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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스위스(CS) 은행이 UBS로 인수되면서 전세계 금융권을 위협하던 위기의 가능성이 진화되는 듯하더니 피인수 과정에서 CS가 발행한 코코본드가 전액 상각되자, 이제 코코본드발 금융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24일)에는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는 (근거가 있든 없든) 위기설이 독일까지 상륙해 도이치뱅크의 주가가 장중 15% 급락하기도 했죠.
코코본드는 영어로 Contingent Convertible Bond를 줄여서 부르는 말인데요. 글자 그대로 긴급한 위기의 상황이 되면 주식으로 전환되는 채권이라는 뜻이죠. 금융기관이 대규모 손실 등으로 파산하거나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트리거라고 합니다)이 되면 강제로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처리됩니다. CS가 발행한 코코본드는 전액 상각이 되었으니 이 채권에 투자한 채권자들은 원금을 전부 날리게 된 셈이죠.
코코본드 발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활성화됐습니다. 은행이 망할 위기에 놓이게 되자 자본을 댄 주주가 손해를 보고, 정부는 혈세를 투입해 살리게 되는데, 은행채를 산 채권자들은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아가잖아요. 은행이 주식을 발행해 자기자본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분명히 있고요. 그래서 채권자도 손해를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고 해서 조건부자본증권이 발행되었죠.
코코본드의 대표적인 형태가 신종자본증권입니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영구채),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사실상 만기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여기에 은행이 파산 등의 위기에 처하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된다는 '조건'을 부여하면 보통주 자본(보통주 자본금,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과 구별해 조건부자본증권이 됩니다. 그러니까 코코본드의 위기는 다시 말해 신종자본증권의 위기일 수도 있는 셈이죠.
은행의 자기자본은 보통주자본, 기본자본, BIS자기자본 등으로 나누는데, 기본자본은 보통주자본에 기타기본자본(Additional tier1;AT1)을 더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신종자본증권이 대표적인 AT1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자본에 보완자본(Tier2;T2)을 더하면 BIS자기자본이 되죠. 보완자본으로 인정되는 대표적인 채권이 후순위채입니다. 후순위채도 코코본드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신종자본증권에 비해 만기의 영구성, 후순위성, 이자지급의 임의성 등이 약해 자본으로의 성격이 훨씬 옅습니다. 그래서 기본자본으로는 인정되지 못하죠.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다고 모두 자기자본으로 인정하는 건 아니고요. 우리나라의 경우 기본자본의 30%까지, 금리 상향조건(스텝업)이 있는 경우에는 15%까지만 자본으로 인정합니다. 외국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얼추 비슷합니다.
일각에서 우리나라의 은행들도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요. 안심해서도 안되겠지만, 너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기본자본에서 신종자본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4대 시중은행, 국책은행이지만 시중은행과 비슷한 기업은행, 지방은행들의 지난해 9월말 현재 평균 BIS자기자본비율은 15.8%로 국제결제은행 기준인 8%는 물론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인 12%를 넉넉하게 웃돌고 있습니다. 지난해 금리상승으로 상당한 규모의 자산평가손실을 입었을 것이니 자기자본비율이 어느 정도는 하락했을 테지만 그 폭은 크지 않은 모양입니다. 일례로 국민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은 2021년말 17.47%에서 지난해말 17.46%로 하락했습니다.
국내 은행의 경우 기업은행을 제외하고 보통주 자본만으로 자기자본비율 12%를 넘고 있습니다. 단순평균으로 13.2%가 되고요. 신종자본증권이나 영구채를 더한 기본자본비율은 14.06%가량 됩니다. 신종자본증권 같은 AT1보다는 후순위채 등의 보완자본으로 자기자본을 보강한 비중이 더 높습니다.
지난해 금리상승이 은행들에게 독이 된 것만은 아닙니다. 이자수익이 늘어났거든요. 국민은행의 경우 이자수익이 전년 약 9조5000억원에서 14조원으로 늘었습니다. 이자비용이 2조3600억원에서 5조4000억원으로 늘었는데, 그 보다 이자수익이 더 늘었죠. 그로 인해 영업이익(4조3289억원)과 당기순이익(2조9082억원)도 전년보다 약 9000억원과 약 3500억원 더 늘었습니다.
다만 평가손익이 손익계산서에 반영되지 않는 유가증권(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상품)의 평가손실이 약 1조4000억원가량 발생했습니다. 은행이 보유한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은 대부분 채무증권인데요. 국민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약 39조4000억원의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금융자산 중 채무증권이 95.8%에 달합니다. 채무증권 중 국공채가 20%, 은행이나 보험사 들이 발행한 금융채가 45%이고, 비금융기업이 발행한 채권 등이 33%를 차지합니다.
금리가 다시 급등하지만 않는다면 은행의 대규모 평가손실이 재연되지는 않을 것이고, 채무증권들의 만기가 도래해 원리금이 회수되면 평가손실도 사라질테죠. 부동산PF 문제가 파국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국내 은행들의 자본이 무너져 정부의 구조금융을 받는 사태까지 가서 신종자본증권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되는 일은 현실화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은행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확충을 하는 재미가 그동안 쏠쏠했을 텐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말이 영구채이고, 주식 같은 채권이지 국내 은행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단지 고금리의 5년 만기채로 인식되어 온 게 사실이거든요.
예전에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 이슈가 제기되었을 때 기술한 적이 있는데요. 국내 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은 거의 예외없이 콜옵션이 부여되어 있고, 거의 예외없이 발행사의 옵션 행사로 조기상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금리가 큰 폭으로 뛰는데다(스텝-업), 조기상환이 시장의 관행으로 인식되고 있죠. 사실 신종자본증권을 조기상환하려면 감독당국의 승인을 얻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웬만해서는 조기상환을 하지 말라는 게 방침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CS의 코코본드 전액 상각으로, 국내 채권 투자자들 역시 신종자본증권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는 투자상품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겁니다. 투자수요는 줄어들 수 있고, 은행들이 새로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 많은 이자를 챙겨줘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발행사에게나 투자자에게나 신종자본증권의 매력이 하락할 것 같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이 은행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지난해 입법으로 보험사들이 발행한 조건부자본증권이 올해부터 자기자본으로 인정됩니다. 그래서 보험사들 사이에서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험사의 신종자본증권은 은행의 그것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조건부자본증권이 바로 코코본드인데, 신종자본증권과 기본적인 개념은 갖고요.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는 등의 유사시(트리거 발동시) 주식으로 강제전환되거나 상각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올해부터 스텝-업 조항이 있는 신종자본증권은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고, 스텝-업이 없는 신종자본증권의 자본인정비율도 요구자본의 10%까지만 인정됩니다. 대신 조건부자본증권은 요구자본의 15%까지 자본으로 인정해 주게 되죠.
국내 보험사들의 자본은 그리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본적정성을 나타내는 지급여력비율(RBC비율)이 마지노선에 있는 보험사들이 꽤 있습니다. 보험업감독규정에 RBC비율이 100% 미만으로 떨어지면 경영개선을 위한 적지시정조치 대상이 되고, 금융감독당국의 권고비율은 150% 이상인데요.
지난해 채권평가손실로 RBC비율이 크게 하락한 보험사들이 있습니다. 이미 100% 아래로 떨어진 엠지손해보험을 논외로 하더라도 DGB생명이 100%에 턱걸이를 했고 한화생명 롯데손보 등도 150% 언저리에 있습니다. 아직 결산보고서를 내지 않은 보험사 중에 농협생명보험은 자본금이 전액잠식되었죠.
올해부터 보험사에는 새로운 회계기준 IFRS17이 적용되는데요. 가장 큰 변화가 보험부채에 대해 시가평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보험사의 대부분 자산인 채권과 마찬가지로 금리가 오르면 보험부채의 장부가액이 줄어들고 금리가 내리면 보험부채의 장부가액도 커지게 되죠. 이에 따라 자본적정성도 신지급여력제도(K-ICS) 체제로 바뀝니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 금리가 크게 상승한 덕분에 보험부채를 시가평가하게 되면 지급여력비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금리가 하락세로 접어들면 거꾸로 지급여력비율이 하락하는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보험사들의 자본확충 필요가 커질 수 밖에 없고, 결국 신종자본증권 형태의 코코본드 발행 수요가 높을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보험사들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최근 크게 늘어날 조짐이었는데 CS의 코코본드 전액 상각이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된 셈입니다. 보험사 코코본드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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