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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디스플레이의 실적 추락이 충격적인 수준입니다. 지난해 3조원 이상의 초대형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만 1조1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냈습니다. 4분기 연속 적자이기도 하죠. 이익보다 더 충격적인 건 매출애의 급감입니다. 지난해 매출이 12.5%가량 감소했는데요.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1.8%나 줄었습니다.


수요 감소가 예상될 때 공장을 세우고 직원을 내보내는 등 조직 규모를 유연하게 줄일 수 있는 기업이 아니라면 30%가 넘는 매출감소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겁니다. LG디스플레이처럼 대규모 설비로 고정비 부담이 큰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올해 1분기 LG디스플레이 실적 악화의 심각성은 패널을 판매해 올리는 매출액이 공장에서 발생하는 고정비와 변동비를 충당하지도 못하는 수준이라는 데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팔수록 손해라는 표현을 쓰던데, 그건 말이 안되는 소리이구요. 고정비를 회수할 수 있는 손익분기 매출액 아래로 떨어졌다고 해석하는 게 맞겠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실적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난 2021년의 호실적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당시 29조8000억원의 역대 최대 매출액에 2조2000억원의 역대 두번째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실적이 역사적 정점을 찍고 마치 날개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급전직하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먼 과거를 기억한다면, LG디스플레이는 2018년 이후 시작된 실적 악화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2018년부터 매출이 감소하고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19에는 1조원대 영업적자와 2조원대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최악의 실적을 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예상치 않았던 코로나 특수를 누리면서 그 추세를 잠깐 이탈했다가 코로나가 지나간 후 다시 과거의 추세로 돌아온 셈입니다.


영업환경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나빠 보입니다. 지난해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적인 금리인상과 물가 상승은 TV와 스마트폰 등 전방산업의 위축과 정체를 불러왔고, 이는 디스플레이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증권업계나 신용평가업계 등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불황에 대해 전방수요의 급격한 위축을 가장 큰 배경으로 들고 있더라고요.


그게 맞기는 한가 봅니다. LG디스플레이 뿐 아니라 대만의 AU옵트로닉스, 중국의 BOE 등 주요 경쟁사들 역시 올해 1분기 실적이 엉망이거든요. AU옵트로닉스는 512억 대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나 줄었고, BOE역시 380백만 위안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쳐 25%에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2018년 이후 실적 부진은 절반쯤 계획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패널업계는 중국업체들이 빠른 기술 추격과 공격적인 설비투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죠. 초대형 LCD패널에서는 최강자인 LG디스플레이가 우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중국업체에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로 여겨졌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때 과감한 전략적 선택을 합니다. LCD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OLED를 대표상품으로 내걸고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OLED 기술은 완벽하지 않았고 패널가격이 상당한 고가여서 시장이 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매출의 대부분이 LCD에서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LCD시장에서는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패널가격이 하락하고 있었고요. LG디스플레이는 미래의 압도적 경쟁우위를 노린 선택이었지만 매출감소와 적자라는 희생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의 실적 부진 역시 2018~19년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LCD패널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LG디스플레이는 LCD사업 비중을 줄이고 OLED 비중을 높이고 있죠. 하지만 IT와 가전제품 소비가 위축된 마당에 고가의 OLED패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리 없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TV용 패널과 IT용 패널의 시장점유율은 꾸준히 하락 추세에 있고 특히 올해 1분기는 매우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전방산업의 부진에 따른 수요 침체의 영향도 있지만, LG디스플레이가 LCD사업의 비중을 줄인 영향도 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올해 1분기 디스플레이 패널의 1제곱미터 당 판매가격이 850달러인데, 지난해 4분기 708달러에 비해 20% 정도 높은 편입니다. TV용 LCD패널 제품군으 비중이 감소한 영향입니다.


매출 감소는 TV용과 IT용(모니터, 노트북, 태플릿용) 패널에서 발생했습니다. 두 부문 다 지난해 동기 대비 절반가량 줄었습니다. 매출이 감소한 만큼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설비조정이나 인력구조의 재편 등이 이루어질테지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2019년에는 없었던 위안(또는 희망?)이 지금은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부터 또 하나의 사업전환이 추진 중입니다. 바로 중소형 OLED사업의 확장이죠. 원래 LG디스플레이는 대형 OLED 패널의 선두주자였고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OLED 패널의 터줏대감이었는데, LG디스플레이가 중소형 OLED패널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강력한 경쟁자가 된 셈입니다.


그 결과 스마트폰용 패널 등 모바일 제품군의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제품군의 매출은 지난해 8조원대로 올라서며 TV용 패널의 매출(6.9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올해 1분기에는 약 1조9000억원으로 TV용과 IT용을 제치고 최대 매출부문이 되었죠. 유일하게 지난해 1분기 매출보다 증가(11.1%)했습니다. 모바일 제품군에는 차량용 OLED 패널이 포함되는 데요.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패널업계의 재고조정이 끝나가고 있고 애플의 새로운 아이폰(아이폰15)가 하반기 출시 예정인 점, 차량용 패널의 수주가 크게 늘어난 점 등을 들어 흑자전환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LG의 기대대로 된다면 대형 패널 시장에서 LCD 비중의 축소와 OLED패널의 수요부족으로 인한 매출 공백을 메울 수 있게 되니 천만다행입니다.


그런데 기대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LG디스플레이는 재무적으로 상당히 압박을 받을 것 같습니다. 영업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올해 1분기말 현재 17조원을 넘어선 차입금 상환부담을 지게 되거든요.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면 빚을 줄이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투자를 극도로 자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빚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죠. 빚을 갚으려면 유상증자든, 금융권 차입이나 사채 발행이든 외부에 손을 벌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