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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은 지난 2021년 SK스퀘어를 SK텔레콤에서 분할하면서 2025년 순자산가치(NAV) 75조원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은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목표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밝혔죠. 처음 이 목표를 제시할 당시에는 순자산 75조원이라고 잘못 이해해서 좀 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75조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기사를 쓰면서도 순자산을 기준으로 했다는…).


순자산 75조원은 순자산가치 75조원과 다른 차원의 문제지요. 순자산은 장부가액으로 측정해야 하지만 순자산가치는 가치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니까, 공정가치를 의미하는 것이거든요. 상장사라면 시가총액이 적절하겠군요. 뭐, 순자산이 됐든, 순자산가치가 됐든 회사를 아주 빠르게 엄청 키우겠다는 의욕을 보인 것에는 다름이 없습니다.


 연결 순자산가치는 결국 연결실체 순자산의 공정가치가 될 것입니다. 상장사를 예로 들면 연결실체의 순자산 장부가액이 100이고, PBR이 2배이면 순자산가치는 200이 되겠죠. 참고로 지난해말 SK스퀘어의 연결기준 순자산은 17조원 정도입니다. 비지배지분은 거의 없습니다. 시가총액은 6조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PBR이 0.34배 정도 되는 셈입니다. 비지배지분이 없는 셈 치고, 앞으로도 생기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시가총액이 지금보다 12배이상 되어야 합니다. 시가총액을 순자산가치로 보지 않겠다고 하지만 않는다면 그렇습니다.


PBR 0.34배인 시가총액으로 순자산가치를 계산하면 억울하기는 할 겁니다. SK스퀘어가 보유한 SK하이닉스 지분율이 20%에 달하고, 그 시장가치가 13조원가량 되거든요. SK스퀘어 주가는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지난해말 SK스퀘어 연결 총자산이 22조원인데, SK하이닉스 지분의 가치가 14조5000억원에 이릅니다. SK스퀘어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SK스퀘어의 연결대상 종속회사는 아니라서 연결 순자산가치에는 보유 지분율(20%) 만큼만 보탬이 됩니다. 시가총액을 순자산가치로 보게 되면, SK하이닉스 지분의 가치는 따로 더해주면 안됩니다.


13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SK하이닉스 지분을 보유한 SK스퀘어의 순자산가치를 시가총액인 6조원으로 보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죠? 이건 숫자 놀음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순수 지주회사인 SK스퀘어의 특성을 반영해, 산하 종속회사의 가치(또는 시가총액)과 SK하이닉스 등 관계회사의 지분가치를 순자산가치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현재 장부상 순자산인 17조원이 순자산가치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SK스퀘어가 지난달 초 SK쉴더스를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SK텔레콤에서 분할한 지 1년5개월만에 첫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 발렌베리 계열의 사모펀드 운용사 EQT파트너스가 SK스퀘어 지분 일부와 맥쿼리 컨소시엄의 지분 전부를 약 2조원에 인수합니다. EQT파트너스는 추가로 2000억원 규모의 SK쉴더스 신주를 취득해 68% 지분율로 최대주주가 될 예정입니다. SK스퀘어는 32%의 지분을 보유한 2대주주로 내려 앉지만 EQT파트너스와 공동 경영할 예정이고요, 지분 매각대금으로 8646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됩니다. 올해 9월19일이 매매 예정일입니다.


첫 성과라고는 하지만 SK스퀘어가 이 거래로 얻는 건 별로 없습니다. 8646억원의 매각대가를 현금으로 받았지만, 그 중 4000억원은 EQT파트너스에 인수대금으로 빌려주기로 했죠. 인수자의 자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EQT파트너스보다 SK스퀘어에게 더 절실한 거래인 모양입니다.


지분율이 63.1%에서 32%로 하락하며 최대주주의 지위에서 내려와 최대 종속회사를 잃게 되었습니다. SK쉴더스는 지난해 1조7377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SK스퀘어 사업부문 중 최대였습니다. 종속회사가 아닌 SK하이닉스 다음으로 최대 자산이었습니다. 커머스와 플랫폼 등 다른 부문의 매출이 앞으로 증가하겠지만 단기간에 그 공백을 메우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EQT파트너스가 이스라엘 보안기업 CYE, 글로벌 방역회사 Anticimex, 글로벌 사이버 보안업체 Open Systems를 보유하고 있어 이들과의 시너지로 SK쉴더스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고, 당장은 얻는 게 별로 없습니다.


최대주주 변경으로 회사에 유입되는 현금은 2000억원이 고작이고, SK그룹이라는 우산이 사라지면서 신용등급이 하락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SK쉴더스의 신용등급은 A(안정적)인데요. 여기에는 SK그룹의 유사시 지원가능성이 1 Notch 더해져 있습니다. 다른 보완요소가 없다면 SK쉴더스의 신용등급이 A-로 떨어지는 것은 수순인 셈입니다.


EQT파트너스가 SK그룹을 대신하는 지원군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EQT파트너스는 사모펀드입니다. 사모펀드가 추구하는 목적은 투자회사의 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투자회사가 재무적인 곤경에 처했을 때 지원의지와 지원능력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신용등급을 지켜 줄 우산은 되어주지 못할 것입니다.


SK그룹에 인수되면서 크게 나빠진 재무구조를 개선할 기회도 잃게 되었습니다. SK쉴더스는 2020년 순차입금이 2조원대로 크게 늘고 부채비율이 800%대로 급상승하게 되는데요. 회사가 갑자기 나빠진 것이 아니라 과거 ADT캡스를 인수할 때 인수목적회사가 조달한 인수금융을 떠안았기 때문입니다. SK그룹은 SK쉴더스를 떠나보내면서 인수 다시 조달한 차입금을 함께 떼낸 셈입니다.



SK쉴더스는 지난해 IPO를 추진했었죠. 증시상황이 최악이었던 때였는데, 원하는 몸값이 너무 높았습니다. 희망 공모가가 3만1000원~3만8800원이었는데, 발행주식 수를 감안하면 시가총액 2조8000억원~3조5000억원이었습니다. 보안업체 1위인 에스원의 시가총액 2조5000억원을 넘는 수준이었죠.


당시 IPO는 SK스퀘어가 현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공모총액이 8400억원(최저 공모가 3만1000원 기준)이었는데, 약 4400억원은 SK쉴더스로 들어갈 유상증자 대금이었고, 약 4000억원은 파트너인 맥쿼리 PE의 지분 매각용이었습니다.


EQT파트너스로의 지분 매각 역시 SK스퀘어의 현금 확보가 주된 목적 같지는 않습니다. SK스퀘어의 매각 지분은 약 절반이고 맥쿼리PE는 보유지분 전부를 매각하게 되죠. 지난해 추진했던 IPO나 올해의 지분 매각 모두 맥쿼리PE의 엑시트에 그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SK스퀘어는 SK스퀘어 인수 후 일정 시한까지 상장을 하지 못하면 내부수익률(IRR) 6%를 적용한 가격으로 맥쿼리 PE의 지분을 사주기로 약정이 맺어져 있었습니다. 그럴 만한 자금여유가 없는 SK스퀘어로서는 IPO 실패 후 지분 매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셈이죠.


순자산가치 75조원의 목표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거래는 일보 후퇴로 비쳐집니다. SK쉴더스는 보안업계 1위를 목표로 ADT캡스 인수 후 SK텔레콤의 자회사였던 SK인포섹과 합병해 설립한 회사입니다. 분할로 SK스퀘어 소그룹에 편입되었을 때는 IPO를 통해 조달한 자본을 토대로 SK쉴더스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적극적인 투자로 더 큰 회사를 만들어 순자산가치 75조의 밑거름으로 쓰고자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SK쉴더스는 SK스퀘어의 종속회사에서 빠지게 되고, SK스퀘어의 연결순자산에서도 대부분 제거됩니다. 보유지분만큼만 인정이 되죠.


다만, 1보 후퇴가 2보 전진을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EQT파트너스는 사모펀드 운용사이니 SK쉴더스를 영원히 보유할 생각은 없을 것이고 나중에 좋은 가격에 되팔 생각을 하겠죠. 전략적 투자자(SI)가 아니라 엄연한 재무적 투자자(FI)입니다. SK그룹이 SK쉴더스를 되찾을 기회가 생길 수 있죠.


 SK쉴더스는 매각 이후에도 지금의 사명을 계속 사용할예정이고 SK스퀘어는 EQT파트너스와 함께 SK쉴더스의 경영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SK텔레콤그룹과의 결합상품이나 유통망 공유 등 SK그룹과 사업연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죠. 전략적 투자자는 여전히 SK그룹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지분 매각은 FI의 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향후 EQT파트너스가 보유 지분을 제3의 전략적 투자자에게 매각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SK그룹이 보유지분을 되사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 지난해 무산된 IPO가 언젠가는 다시 추진이 될 텐데, 그때 EQT파트너스가 보유지분 매출로 엑시트를 한다면 SK스퀘어는 추가 자본을 투입하지 않고도 SK쉴더스의 최대주주 지위를 회복할 수 있고, SK쉴더스는 다시 SK스퀘어의 종속회사로 편입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게 박정호 부회장이 기대하는 미래의 그림일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