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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글로벌 자동차부품업체 한온시스템이 지난해 극심한 실적 부진을 기록했습니다. 연결 기준으로 256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는데요. 전년 대비 21.2% 감소했고, 2009년(2286억원) 이후 가장 적습니다. 영업이익이 3000억원 아래로 떨어진 건 2011년 이후 11년 만입니다.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267억원. 전년 3107억원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가까스로 흑자를 유지했습니다.
지금은 연결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종속회사를 제외한 개별 재무제표에는 눈길이 잘 가지 않을 텐데요. 한온시스템 개별로는 지난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모두 적자였습니다. 당기순이익은 지난 2020년에도 소폭 적자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선 것은 몇 년 만인지 몰겠습니다만 2000년 이후로는 처음입니다.
매출이 줄지는 않았습니다. 한온시스템만의 매출은 처음으로 3조원대에 올라섰고, 종속회사를 포함한 연결기준 매출도 17.4% 증가해 처음으로 8조원대를 기록했습니다. 영업력에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온시스템은 자동차 공조부문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회사입니다.
다행히 올해는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증권가에서 보는 모양입니다. 증권정보업체인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올해 한온시스템 영업이익(연결)이 4000억원대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경험상 증권업계의 컨센서스는 믿거나 말거나이기는 하지만 증권업계의 기대가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사모펀드회사 한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그룹입니다.
한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지난 2015년 총 3조9400억원으로 한온시스템 지분 69.99%를 인수했습니다. 한앤컴퍼니는 장부상 회사인 한앤코오토홀딩스(유)를 통해 2조8400억원을 투입해 50.5%의 지분을 가져갔고,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1조1000억원의 들여 19.49%의 지분을 취득했습니다. 지금도 당시의 지분율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온시스템은 원래 한라그룹 계열인 만도기계와 미국의 포드사가 50 대 50 합작으로 1986년 설립한 한라공조라는 회사인데, 외환위기로 한라그룹이 부도를 내면서 포드 산하인 비스테온 계열에 편입되었고, 2013년 비스테온이 전세계 공조관련 회사들을 전부 합병해 한라비스테온공조가 되었습니다. 이걸 한앤컴퍼니가 한국타이어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 후 지금의 사명인 한온시스템으로 바꾸었습니다. 국내 M&A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빅딜입니다.
한앤컴퍼니가 인수하기 전 5조원대였던 한온시스템의 매출은 2019년 7조원대로 올라섰고 지난해 8조원을 넘어서 괄목할만한 증가를 이루었습니다. 2019년에는 약 1조4000억원을 들여 세계 3대 자동차부품회사인 마그나의 유압제어장치부문을 인수해 덩치를 키웠죠. 기업가치를 높여 더 비싼 값에 매각하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마그나 유압제어부문 인수 이후 매출만 늘었지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계속 줄었습니다. 오히려 한앤컴퍼니가 인수하기 이전 수준보다 못합니다. 코로나 영향이 컸습니다. 인수하고 얼마되지 않아 바로 코로나가 확산되었고, 그로 인해 유럽과 북미의 공장들이 멈춰 섰습니다.
그런데 말이예요. 지난해는 코로나로부터 해방되는 해였잖아요. 한온시스템의 공장들도 정상가동되고 있습니다. 유압제어장치부문만 빼고요. 유압제어장치부문의 가동률은 아시아가 35%, 미주지역이 52%, 유럽지역은 48%에 불과합니다.
한온시스템 인수 전에 마그나의 유압제어부문 가동률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해 가동률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과 2021년에 비해 높아진 건지, 낮아진 건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한온시스템이 유압제어부문 가동률을 공개한 건 지난해가 처음입니다.
유압제어장치 부문 인수 이후 크게 낮어졌던 매출처 Big3의 비중은 2021년부터 다시 조금씩 오르고 있습니다. 인수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Big3의 비중 감소였거든요. 유압제어장치 부문 거래처들이 한온시스템의 고객이 되면서 이들을 향한 다른 부문의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죠.
하지만 최근 3년간 흐름을 보면 Big3의 비중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습니다. Big3 중 포드의 비중은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유압제어장치부문 인수 이후에도 14%(2019년)에서 11.60%(2022년)으로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20.97%→24.10%), 현대모비스(13.87%→13.44%)로 같은 기간에 오히려 상승했거나 거의 같은 수준입니다. 현대모비스의 비중은 2020년 9.22%까지 떨어졌다가 2년 연속 오르고 있습니다.
우려를 할 만합니다. 유압제어장치부문의 가동률이 낮고 현대차그룹의 비중이 상승한다는 것은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이 원활하지 않거나, 유압제어부문 자체의 수요가 코로나 해제 이후에도 늘지 않거나, 새로운 거래처들이 한온시스템에 대한 주문을 늘리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현대차그룹 비중이 높아지는 건 한온시스템 기업가치에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한온시스템이 국내 다른 자동차부품업체들과 다른 것이 세계적인 공급망과 판매처를 확보하고 있어 현대차그룹의 실적이나 입김에 (상대적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거든요. 현대차그룹의 비중이 높아지면 인수후보는 줄어들 것입니다.
사실 영업이익이나 당기순이익보다 심각한 건 현금흐름입니다. 한앤컴퍼니 인수 이후 잉여현금흐름을 거의 창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매년 현금흐름 부족 상황에 몰리고 있습니다. 영업활동에서 벌이들인 현금으로 자본적지출과 배당금 지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보통 기업의 가치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라고 하는데, 여기서 현금흐름이 바로 잉여현금흐름입니다. 그런데 잉여는 고사하고 부족 상황이라면 궁극적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질 수 없잖아요. 한온시스템의 현금흐름이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자본적지출의 확대입니다. 그리고 자본적지출의 확대는 미래에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배당입니다. 700억원대이던 배당금 지급액이 한앤컴퍼니 인수 이후 1000억원대로 올라서더니 2021년 이후에는 2000억원까지 증가했습니다. 최근 2년간 대규모 현금흐름 부족이 발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른 상장기업이 배당을 늘렸다면 주주환원정책을 강화했다고 칭찬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한온시스템의 배당금은 69.99%가 장부상회사인 한앤코오토홀딩스(유)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 흘러 들어가잖아요. 기업가치를 높여 재매각할 목적인 사모펀드가 피인수기업의 배당금을 과도하게 빼가면 기업가치가 높아질 수 있을까요?
한앤컴퍼니 인수 이전에 무차입기업이었던 한온시스템의 차입금은 몰라보게 늘었습니다. 마그나의 유압제어장치부문을 인수하면서 2조원대로 늘었고 지난해에도 5000억원 이상 크게 늘어 3조원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차입금은 당연히 주식가치를 구할 때 차감됩니다.
차입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죠.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현금보다 투자와 배당으로 나가는 돈이 더 많으니 부족한 만큼을 외부조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앤컴퍼니는 코로나로 실적이 악화된 2020년에 설비투자와 비용을 줄여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배당을 줄이겠다고는 하지 않았죠.
한온시스템은 지난달 29일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해 내년 지급할 배당금 총액을 1921억원으로 결정했습니다. 지난해 지급액과 같습니다. 972억원의 배당은 한앤코오토홀딩스로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한앤컴퍼니가 한온시스템 재매각 이전에 배당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규모 배당을 받아가야 하는 사정이 있습니다. 이는 한온시스템의 배당이 재매각 이전에 줄어들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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