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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통업계 쌍두마차인 신세계와 롯데쇼핑이 인천에서 10년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롯데쇼핑은 인천대입구역 5번 출구 앞에 복합쇼핑몰인 롯데몰 송도를 2025년 준공 목표로 공사 중입니다. 롯데는 인천 지역에 백화점 1개, 대형마트 10개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대형 복합쇼핑몰인 롯데몰 송도의 준공까지 앞두고 있어 인천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롯데몰 송도 부지 바로 길 건너편에는 신세계백화점 송도점 부지가 있습니다. 신세계가 2015년 자회사 인천신세계를 설립하고 이 부지를 2300억원에 매입했습니다. 2019년까지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포함한 라이프스타일 복합쇼핑몰을 건립할 계획이었는데, 전혀 진척이 없다고 합니다. 신세계는 그 대신 SSG야구단을 인수하고 인천광역시와 함께 청라에 야구 돔구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했고,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청라를 2027년까지 완공할 계획이죠. 송도에서 롯데에 맞불을 놓으려다 전장을 청라로 옮긴 듯한 상황입니다.
롯데는 롯데몰 송도 부지를 2011년 1450억원에 매입했고, 2015년까지 백화점, 영화관, 쇼핑몰, 오피스텔 등을 지을 예정이었지만 2019년까지 오피스텔만 준공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공사를 지연했다고 세금을 두드려 맞기도 했죠. 신세계는 롯데백화점이 들어설 것으로 알고 2015년 길 건너 땅을 사들였던 것이고요.
롯데와 신세계가 인천지역에서 이렇게 대놓고 싸우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단순한 상권 확보 경쟁이 아니라 자존심 싸움이죠. 그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인천 최고의 백화점은 인천종합터미널 부지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이었습니다. 전국 신세계백화점 중 매출 4위를 자랑할 정도로 입지가 뛰어났죠. 신세계백화점은 1997년부터 20년 장기 임대로 이 부지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말 인천광역시가 인천종합터미널 부지를 롯데에 매각하게 됩니다. 신세계는 졸지에 맞수인 롯데를 땅주인으로 맞이하게 됐고 세입자 신세가 되었죠. 임대계약이 끝나면 쫓겨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수년 간의 소송전을 벌였지만 결국 2018년말로 신세계백화점 간판이 내려가고 백화점 건물은 리뉴얼을 거쳐 롯데백화점 인천점으로 탈바꿈합니다.
신세계그룹에게 이 사건은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광주종합터미널 부지에 있는 광주신세계마저 뺏길까 봐 2013년 4월 땅 주인인 금호그룹과 서둘러 임대차계약을 변경했죠. 연간 임차료 80억원을 없애는 대신 보증금을 270억원에서 5270억원으로 대폭 늘리고 임대차 기간을 2033년까지 20년 장기로 바꾸었습니다.
롯데그룹은 경쟁사가 입주해 있는 인천종합터미널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9000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썼습니다. 그 중 최소 7000억원이 빚이었습니다. 그 빚은 여전히 롯데쇼핑의 장부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롯데그룹은 인천터미널 부지 매입을 위해 2012년 12월18일 롯데인천개발을 설립합니다. 롯데호텔, 호텔롯데, 롯데건설 등 3개 계열사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소재 투자기업인 Sapas Investment가 2013년말까지 롯데인천개발에 총 1000억원의 자본을 출자합니다. Sapas는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 회사 역시 롯데인천개발보다 약 열흘 앞서 설립되었거든요.
롯데그룹과 인천광역시는 2012년 12월 26일 7851억원에 부지 매매 약정을 맺습니다. 그리고는 2013년 1월말 9000억원을 가격을 높여 최종 매매계약을 체결 후 4월 부동산 매입을 완료합니다. 롯데인천개발은 9000억원 중 7300억원을 한 곳에서 차입했습니다. 돈을 빌려준 곳은 에이치앤디에이블 유한회사였습니다. 에이치앤디에이블(유)는 상법상 유한회사이지만 관련 법률상 직원을 둘 수 없고 사실상 명의상의 이사인 비상근임원만 존재하는 서류상의 회사(페이퍼컴퍼니)였습니다. 오로지 자산유동화업무만을 수행하기 위한 특수목적회사(SPC)로 실제 업무는 현대증권이 수행했죠. 롯데인천개발은 또 에스인천개발제일차(유)라는 SPC를 통해서도 1200억원을 추가 차입하는데, 인천종합터미널 부지 개발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부지를 매입한 것부터 개발자금까지 전부 차입금이었던 셈이죠.
에이치앤디에이블(유)는 일종의 브릿지론을 조달하기 위해 필요했던 곳이고 진짜 유동화는 3개월 후인 2013년 5월 시작됩니다. 7300억원의 대출채권 중 7000억원이 또다른 SPC 에이치앤디에이블제이차(유)에 양도되고, 본격적으로 유동화프로그램이 가동됩니다. 대출채권을 기초로 8044억원의 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발행되고 기업어음이 발행된 날 롯데인천개발이 남은 대출채권 300억원을 에이치앤디에이블(유)에 상환합니다.
에이치앤디에이블제이차(유)는 1-1회차부터 1-19회차까지 총 19회차의 ABCP를 발행합니다. 1-1회차는 3개월 만기, 1-2회차는 6개월 만기 식으로 매회차마다 3개월씩 만기가 늘었고 마지막 1-19회차의 만기는 5년 후인 2018년 2월 23일이었죠. 1-1회차부터 1-18회차까지는 이자지급을 위한 58억원짜리 발행이었고 1-19회차는 원금 7000억원 상환을 위한 발행이었습니다.
공모로 발행된 ABCP는 현대증권과 다이와증권이 각각 4022억원씩을 인수한 뒤 기관투자가에게 팔려 나갔습니다. 구조화된 금융상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개인투자자에게는 배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ABCP의 상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인천종합터미널 부지가 담보로 맡겨진 것은 물론이고 롯데인천개발의 주주인 롯데계열사들은 연대해 에이블앤디에이블제이차에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롯데인천개발은 지난해 롯데쇼핑에 흡수합병되어 사라졌고, 7000억원을 빌려주었던 에이치앤디제이차(유)도 없습니다. 5년 만기로 빌렸던 차입금은 한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원금이 8000억원으로 늘어, 롯데인천개발을 합병한 롯데쇼핑의 빚이 되었습니다.
롯데쇼핑의 재무제표에는 8000억원짜리 장기차입금이 있는데요. 차입처는 엘인천제일차(유)와 엘인천제이차(유)라는 곳입니다. 에이블앤디에이블제이차(유)를 대신해 2018년 다시 유동화프로그램을 가동한 장부상회사입니다. 만기인 5년이 지나자 다시 유동화회사를 설립해 만기를 연장한 것인데요. 새로운 만기는 올해 2월23일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롯데쇼핑이 다음달 8000억원의 유동화차입금을 무리 없이 상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최근 롯데계열사 중 롯데건설이 부동산PF 우발채무 때문에 대대적인 자금조달을 하고 있지만, 롯데케미칼과 함께 그룹의 핵심 회사인 롯데쇼핑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죠. 롯데쇼핑 역시 자금사정이 녹록치 않기 때문입니다.
2018년 8000억원으로 늘어난 롯데백화점 인천점 관련 차입금은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 유동화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남은 이야기는 후속편에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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