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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의 주력 회사들이 신용등급 하락 위험에 놓인 대표적인 곳이 롯데그룹입니다. SK그룹이 SK하이닉스의 실적 부진과 SK온을 필두로 한 2차전지 사업 확장에 따른 차입금 증가가 그룹의 신용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라면, 롯데그룹은 다른 계열사들을 떠받쳐 주어야 할 주력사들의 신용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주요 건설사 중 부동산PF 리스크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롯데건설이 그룹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죠.
롯데건설은 지난해 4분기 부동산PF 유동화 채무의 만기연장을 위해 급히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15%에 달하는 고금리 차입금이 엄청나게 늘어났죠. 메리츠금융그룹과 투자협약으로 1조5000억원을 조달하면서 유동성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재무구조와 상환능력을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롯데건설은 자체 능력으로 유동성 위기를 봉합한 것이 아닙니다.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총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롯데건설이 한숨을 돌린 뒤 돌려받기는 했지만 롯데케미칼, 롯데정밀 그리고 롯데쇼핑의 자회사 우리홈쇼핑은 9000억원을 긴급 지원해야 했고,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는 롯데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본확충을 도와야 했죠.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은 올해 초 롯데건설이 발행한 2500억원 규모 공모사채에 보증을 섰고, 2대 주주인 호텔롯데는 지난해말 롯데건설이 발행한 2000억원 규모 사모 전환사채에 대해 총수익스왑(TRS) 계약을 맺었습니다. 사실상 무상 지급보증을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전환사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익과 손실른 호텔롯데에 귀속되고 호텔롯데는 전환사채를 인수한 장부상 회사(SPC)에 고정수수료를 지불해야 하거든요. SPC입장에서는 투자가 아니라 대출인 셈입니다.
메리츠금융그룹과 투자협약에는 롯데정밀, 롯데물산, 호텔롯데가 볼모로 잡혔습니다. 부동산PF 유동화증권 매입을 위한 1조5000억원 중 메리츠금융그룹이 댄 돈은 9000억원이고, 나머지 6000억원은 이들 계열사들이 제공한 것이죠. 그런데 메리츠금융그룹이 제공한 대출은 선순위이고, 롯데정밀 등 계열사가 대여한 6000억원은 후순위입니다. 유동화증권에서 회수한 돈은 우선적으로 메리츠금융그룹 대출금을 갚게 되고 계열사들은 남은 회수금이 있어야 상환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메리츠금융그룹 입장에서는 상당히 안전한 투자를 했습니다. 롯데건설 사업장이 집단적으로 폭망하지 않는 이상 원금을 손해 볼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다, 이자를 무려 13%나 받기로 했죠. 호텔롯데 등의 볼모가 있어서 가능한 구조입니다.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는 금융시장에서 롯데그룹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호텔롯데 등 롯데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을 볼모로 잡으면서도 유동화증권 매입자금 대출에 무려 13%의 이자를 받기로 했습니다. 호텔롯데가 TRS 계약을 제공한 사모 전환사채 역시 발행금리가 무려 10%에 달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이 보증을 선 2500억원 규모 공모사채는 만기가 1년짜리인 단기 채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시장안정펀드(1200억원)와 산업은행의 미매각 인수(900억원) 덕분에 간신히 예정대로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은 AA+이고 호텔롯데의 신용등급은 AA-입니다. 사실상 최고 신용등급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계열사들의 직접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도 롯데건설은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상당한 애를 먹었던 셈입니다. 투자자들이 못미더웠던 건 롯데건설만이 아니라 롯데케미칼이나 호텔롯데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물론 AA등급이나 되는 롯데케미칼이나 호텔롯데가 부도를 낼 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상환능력의 수준, 다시 말해 현재의 신용등급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롯데그룹에는 유난히 '부정적' 등급전망을 달고 있는 신용등급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그룹내 최고 신용도를 자랑하는 롯데케미칼과 지주회사인 롯데지주가 끼어 있습니다. 특히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을 롯데그룹 전체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룹 전체의 신용도(계열신용등급이라고도 부르고, 계열통합신용도라고도 부릅니다)가 달려 있거든요. 혹시라도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그룹 전체의 신용도가 하락하고 그로 인해 다른 계열사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한국기업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변경했는데, 롯데물산, 롯데캐피탈, 롯데렌탈, 롯데오토리스의 등급전망도 함께 '부정적'으로 변경했습니다. 계열사가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그룹이 지원할 능력이 약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모든 그룹에서 주력 계열사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다른 계열사 신용등급도 동반 하락하지는 않습니다. 계열사 간에 유사시 지원할 가능성이 인정되어야만 그런 일이 발생하죠. 그런데 롯데그룹은 이미 계열사 간에 지원을 주고받은 사례가 존재하고 롯데건설 유동성위기에서도 증명이 된 셈이죠.
롯데케미칼은 최대주주이면서도 데건설 유동성위기에서 제한적으로만 지원에 나섰습니다. 크지 않았던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2500억원 공모사채에 보증을 선 정도였죠. 오히려 호텔롯데가 전환사채 TRS와 메리츠금융그룹 투자협약에 참여하는 등 전면에 나섰죠. 롯데그룹으로서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최대한 통제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봅니다.
유동성 위기는 넘겼지만 롯데건설은 여전히 PF리스크가 크고 재무적으로도 단기간에 차입금이 급증하는 등 약화된 상태입니다. 지난해 외부자금 조달(차입)이 3조원에 육박합니다. 그것도 대부분 금융기관(은행, 증권사)을 통한 단기차입금이었죠. 올 들어 메리츠금융그룹과의 투자협약과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단기차입을 장기화하는 작업이 추진 중이지만 그 규모로 보면 크게 개선되었을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롯데건설의 재무 이슈가 지속되면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계열사 신용등급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유동성위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계열사들이 십시일반 지원에 다시 나서야 할 수 있으니까요. 가뜩이나 '부정적' 등급 전망을 달고 있는 주력 계열사들에게는 상당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 외에 롯데건설 지원이 많은 계열사가 롯데물산입니다. 롯데물산은 메리츠금융그룹과 투자협약에 6000억원을 대여한 계열사 중 하나(1500억원 대여) 뿐 아니라 지난해 11~12월 롯데건설이 하나은행 등고 체결한 여신거래약정 5300억원에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했죠. 일부를 상환했지만 지난해말 현재 3400억원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호텔롯데는 지난해 11월 보유 중인 롯데칠성음료 지분 전량을 시간외 매매방식으로 매각했습니다. 규모는 379억원 정도로 그리 많지 않은데, 처분한 이유가 유동성 확보 차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1월초 롯데건설의 PF 유동화증권 매입을 위해 설립된 장부상 회사에 대여한 현금은 3000억원에 이릅니다. 롯데건설로 인한 유동성 부담이 상당한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롯데건설 지원에 동원된 계열사 중 롯데케미칼, 롯데물산, 호텔롯데는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상 또는 그룹 전체 신용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롯데지주 역시 롯데케미칼을 통해 롯데건설과 지분이 연결되어 있고, 그룹의 재무를 총괄하는 입장에 있어 자유롭지 않은 건 마찬가지지요. 이 중 호텔롯데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이죠. 그룹 계열사 중 위상이 높지 않은 롯데건설에 그룹 전체의 신용등급이 흔들릴 수도 있는 조금 황당한 상황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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