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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후 28년 동안 무려 열네 번이나 최대주주가 바뀐 기업이 있습니다. 2년에 한번 꼴입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지난해에도 두 차례 바뀌었는데, 계획대로 되었다면 한번 더 바뀌었을 겁니다. 중국에서 마스크 팩 등 이 회사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끈 것으로 알려지며 K-뷰티의 대표주자로 언론에 소개되던 제이준코스메틱입니다.
이 회사는 1995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될 때 ㈜신우라는 이름의 피혁업체였습니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후부터 사세가 급격히 기울고 여러 차례 최대주주가 바뀌었지만 2014년 다시 법정관리(회생절차)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죠. 법정관리에 들어간 직후 감자와 유상증자, 그리고 대규모 전환사채 발행으로 회사에 큰 돈이 유입되며 정상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가 했지만, 사실 새 주인의 배후에는 상장사 지분을 사고 팔아 차익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법정관리 중인 ㈜신우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인수한 곳은 ㈜선포커스라는 곳인데, 이 회사는 코스닥 상장사 바이오싸인의 종속회사였습니다. 바이오싸인은 신우를 인수하기 얼마 전 최대주주와 상호(경원산업→바이오싸인)가 바뀐 회사였고, 선포커스는 신우 인수 6개월 전에 자본금 5억원으로 신설된 법인이었습니다.
290억원 규모로 실시한 신우의 유상증자에 선포커스는 90억원을 참여해 경영권을 갖습니다. 나머지 200억원은 실제 투자자를 알기 어려운 여러 투자조합들이 참여했죠. 새로운 경영진은 네 차례에 걸친 전환사채 발행으로 127억원을 조달하고, 토지와 건물 등 회사의 유형자산을 259억원에 매각해 현금을 만듭니다.
신우가 그렇게 2015년을 보낼 무렵, 바이오싸인에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회사 역시 유상증자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으로 새로운 투자자가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이면서 휴림로봇을 인수하고, 휴림로봇을 통해 삼부토건까지 삼켰던 제이앤리더스, 현재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받고 있는 이화그룹 계열사 이트론, 리움자산운용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인광 에스모 회장 등이 있고, 맘스터치를 상장시킨 안성민씨가 이끄는 위드윈인베스트먼트가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바이오싸인의 새로운 최대주주가 됩니다. 대표이사는 안성민씨와 함께 움직이는,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진 조호걸씨가 선임되죠. 거론된 회사와 사람들에 대한 내용은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여러 기사에 나와 있습니다.
이들은 바이오싸인의 상호를 위드윈네트웍으로 바꾸고, 자회사 선포커스 매각을 추진합니다. 당시 선포커스는 147억원의 자산 중 145억원이 유동자산이고, 부채가 105억원인 회사였습니다. 사무실 등 설비가 없는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였을 것이고, 보유 자산의 대부분은 신우 지분이었을 겁니다. 사실상 신우를 처분하려고 한 겁니다. 위드윈네트웍은 출자금 15억원인 선포커스 지분을 165억원에 팔려고 했습니다. 선포커스가 신우를 인수한지 고작 6개월만입니다. 하지만 이 거래는 불발로 끝납니다.
그런데 더 큰 일이 위드윈네트웍에 생깁니다. 증권선물위원회의 감리결과 매출 및 매출원가 과대계상, 공시서류 거짓 기재 등으로 회사가 검찰에 고발되고 주권매매는 물론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겁니다. 그 북새통 중에 위드윈네트웍은 2015년말 자회사 선포커스에 빌려준 빚 대신 신우의 지분을 받아갔고, 다음해 증시가 열리기 무섭게 전량을 장내매도로 처분해 버립니다.
이때 선우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사람이 이준민씨인데, 이 분은 한때 증시를 시끄럽게 했던 제주도 카지노업체 마제스타(상장폐지)와 마제스타를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 제이스테판(현 에이루트)의 대표이사를 지낸 분으로 지금은 공격적인 M&A 행보로 덩치를 불려가고 있는 카나리오바이오그룹 계열사 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준민씨는 위드윈네트웍이 신우 지분을 매각하자마자 제이스테판 대표이사로 이동합니다. 위드윈네트웍은 신우 지분을 매각한 후 자회사 선포커스를 해산합니다.
신우를 매각하는 역할을 수행한 조호걸씨는 지난 2019년 세미콘라이트를 온성준씨가 이끄는 퓨전그룹에 팔아 넘긴 장본인입니다. 세미콘라이트는 현재 에스엘에너지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코스닥 상장사이고, 에스엘에너지는 김성태씨의 쌍방울그룹이 미래산업을 매각한 넥스턴바이오사이언스가 속한 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이죠. 이걸 우연의 일치라고 봐야 할지…
2016년 주인없는 회사가 된 신우를 인수한 곳이 바로 2015년 설립된 비상장 화장품업체 제이준코스메틱입니다. 위드윈네트웍이 떠나고 오양2호투자조합이 잠시 최대주주로 있었는데, 신우(당시 사명은 에스더블유에이치)가 실시한 36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제이준코스메틱 등이 참여해 경영권을 인수했죠. 제이준코스메틱은 성형외과와 피부과 의료진, 화장품 전문가 등이 모여 만든 회사였습니다. 신우를 인수한 후 합병해 유가증권시장에 우회상장합니다.
제이준코스메틱이 신우 유상증자에 참여한 금액은 150억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박범규 제이준코스메틱 대표이사(12억원) 등이 인수했는데, 이때도 휴림로봇의 최대주주였던 제이앤리더스가 인수자로 참여합니다. 그런데 두 회사가 합병한 후인 2017년 6월, 제이준코스메틱의 대주주인 제이준글로벌(최대주주 박범규)과 제이준코스메틱이 자산양수도 거래를 합니다. 제이준글로벌이 서울시 역삼동에 위치한 토지와 건물을 145억원에 제이준코스메틱에 팝니다. 신우를 인수하는 데 들어간 150억원을 거의 고스란히 회수한 셈입니다.
그래도 우회상장 후 제이준코스메틱은 제법 잘 돌아가는 듯했습니다. 연간 80억원에 그쳤던 매출이 2016년 809억원, 2017년 1297억원, 2018년 1318억원으로 몰라보게 늘었죠. 이때가 제이준코스메틱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업적자에서도 벗어나 2016년 후 3년간 438억원의 영업이익(개별 기준)을 냈고 결손에서도 벗어났습니다. 유상증자와 이익잉여로 순자산도 2017년말 1274억원까지 늘었고, 자산은 2018년말 20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전성기는 3년으로 끝났습니다. 그후 제이준코스메틱의 내리막길을 가팔랐습니다. 2019년 3분의 1토막이 난 매출은 2020년 이후 매년 반토막이 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은 고작 58억원에 그쳤습니다. 2019년 이후 영업적자의 합이 806억원에 달하고 올해 1분기 역시 22억원의 적자로 결산했습니다.
제이준글로벌에서 이도헬스케어로 이름을 바꾼 최대주주는 지난해 6월 제이준코스메틱의 경영권 지분을 앰버캐피탈코리아로 매각합니다. 이도헬스케어가 받은 양도대금은 270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두달 후인 지난해 8월 주인은 다시 쌍방울그룹의 아이오케이컴퍼니로 바뀝니다. 앰버캐피탈코리아가 인수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오케이컴퍼니로부터 275억원을 빌렸는데, 약속한 기한 내에 갚지 못해 아이오케이컴퍼니가 담보권을 실행해 주주가 된 것이죠. 제이준코스메틱은 그렇게 쌍방울그룹 계열사가 되었고, 이제 쌍방울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칼라스홀딩스가 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 광림의 지분을 제이준코스메틱에 넘겨, 쌍방울그룹 순환출자 지배구조의 중요한 고리가 되었습니다.
제이준코스메틱을 매각하기 전에 이도헬스케어가 하나 더 챙긴 게 있습니다. 바로 로열티입니다. 제이준코스메틱은 매월 화장품 매출의 5.9%를 이도헬스케어에 로열티로 전액 현금 지급해 왔습니다. 그런데 2021년 11월 매월 지급하던 로열티를 일시에 지급하는 것으로 바꿉니다. 계약 변경으로 이도헬스케어가 받아간 현금은 55억원(부가세 별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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