려 92%였다고 합니다. 전문화의 범주에는 경영효율화, 경쟁력 제고 등도 포함됩니다.
공시된 목적이 전문화인 것이지 실제로는 매각이 목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금융감독원이 2010년에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는데, 3년 간 123개 상장사가 물적분할을 했는데 그 중 116개사의 사실상 분할 목적이 매각으로 추정됐다고 하더라고요. 123개 중 49개사는 분할 자회사를 평균 7개월 이내에 매각했고, 신설 자회사는 분할 이후 대부분(60%) 적자가 누적되었으며, 적자 상태에서 매각 처리되었답니다.
최근 5년 동안 전문화 외에 투자유치, 매각, 구조조정 등의 다른 목적을 병기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특히 늘어난 게 투자유치와 매각 목적의 분할이랍니다.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물적분할도 새로 등장했고요.
물적분할로 신설된 자회사가 모회사의 100% 지배를 받으면서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기업가치가 상승하면 주주 입장에서 나쁠 게 없잖아요. 그게 아니라 전문화는 명분일 뿐이고 다른 의도가 있으니 문제인 거죠. 물적분할이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쪼개기 상장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핵심사업이나 미래 먹거리 사업을 물적분할한 후 곧바로 신규 상장(IPO)를 해서 신설 자회사의 지분구조가 바뀌고, 지분이 희석된 모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뚜렷하니 욕을 먹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물적분할의 주된 목적은 자금조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할 후 매각을 하든, 투자유치를 하든, 신규 상장을 하든 모회사 또는 자회사, 또는 둘 다에 신규 자금이 유입됩니다. 가령 신규 상장을 하면서 구주 매출만 하면 모회사에 돈이 들어가고, 신주 발행을 하면 자회사에 자금이 생기죠. 이때 소액주주와 대주주의 이해가 충돌하게 됩니다.
물적분할은 일반 기업도 하고 재벌 기업도 하는데, 재벌기업의 물적분할은 때로 지배구조 개편과 연결됩니다. 분할 후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갖게 되니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죠.
인적분할은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에서 빈번하게 나옵니다. 특히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재벌기업에서 어김없이 인적분할(물적분할을 동반하기도 함)이 이용됩니다.
올해 하반기 이후 인적분할이 갑자기 증가한 배경도 지주회사체제로의 이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초에는 지난해 말까지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과세 이연 특례(지주회사 설립 또는 전환을 위한 주식 현물출자 등의 경우, 현물 출자 등에 따른 양도차익을 출자로 취득한 지주회사 주식 처분시까지 과세 이연)를 주기로 했었는데, 그 일몰시한을 내년 말까지 2년 연장하기로 했거든요. 과세 이연 혜택을 보려면 내년 말까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 겁니다. 최근 인적분할 공시를 낸 기업들의 분할 일정이 내년에 몰려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적분할 후 존속회사와 신설회사의 주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현상이 자주 목격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분할되는 순자산과 주식의 비율(분할비율)이 시장의 기업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의 경우에는 지분만 있는 투자회사와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사업회사로 분할되면서 두 회사 주가의 희비가 엇갈리죠. 그리고 이 같은 주가의 변화는 대주주에게 유리한 지배구조 결과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촉매가 됩니다.
사실 지주회사는 나쁜 지배구조입니다. 오너 일가가 지주회사의 경영권만 확실하게 갖고 있으면, 지주회사 아래에 있는 모든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죠.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사회적 폐해를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과세 이연 혜택까지 주면서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는 이유는 지금의 지배구조가 더 나쁘기 때문이죠.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들이 A사는 B사의, B사는 C사의, C사는 다시 A사의 지분을 소유하는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면서 오너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부의 집중 현상은 물론이고, 가공 자본의 문제까지 야기해 왔으니까요.
우리가 아는 대부분 재벌그룹들의 순환출자 구조는 해소되었습니다. 현대차그룹 등 몇몇 그룹만 남았죠. 이제 세제 혜택까지 줘 가며 지주회사 체제를 독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지주회사 과세이연 특례는 벌써 8차례에 걸쳐 연장되고 있습니다. 2023년에 9차 연장을 해 줄 지도 모르죠.
최근의 사례를 중심으로 기업의 분할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주로 상장사가 대상이 될 것이고, 아무래도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로의 체제 개편과 엮일 것 같습니다. 이슈가 될 만한 개별기업의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에 대해서도 다루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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