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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PF 시장에 2차 폭풍이 부는가 봅니다. 지난해 11월초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롯데건설이 유동성 위기 루머에 휩싸이면서 부동산PF 이슈를 시리즈로 다룬 적이 있었는데, 결국 롯데건설은 자칫하면 큰 일이 날 뻔했습니다. 메리츠금융그룹과 1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맺으면서 가까스로 유동성위기를 봉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PF 위기는 진행형입니다. 이번에는 태영건설의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습니다. 롯데건설과 마찬가지로 부동산PF 유동화증권을 상환하기 위해 모회사인 티와이홀딩스에서 긴급하게 4000억원을 연이자율 13%로 차입했죠. 티와이홀딩스는 자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같은 금액을 같은 금리로 글로벌 사모펀드 KKK에서 차입했고요.


사실 태영건설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부동산PF 우발채무가 현실화되었습니다. 시행사 채무를인수하거나 장부상회사(SPC)를 통해 발행한 유동화증권을 인수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했거든요. 유동화증권의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죠. 태영건설이 위기를 잘 수습할 수 있을지는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롯데건설과 달리  모그룹의 규모가 크지 않고 짱짱한 계열사들이 없어 그룹의 충분한 지원이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


부동산PF 문제가 롯데건설과 태영건설만의 문제는 아니죠. 거의 모든 건설사들이 상당한 규모의 PF 우발채무를 안고 있고, 차환리스크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차하면 건설업계는 물론 금융권과 금융시장 전체를 흔드는 대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금융당국에서도 이를 모를 리 없으니 어쩌면 부동산PF 시장의 구조 자체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완전히 바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롯데건설 사태부터 복습을 해 보겠습니다. 회사에서 뿌린 지난 6일 보도자료를 보니 이건 뭐, 엄청난 대성공인 것처럼 자랑을 늘어 놓았더군요. ▲메리츠증권 주간으로 부동산PF 유동화증권 1조5000억원을 매입해 '안정적인 재무구조 확보 ▲메리츠증권이 사업성이 뛰어난 우량 프로젝트에 주목해 채권매입 결정 ▲롯데건설의 4500억원의 회사채 완판으로 회사채 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예상 ▲자금 안정화로 계열사 차입금 9000억원 조기 상환 ▲1조7000억원의 PF차환 성공 및 향후 만기도래 PF물량에 대한 대비 ▲롯데건설의 재무건전성 개선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하지만 액면을 보면 참 민망할 따름입니다. 한때는 돈 많기로 소문났던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이 부동산PF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제대로 군기 잡혔습니다.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거의 모든 은행과 증권사를 찾아다니며 손을 벌려야 했고, 굴욕적인 수준의 차입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 직후 롯데건설이 휩싸인 루머는 단기자금에 문제가 생겨 7일짜리 기업어음을 연 30%로 발행하려고 접었고, 3개월 만기 기업어음을 연 15% 금리에 발행하려고 했는데 증권사들이 거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롯데건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죠.


그런데 사후적으로 일부 사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동산PF를 기초로 발행한 ABCP와 ABSTB등의 차환발행이 어려워지자 롯데건설은 우선 롯데케미칼에서 5000억원을 석 달간 차입하고 곧 이어 10월25일부터 금융권을 돌아다니며 약 1조7760억원을 조달합니다. 롯데정밀화학과 우리홈쇼핑에서도 각각 3000억원과 1000억원을 추가로 빌리죠. 또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일본 롯데홀딩스 등에서 1782억원을 공급받습니다.



여기까지가 1차 자금조달로 보입니다. 롯데건설은 이 자금 등을 재원으로 만기도래한 유동화증권을 매입 또는 상환하는 데 사용했죠. 장부 밖에 있던 우발채무가 장부 안으로 들어와 현실 채무가 된 겁니다. 조달한 차입금 중 일본 미즈호에서 담보대출받은 1500억원과 롯데정밀, 우리홈쇼핑에서 빌린 4000억원을 먼저 갚습니다.


거래가능한 금융기관은 거의 다 찾아간 것 같습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기업은행, 농협과 시중은행인 하나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지방은행인 부산은행, 외국계 또는 외국 금융기관인 SC은행, 미즈호, SMBC, 국내 증권사인 KB증권,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에서 일반대출, 담보대출, 단기CP발행 등의 방법으로 차입했죠. 다행히(?) 부산은행을 제외한 지방은행이나 저축은행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


차입기간이나 금리조건은 쑥스러운 수준입니다. 국내 증권사들이 12월19일 인수한 2800억원 규모의 14일 또는 16일 만기인 초단기 차입금을 연 10% 금리로 빌렸습니다. 은행권 차입은 증권사보다 금리가 낮은 게 보통이지만, 만기가 상대적으로 길었고 급하게 빌린 것이니 대체 금리를 얼마까지 쳐 주었을 지 상상이 안 갑니다. 모르긴 몰라도 평균 10%는 넘었을 것 같습니다.


차입기간이 대부분 단기였습니다. 7870억원의 만기가 다음달 17일까지 도래합니다. 그 중에는 20일 현재 만기가 이미 지난 것도 4300억원이나 됩니다. 부산은행 담보대출 1000억원과 SMBC가 인수한 사모사채 400억원을 빼면 전부 올해 안에 만기를 맞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쉽게 진화되지 않았습니다. 차환에 실패하는 유동화증권을 금융권 차입으로 전부 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차환을 위해 고금리를 감수하며 증권사 문을 두드립니다. 메리츠증권과 접촉한 게 이 시기쯤 되나 봅니다. 특정 사업장 PF의 리파이낸싱을 메리츠증권에 제안해 거래를 하기로 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뒤늦게 안 메리츠증권이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합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20% 금리도 감수하겠다며 다른 PF물량도 리파이낸싱해달라고 했다더군요. 거래가 깨질 뻔 한 거죠.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롯데지주가 해결사로 나서고 개별 PF별로 접근하던 메리츠증권과 거래 규모를 대대적으로 키우죠. 부동산PF 문제로 롯데건설이 고생하던 중에 자금지원 등에 전혀 나서지 않았던 롯데지주가 사실상 처음 무대에 나서 1조5000억원 규모의 펀드 조성이 이루어집니다. 메리츠그룹과 투자협약식에도 롯데지주 사장이 직접 참석합니다. 석 달간 이어져 오던 유동성 위기가 봉합되는 순간입니다.


계열사 차입금과 금융권 단기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발행한 전환사채와 공모사채도 롯데건설 입장에서는 낯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5년 만기 전환사채는 10.03%의 만기수익률로 지난해 말 발행되었는데, 그 정도 금리의 전환사채는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최근 코스닥기업의 잡주들이 발행하는 전환사채도 금리가 5%를 넘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게다가 전환사채를 인수한 에스프로젝트엘과는 3년 후 상환을 약속한 모양입니다. 에스프로젝트엘의 수익률 보장을 위해 호텔롯데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했는데요.  계약을 한 내용을 보면, 롯데건설과 에스프로젝트엘이 전환사채를 상환하고 상환 받기로 함에 따라 TRS계약을 해 호텔롯데가 차액을 정산하기로 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TRS 계약이 2025년 12월 30일까지입니다. 차액 정산 시기가 3년 후이니 전환사채 상환도 그때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롯데건설은 전환사채와 공모사채가 완판되었다고 자랑하지만, 전환사채는 사모로 발행된 것이지 판매된 게 아니고, 공모사채는 예정 물량이 전액 발행되었지만 역시 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500억원을 발행하기 위한 수요예측에는 1600억원의 주문만 들어왔고, 900억원은 인수사 중 하나인 산업은행이 미매각으로 떠안았습니다. 1600억원의 주문 중 1200억원은 채권시장안정펀드였고 기관투자가는 100억원짜리 두 곳과 200억원짜리 한 곳이 참여했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이 공모사채는 신용등급이 무려 AA+였습니다. 사실상 최고 신용등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롯데건설의 신용이 아니라 대주주인 롯데케미칼이 보증을 서서 발행됐거든요. 게다가 만기가 고작 1년짜리였습니다. 이런 채권을 발행하면서 기관투자가 세 곳에서 300억원을 모으느라 인수사로 동원한 증권사가 9개사(산업은행 포함)나 됩니다. 인수사들은 별로 한 일도 없이 5억원의 수수료를 챙겼죠.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었을까요.



1조5000억원의 유동화증권 매입자금은 메리츠금융그룹(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메리츠캐피탈)의 선순위 대출 9000억원, 롯데그룹 계열사(롯데정밀, 롯데물산, 호텔롯데)의 후순위 대출 6000억원으로 조성됩니다. 유동화증권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먼저 손해를 보는 구조이죠. 일종의 볼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동화증권을 매입하는 샤를로트제일차와 샤를로트제이차는 롯데건설의 부동산PF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으로 1조5000억원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게 될 텐데요. 메리츠금융그룹의 선순위 대출금에는 연 13%, 롯데그룹 계열사의 후순위 대출금에는 연 14%의 이자를 준다고 합니다. 그 정도 이자를 주고도 부동산개발 사업에서 이익이 남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롯데건설이 뒷일을 생각할 사정이 아니었겠죠.


비록 위신이 떨어지고 자괴감이 들었을 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롯데건설은 얻은 게 더 많습니다. 샤를로트제일차와 제이차에 넘긴 PF의 만기는 14개월입니다. 그 동안 차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마도 1조5000억원의 유동화증권 중 상당 수는 롯데건설이 금융권의 고금리 차입으로 매입한 것이겠죠. 샤를로트에 그 증권들을 되팔았으니 그걸로 금융권 차입금을 어느 정도 갚을 수 있겠습니다.


재계 서열 5위의 대단한 그룹이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에 납작 엎드려야 할 때가 있는 법이죠. 롯데그룹이 저자세로 나섰기 때문에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잘 한 일이죠. 보도자료도 그렇게 겸손하게 썼으면 훨씬 좋아 보였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롯데건설의 부동산PF는 더 이상 문제가 없는 걸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여전히 PF 우발채무가 너무 많고 질도 썩 좋지 않습니다. 올해 상반기 중 차환해야 할 물량의 비중도 여전히 높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