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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에서 물적분할된 LG에너지솔루션이 기업공개(IPO)를 한 지 딱 1년이 됐습니다. 2차 전지 테마의 큰 인기에 힘입어 그야말로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죠. LG에너지솔루션이 주당 30만원에 발행한 신주(4250만주)에는 무려 235조원의 청약이 이루어졌고 주가는 59만8000원까지 수직 상승했습니다. IPO로 LG에너지솔루션은 시설투자와 M&A에 사용할 12조75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고 모회사인 LG화학은 보유주식 2억주 중 극히 일부인 850만주를 구주매출해 2조550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습니다.


LG화학(연결)은 2차전지 부문의 분할 후 상장으로 엄청난 재무개선 효과를 얻었습니다. 분할 전인 2021년말과 분할 후인 2022년 3월말 연결재무제표를 비교하면 자산은 51조원에서 64조원으로 커졌고 자본도 23조원에서 35조원으로 늘었습니다. 현금(단기금융상품 포함)이 4조원에서 14조원으로 증가하면서 무려 10조원에 달했던 순차입금(총차입금에서 현금을 차감)은 2700억원 수준으로 급감했죠. 보유 현금으로 거의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120%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순식간에 81%대로 떨어져 재무구조 역시 건실해 졌습니다. 30%에 육박했던 차입금의존도(자산 대비 차입금 비중)도 20%에 더 가까워 졌죠. 이른바 쪼개기 상장으로 투자자들은 피해를 입고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지만, LG화학은 재무적인 측면, 유동성 측면에서 상당한 수혜를 입은 게 사실입니다.



모회사 LG화학이 8000억원의 회사채를 공모 발행했습니다. 당초 4000억원으로 발행을 하려다가 수요가 워낙 많이 몰리는 바람에 규모를 두배로 늘렸습니다.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한 수요예측에 3조800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지난해에는 자회사 기업공개에서 흥행몰이를 하더니 올해는 회사채 발행으로 흥행에 성공한 셈이죠.


언론들은 앞다투어 LG화학의 회사채 발행 소식을 전했습니다. '4000억원 모집에 3.8조 몰려', '회사채 완판 성공' 등 흥행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시장이 사랑하는 LG화학'이라는 좀 낯간지러운 제목도 있더군요. 한발 더 나아가 우량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 회복을 기대하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LG화학이 왜 8000억원이나 되는 자금을 차입(회사채 발행도 광의의 차입입니다)하기로 했는 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보도가 없습니다. 불과 1년 전에 주식시장에서 15조원의 거금을 쓸어 담은 LG화학이 뭐가 아쉬워 금리도 높은 이 시국에 빚을 늘리면서까지 현금 확보에 나서느냐는 말이죠.


회사채 발행자금 8000억원은 2월에 만기가 되는 기존의 사채 5900억원을 상환하는 데 우선 쓰일 예정입니다. 남은 2100억원으로는 2월에 결제일이 되는 납사 등의 원자재 구매대금(매입채무)을 지급하게 될 것입니다.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금리는 1.57%와 2.88%였습니다. 새로 발행할 회사채 금리는 3.7~3.8% 정도 됩니다. 최소 1%포인트 최대 2%포인트 이상의 이자를 더 주어야 합니다. 만기도래액보다 발행액이 더 늘어나면서 122억원이던 연간 이자비용이 300억원으로 늘게 되었습니다.


금리가 단기간에 두배 또는 세배 이상 급등한 시기에 차입금을 갚아야 할 상황이 됐을 때, 기업은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한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겠지만 현금이 남아도는 기업이라면 돌려 막기 보다는 우선적으로 상환할 것을 고려하는 게 상식적일 것입니다.


LG화학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연결실체 LG화학의 현금유동성이나 재무안정성은 매우 우수하다는 것이죠. 물론 LG에너지솔루션을 1년 전 주식시장에 상장한 효과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LG화학의 우수한 재무상태는 LG에너지솔루션이라는 자회사를 보유한 데서 오는 착시효과입니다. 8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주체인 모회사 LG화학은 만기도래한 회사채를 현금으로 상환할 만큼 자금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현금 잔고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개별회사 LG화학의 현금유동성은 지난해 9월말 1조2000억원 정도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 구주를 팔아 마련한 2조5500억원을 다 지출하고 2021년말 수준으로 회귀했습니다. 총차입금은 7조8000억원, 순차입금은 6조5000억원으로 모두 사상 최대입니다. 현금성자산이 유동성차입금 1조원을 웃돌기는 하는데, 아마 그 후로 달라졌을 겁니다.



그 많은 현금이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일부 언론에서는 투자부담을 거론합니다. 2021년에 5조9000억원, 2022년에는 9월까지 6조1000억원을 자본적 지출에 썼고, 2030년까지 매년 최소 4조원의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8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이 앞으로의 투자비 부담을 좀 줄여줄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닙니다. 그건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한 연결회계 기준입니다. LG화학은 지난해 1조3000억원대의 자본적 지출을 했고 향후 석유화학사업과 첨단소재 사업에 예정된 투자액은 1조4000억원대입니다. 2차 전지에 대한 투자는 LG화학이 아니라 LG에너지솔루션이 해야지요. LG화학의 회사채 발행으로 2차 전지에 대한 투자부담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LG화학이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자회사에 지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개별 실체인 LG화학 입장에서 그건 자회사 증자나 대여금에 해당하지 자본적 지출이 아니죠. 두 회사는 하나의 연결실체이지만, 회사채를 발행한 돈은 모회사의 것이지, 자회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캐시카우인 석유화학부문의 실적 부진으로 살림이 궁핍해졌기 때문이죠. LG화학은 지난해 9월까지 영업활동에서 1773억원의 현금흐름을 창출했습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주요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상승해 석유화학부문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2조원 이상 감소한 데다 외상매출 증가로 매출채권 등 운전자본에 1조8000억원이 묶이는 바람에 영업에서 현금창출에 실패했죠.


그런데 자본적 지출과 배당금으로 약 2조2000억원을 지출했습니다. 예년보다 크게 늘어난 건 아닙니다. 평년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업으로 번 돈이 없으니 2조원 이상의 현금 부족이 생겼죠. 결국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소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으로 들어왔던 현금이 거의 전부 빠져나가게 되었죠.



LG화학은 지난해 마지막 분기에 유상증자나 대규모 차입을 한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렇다할 별도의 대규모 투자나 M&A를 하지도 않았죠. 영업 외적으로 현금이 크게 들어오거나 나갈 게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2500억원대의 자사주 매각을 한 게 있지만 고려아연과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기 위해 주식을 상호 교환한 것이라 현금유입 효과는 없었죠. 결국 회사채 발행 전 현금 사정은 지난해 4분기 실적에 좌우될 겁니다. 부진했던 현금흐름이 몰라보게 호전되지 않았다면 9월말 1조2000억원인 보유 현금이 극적으로 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올해초 목돈이 나갈 일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크게 보도되었던 미국 항암제 기업 아베오 파마슈티컬스(AVEO Pharmaceuticals) 지분 100% 인수대금을 납입하기로 한 날이 올해 1월 18일이거든요. 지난해 10월 계약 당시 LG화학이 지불할 합병대가는 5억6600만 달러였는데 최종적으로 5억7100만 달러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달러/원 환율이 1400원대에서 1200원대로 떨어지면서 원화기준으로는 8131억원에서 7072억원으로 줄었죠.


AVEO는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된 바이오기업인데, LG화학이 인수계약을 하기 전 주가는 주당 7~8달러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LG화학이 두 배 수준인 주당 15달러에 발행주식 전부를 인수하기로 했죠. 거의 100%의 프리미엄을 주고 산 셈이니, AVEO 주식 보유자들은 노가 났습니다.



AVEO는 미국 FDA에서 승인한 항암제를 개발했고 향후 전망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재무나 손익 상황은 썩 좋지 못하죠. 2021년 연간 매출이 4230만 달러이니 대략 500억원쯤 되는 셈인데, 5334만달러(대략 600억원) 정도의 적자를 냈습니다. 지난해엔 9월까지 7667만 달러로 매출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적자는 2178만 달러 수준이니 실적호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연간 매출이 1000억원쯤 될 것 같은데 그 7배나 되는 7000억원을 지불하고 살 만큼 향후 성장성과 수익성이 월등한 지는 아직 알 수 없죠. LG화학이 앞으로 증명해야 할 부분입니다.


어쨌든 올해 1월 18일 LG화학은 AVEO 주주들에게 지급할 현금 7000억원이 필요했고, 그 와중에 5900억원의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4분기 자금사정이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면, 실제로 현금이 완전히 바닥날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LG화학은 회사채 발행을 4000억원으로 결정하면서 투자수요가 충분히 들어오면 발행규모를 8000억원까지 늘리기로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7000억원 지출이 예정된 상황에서 5900억원의 회사채를 현금 상환하기에는 무리가 따랐을 것이고, 가능하면 AVEO 인수로 비게 되는 잔고를 채우고 싶었을 겁니다. 다행히 LG화학의 회사채에 기관투자가들의 러브콜이 쏟아졌고, 바람대로 8000억원으로 발행 규모를 늘릴 수 있었던 셈입니다. 8000억원은 27일 LG화학 계좌로 입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