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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엠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 최대주주 이수만씨가 경쟁사인 하이브에 지분 14.8%를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죠. 하이브는 이와 더불어 다음달 1일까지 주당 12만원에 에스엠 주식을 25% 공개매수할 예정입니다. 공개매수가 계획대로 이루어지면 하이브는 에스엠 지분 39.80%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에 등극하게 됩니다.


오늘(14일) 에스엠 종가가 주당 11만6000원으로 공개매수 가격과는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주가가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는 주주는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을 테니, 하이브가 예정대로 목표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을 호재로 최근 주가가 R급등한 점을 감안하면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도 할 수 없죠.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나오겠죠.


이수만씨는 지분 매각 후 3.6%의 지분만 보유하게 됩니다. 최대주주 지위를 하이브에 넘긴 후에도 최소한의 지분을 보유해 에스엠을 공동 경영하겠다는 생각인 모양이죠. 다만, 이 지분은 하이브가 에스엠을 최종 인수한 날(기업결합승인일 또는 거래종결일로부터 1년이 되는 시점 중 빠른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하이브측에 매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가 인수하는 지분은 더 있습니다. 이수만씨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하고 있는 에스엠의 계열사 드림메이커(Dream Maker Entertainment Ltd.)와 ㈜에스엠브랜드마케팅 지분을 매수할 예정입니다. 매입가액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 두 회사는 이수만씨와 반대편에 있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던 관계사들입니다.


하이브는 이수만씨에게 다음달 2일까지 4228억원의 지분 매입대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25% 지분의 공개매수도 그 시점에 마무리해야 하니 7142억원이 더 필요합니다. 드림메이커와 에스엠브랜드마케팅 지분을 제외하고도 총 1조1371억원을 목돈이 들어갑니다.


하이브에 현금이 많기는 하지만 단기간에 1조원 이상을 쏟아부을 정도로 차고 넘치지는 않습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기업공개 등 유상증자와 차입으로 3조원 이상을 조달했지만 해외사업 거점 확보, 전략적 제휴 등을 위한 투자에 거의 다 썼습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하이브의 현금유동성은 현금 등 2972억원과 금융기관 예ㆍ적금 5700억원 등 약 8700억원 정도인데, 이중 2000억원은 은행 차입금에 담보로 잡혀 있습니다. 조기에 현금화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금융자산 약 2000억원 가량이 더 있지만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1조원 남짓일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하이브가 추진하는 다른 투자와 하이브 지분 인수가 시기적으로 맞물려 버렸습니다. 해외 레이블 인수를 위해 미국 자회사인 하이브 아메리카(HYBE America Inc.)에 다음달 7일 3391억원을 출자할 예정입니다. 하이브는 북미사업 강화를 위해 하이브 아메리카 산하의 QCM HoldCo LLC)를 통해 큐씨 미디어 홀딩스(QC Media Holdings Inc.)라는 레코드레이블업체  지분 100%를 3140억원에 취득할 예정입니다.


자회사에 출자하는 3391억원 중 680억원 가량은 다시 하이브로 돌아옵니다. 큐씨 미디어 홀딩스의 주주 2명을 제3자로 하이브가 68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이 투자에 하이브는 약 2700억원을 써야 합니다.



물론 지난해 9월 이후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유 현금을 몇 달 사이에 크게 늘릴 만큼 하이브의 현금창출능력이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2017년부터 5년 9개월간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이 약 4114억원인데요. 지난해 9개월 동안 벌어들인 현금이 1357억원입니다. 남은 4분기에 늘린 현금이 그보다 많지는 않겠지요.


하이브가 5년 9개월동안 유·무형자산과 종속회사 또는 관계회사 지분을 취득하는 데 들인 돈은 3조원에 이릅니다. 벌어들이는 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죠. 2020년 기업공개와 2021년 세 차례에 걸친 유상증자, 그리고 외부 차입으로 두둑했던 현금 잔고가 빠르게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하이브는 지난 9일 계열사로부터 3200억원의 단기차입을 결정했습니다. 이수만씨 지분을 사거나 미국 자회사에 출자하는 데 보탤 돈입니다. 계열사 중에 그 만한 현금을 모회사에 대여해 줄 수 있는 곳이라면 빅히트뮤직이나 위버스컴퍼니 정도일 것 같습니다.


계열사에서 차입한 돈에 보유 현금을 보태 이수만씨 지분(4228억원) 매입과 자회사 유상증자 납입금(3391억원)에 쓰면 이제 25% 지분의 공개매수 자금(7142억원)이 필요한데요. 모회사에 남은 현금과 현금화 가능한 자산을 다 털어 넣어도 모자랍니다.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계열사에 있는 현금을 더 끌어오면 됩니다. 하이브 자회사에 있는 현금성자산(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현금화 가능한 단기금융상품)을 모두 더하면 지난해 9월말 현재 7000억원 가량 됩니다. 이중 약 절반 정도가 필요합니다.


자회사 현금을 모회사가 가져다 쓰면 자회사 현금이 바닥날 테니 모회사인 하이브가 직접 외부조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장 빠른 건 역시 금융기관 차입이겠죠. 하이브에는 금융기관 차입금이 1200억원 뿐입니다.



그런데 하이브가 금융기관 차입금 등으로 공개매수 자금을 조달하면 재무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는 순차입금이 46억원으로 미미하지만, 자회사 유상증자와 에스엠 지분 인수에 약 1조5000억원을 쓰게 되면, 보유 현금은 사실상 바닥을 드러내게 되고 순차입금은 1조원 이상으로 급증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는 상당한 자금부담을 안고 에스엠 인수에 뛰어들었다고 해도 될 듯 합니다. 현금 잔고가 줄고 차입금이 늘면 그동안 보여 주었던 공격적인 투자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이 높겠죠. 에스엠 인수가 그 정도 대가를 치르고도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라는 뜻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