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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초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부문이 물적분할해 SK온이 출범한 지 15개월이 지났습니다. 각광을 받던 배터리사업이 쪼개지면서 30만원을 호가하던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하염없이 하락했고 한번도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2차 전지의 성장성을 믿었던 투자자들은 물질적 손해 뿐 아니라 정신적 피해를 봤습니다.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 직원들에게는 10월의 보너스가 지급되었죠. 위로금 차원에서 자기주식 중 일부(46만2745주)를 연봉의 20%만큼 스톡 그랜트(주식 보상)를 주었습니다. 당시 언론에는 총 1229억원으로 보도되었지만, 실제 지급일의 주가로 하면 1122억원 정도 됩니다.


물적분할로 SK이노베이션은 세 회사로 쪼개졌습니다. 계열사 지분이 자산의 대부분인 존속법인SK이노베이션은 지주회사가 되었고, 배터리 사업부문은 SK온으로, 석유개발 사업부문은 SK어스온으로 물적분할해 SK이노베이션의 100%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분할은 SK온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차입금은 SK이노베이션에 남았고, 현금은 SK온에 몰아 주었습니다.



SK온보다 먼저 분할된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지분 매각과 자회사에서 유입된 배당금 약 1조9000억원, SK루브리컨츠(현 SK엔무브) 소수 지분(40%)을 IMM PE에 매각해 유입된 1조1000억원까지 약 3조5000억원에 달하는 현금 중 2조원을 SK온에 주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SK온의 출발은 재무적으로 매우 탄탄했습니다. 2021년말 현재 자산총액 약 6조5800억원, 부채총액 2조5900억원으로 부채비율이 65%(이상 개별 재무제표 기준)에 불과했습니다. 자회사를 포함한 연결실체를 기준으로는 설립 시 현금이 3조원이 넘었습니다.


SK온은 물적분할 후 몸집을 크게 불렸습니다. 2021년말 6조6000억원이던 자산이 불과 9개월만에 1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재무구조는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부채비율이 178.9%로 세 배 가까이 커졌고 차입금도 3조9000억원에 육박합니다. 빚을 내서 자산을 늘린 결과이지요. 연결실체 기준으로도 비슷합니다. 자산이 10조원에서 18조원대로 커지면서 차입금이 10조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부채비율은 300%가 코앞입니다.



가득했던 현금은 빠르게 소진되었습니다. 2조원의 보유 현금에 3조원이 넘는 신규 차입을 했지만 지난해 9월말 현재 현금은 1조3544억원에 불과합니다. 자회사를 포함한 연결실체를 기준으로는 3조원이 넘는 현금에 4조7000억원 가량을 신규 차입하고도 지난해 9월말 현재 2조4000억원 가량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 중입니다.


공격적인 차입이 필요했던 이유는 설비 확장에 있습니다. SK온은 2025년까지 220GWh 이상의 연간 생산능력을 확보해 글로벌 톱3 배터리 회사가 된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2011년부터 약 23조원의 투자를 진행 중인데, 2021년까지 7조원, 지난해 9월말까지 약 9조3000억원을 지출했습니다. 앞으로도 약 14조원을 더 투자해야 하니 갈 길이 멉니다. 2025년까지 대부분의 투자를 일단락 지어야 하니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현금이 너무 빠르게 줄었습니다. 실적이 부진했던 탓입니다. 출범 후 3개월간 영업활동으로 9000억원(연결 기준)이 넘는 현금이 빠져나갔고, 지난해에도 9개월간 1조4500억원의 현금이 사용되었습니다. 재고자산과 매출채권이 급격하게 늘어난 영향이 큽니다. 영업부진으로 현금 소진이 빨라지니 급한대로 차입을 늘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SK온은 중국과 유럽, 그리고 미국 현지 공장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가장 큰 건은 역시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와 50대 50의 지분율로 설립하는 블루오벌SK입니다. 두 회사가 각각 5조1175억원씩을 투자하고, 블루오벌SK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를 전량 포드에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투자기간이 SK온 출범시기인 2021년 10월부터 6년간입니다. SK온 물적분할의 결정적 계기로 보입니다.


SK온은 지난달 2조8243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차입금이 이미 턱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5조원이 넘는 투자를 추가 차입으로 끌고 가기는 무리였을 겁니다. 유상증자는 그 자체로 새로운 현금이 수혈될 뿐 아니라 재무구조 개선으로 차입여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상증자에는 SK이노베이션이 2조원을 참여하고 재무적 투자자들이 8243억원을 투입합니다. 유상증자 납입대금은 미국 자회사인 SK배터리 아메리카(SK Battery America, Inc)를 거쳐 주로 블루오벌SK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SK배터리 아메리카는 미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고 미국 포드사와 합작 계약을 한 당사자입니다.



신규 증자 전까지 SK배터리 아메리카에는 약 8억5650만 달러가 출자된 것으로 추정되고 SK온의 유상증자 대금이 납입되면 추가로 9570억원(744.8백만 달러)의 추가 출자가 이루어집니다. 이를 재원으로 블루오션SK에 처음으로 8975억원(690.8백만달러)이 출자됩니다.


블루오벌SK에 대한 첫 출자액은 예정보다 줄어든 것입니다. 당초에는 SK배터리 아메리카에 1조2083억원(약 9.3억달러)가 출자되고, 블루오벌SK 증자가 거의 같은 금액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첫 투자액이 줄어든 이유는 아마도 SK온의 유상증자가 목표에 미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SK온은 설비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차입에 의존할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3월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기업공개 시기를 2025년 이후로 본다면서 상반기 중 프리IPO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기업가치(주식가치)를 30~50조원으로 보고, 프리IPO로 10%에 해당하는 3조~5조원을 재무적 투자자에게서 조달할 예정이었죠. 설비투자의 주요 재원을 프리IPO 성격의 유상증자로 보았던 셈입니다.


하지만 실적 악화와 배터리사업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면서 시장에서 보는 SK온의 기업가치는 20조원 정도로 SK그룹의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투자자들과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약속한 상반기는 성과 없이 넘겼고 프리IPO를 맡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이하 한국투자PE)는 지난해 9월경 프리IPO의 목표를 2조원으로 낮춰 잡아야 했습니다.


지난달 발표한 유상증자는 프리IPO의 부분적 성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당 5만5000원에 신주를 발행하기로 했으니, 기존 발행주식 수가 4억주인 걸 감안하면 몸값으로 2조2000억원을 인정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매우 다른 결과입니다.


2조원어치의 보통주는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대기로 했고, 전환우선주로 발행되는 8243억원만 한국투자PE가 모집한 금액입니다. 3조~5조원이었던 프리IPO 계획이 80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입니다. 주식시장 상황이 나빠진 탓이 분명히 있겠지만, 22조원의 몸값을 인정하고 프리IPO에 참여한 기관투자가들의 수요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프리IPO자금은 대부분 사모펀드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가장 많은 전환우선 신주를 인수할 한국투자이스트브릿지글로벌그린에너지 제1호 사모투자합자회사는 한국투자캐피캐피탈(20%) 등 18인이 출자했고, 한국투자2022사모투자합자회사는 산업은행이 20%, 한국투자PE가 12.9%를 출자했습니다. 한투한화디지털헬스케어 제1호 사모투자합자회사는 한국증권금융이 신탁업자로서 29.1%, 한국투자PE가 9.7%를 출자했습니다. 한투에스지 제이호 유한회사는 한투에스지 기업재무안정사모투자 합자회사가 100% 출자한 회사입니다.


이렇게 사모펀드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그 진실된 정체를 알기 어렵습니다. 사모펀드가 전액 출자를 받은 것인지, 일부만 출자이고 나머지는 펀드의 차입인지 알 수 없고, 출자자가 장부상회사(SPC)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펀드가 차입했거나 펀드 출자자가 차입했다면, SK온이 발행하는 전환우선주는 자본이지만, 실제로는 차입의 성격을 띠게 될 수도 있습니다.


SK그룹은 자금조달을 하면서 앞면은 자본인데 뒷면은 차입인 그림자 금융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대표적인 곳입니다. 분명히 주식을 발행해 자금조달을 했는데, 그 끝에는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받기로 한 투자자가 있죠. 바로 주식 유동화라는 겁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실트론 주식을 유동화해 한국투자증권과 TRS계약(총수익스왑계약)을 맺고 있고, ㈜SK도 SK실트론, SK해운 주식을 같은 방식으로 유동화했습니다. SK디스커버리는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SK에코플랜트 지분을 매각할 처지에 놓이자 미래에셋대우증권과 TRS계약을 맺고 특수목적회사에 지분을 양도했습니다. 특수목적회사에 지분을 양도하고 TRS계약을 맺는 것을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겠지만, SK그룹의 사례는 차명에 가깝다고 봅니다.


사모펀드 뒤에 숨어 있는 진짜 투자자들의 정체는 시간이 흐르면 드러나겠죠. 그리고 그 투자자가 SK온의 성장성을 기대한 재무적 투자자인지, SK그룹이 외부 금융기관의 도움을 얻어 차입 비슷하게 조달한 것인지도 말이죠. 아무튼 SK온의 향후 투자 규모와 스케줄을 감안할 때 이번 증자는 자금조달의 시작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